부조금에는 축의금과 부의금이 있다. 둘 다 집안의 큰일에 도움을 주려는 성의 표시이다. 사회마다 조금씩 틀리지만 우리나라는 마음의 표시로 가는 돈이라기보다 의무적으로 하는 관행으로 도움이 안 될 수 있고 잘못하면 인간관계에 큰 낭패를 볼 수 있다.
실제로 도움이 되도록 하는 건지 아니면 정해진 룰에 따라 의무적으로 하는 행위인지 아직 미국에 사는 한국 사회는 덜하며 한국처럼 은행계좌가 함께 알려오는 일은 없다. 많이 가진 사람은 많이 도움을 주고 친한 사람이면 더 가는 것으로 자연스러운 현상이지만 없으면서도 많이 줘야 하는 경우가 발생할 수도 있고 많이 줘야 하고 받을 것으로 생각했는데 의외의 결과는 사람 관계의 신뢰도 무너지고 됨됨이를 다시 생각하게 한다.
당연히 내야 하는 식사 후의 밥값과 비교가 되는 우리만이 가진 잘못된 관습이다. 사람의 평가나 관계의 친밀도를 액수로 판단하는 경우가 생긴다.
이번 장모님 장례에서는 부조를 일절 안 받고 예식을 치렀다. 장모님이 힘들게 오래 병치레 하셨고 90이 넘으시고 연로하셔서 자손들도 나이가 들어서 하객에게 부담을 주고 싶지 않은 자식들의 바람으로 이루어졌다.
한국에서는 일부 층에서 축의금을 안 받는 것을 가끔 볼 수 있는데 유족에게 전달되는 조의금은 그동안 받았던 것을 되돌려 줘야 한다는 관행이 굳어져서 상을 당한 가족 생각도 없이 일방적으로 하는 행동이다.사람이 사는 곳의 관례는 내가 만들고 형편에 맞게 정하는 것이다. 끝나고 장부를 뒤져서 누가 얼마를 내고 얼마를 받았으니 기억해서 다음에 내야 하는 불편과 당연히 이 정도는 내야 하는데 그 정도로 받아서 섭섭할 마음도 없이 담백하게 끝내는 게 좋은 문화 같다. 여유가 있는 사람도 당연히 받는다.
성격이 급하여 빨리빨리가 유행어가 되어 처음에는 나쁘고 고쳐야 하는 성격으로 번졌지만, 컴퓨터의 발달과 우리 문화의 비교점에서 지금은 긍정적인 의미로 변해 가고 있다. 우리의 경제가 급격하게 발전하며 사람들이 갖고 있는 재산도 똑같이 커져서 어떻게 써야 할지 모르는 채 많이 갖고 있는 부류도 있다.
버스나 지하철에서 서있는 사람의 짐을 들어주면 안 된다든가 상가나 결혼식장에 등산복과 운동화를 신고와도 괜찮은 생소한 문화는 예전에 살다가 가끔 접하는 사람은 불편하게 느껴지는, ‘일반화가 되어있는' 편리를 최우선으로 하는 비 매너 생활양식의 변화다. 서서히 변하지 않고 일 년에 한번을 가는 사람에게도 매번 놀랍다.
아직 미국에 사는 한국 사회에까지는 오지 않았지만 죽은 이에게 예를 갖추고 경의를 표시함에 있어서 바쁘다는 핑계로 계좌에 입금하고 마는 것을 당연시하거나 계좌번호를 메일로 보내어 부추기는 것은 너무 경망스럽고 이기적이고 편의주의가 선진국의 문화를 앞질러도 너무 앞질렀다.
고칠 것은 고쳐가며 서로의 발전된 문화가 정착되는 것도 괜찮으나 정말 필요한 사람에게는 도움이 되도록 예의를 갖추며 사는 게 상부상조며 인간 도리다. 받았으니 주고, 안 받았으니 못주고, 이만큼 줬는데 요만큼 받았다느니, 이 정도로 나를 생각하고 있구나 하는 피곤한 나의 머리 쓰는 것에서 자유로워지는 게 좋다.
없는 사람에게는 도움이 될 수 있는 관습이지만 받아서 내 팔자 고쳐지는 것 아니라면 조금 여유로운 마음으로 손님 맞고 개운하게 끝내서 가시는 분에게 편안함을 주는 문화가 훨씬 고급스러워 보인다. 큰일에 도움을 주기 위한 성의 표시이다.
사회마다 조금씩 틀리지만 변화무쌍하게 효율이 좋으면 쉽게 따라가는 한국의 문화는 빠르고 편리하게 변하다가 어떤 해결되는 좋은 일이 일어날 것도 같기는 하다. 생각하며 사는 발전되고 고급스러움으로 변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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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근혁 패사디나, M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