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대한민국의 존립을 지키는 유일한 수단

2024-06-25 (화) 민경훈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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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제2차 대전은 1939년 9월 1일 독일이 폴란드를 침략함으로써 시작됐지만 독일은 이를 ‘방어 전쟁’으로 불렀다. 한국도 비슷한 경험을 했다. 북한은 1950년 6월 25일 새벽 3.8선 전역에 걸쳐 기습 남침을 감행했다. 그러면서도 이를 한국의 북침을 응징하기 위한 방어전으로 포장했다. 지금도 북한은 1953년 7월 27일 휴전 협정일을 ‘조국 해방 전쟁 승리 기념일’(전승절)로 자축한다.

지난 19일 평양을 방문한 러시아의 푸틴은 북한과 사실상 군사 동맹 조약을 체결했다. 이 조약의 핵심은 북한과 러시아 어느 한쪽이 무력 침공을 받아 전쟁 상태가 발생하면 지체 없이 상호 군사 원조를 제공하기로 한 것이다.

러시아측은 한국이 북한을 침공할 일은 없을 것이기 때문에 한국이 걱정할 필요가 없다는 설명까지 곁들였다. 한마디로 웃기는 주장이다. 히틀러의 폴란드 침공과 북한의 남침에서 보듯 어느 나라가 어느 나라를 먼저 침공했느냐는 일단 전쟁이 발발하면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


핵을 가진 북한과 체첸, 조지아, 우크라이나에 이르기까지 침략 전쟁에 이골이 난 러시아와의 군사 동맹이 맺어지면서 한반도의 안보 지형은 중대한 변화를 맺고 있다. 일부에서는 한국이 미국의 핵 우산 아래 있고 ‘한미 상호 방위 조약’이 체결돼 있다며 대수롭지 않게 여기고 있으나 매우 잘못이다.

1953년 체결된 ‘한미 상호 방위 조약’은 한반도 안정에 기여하고 있는 것은 분명하나 유사시 미군의 자동 개입을 보장하고 있지 않다. 이 조약의 핵심인 제2조는 “당사국 중 어느 1국의 정치적 독립 또는 안전이 외부로부터의 무력 공격에 의해 위협받고 있다고 어느 당사국이 인정할 때 언제든지 당사국은 서로 협의한다”라고 돼 있다.

다시 말해 한국이 무력 공격받더라도 어떤 조치를 취할 것인지는 양국 간의 협의를 통해 정한다는 말이다. 북한의 대륙간 탄도탄 개발이 완성되고 여기 핵무기 탑재가 가능하게 되면 미국이 워싱턴과 뉴욕이 핵 공격을 받을 위험성을 감수하고까지 한국 방위에 나서줄 지는 더욱 불투명해진다.

최근 한국에서 자체 핵무장 목소리가 높아지는 것은 이런 현실을 반영한 자연스런 현상이다. 국가 정보원 산하 국가 안보 전략 연구원은 23일 전략 보고서를 통해 “러시아가 사실상 북핵을 용인했다”며 “전술핵 재배치, 나토식 핵 공유, 자체 핵무장 등 다양한 대안에 대해 정부 차원의 검토 및 전략적 공론화를 추진해야 한다”고 밝혔다.

이 중에서 항구적으로 한국의 안보를 지킬 수 있는 것은 독자적 핵무장뿐이다. 전술핵 재배치나 나토식 핵공유는 결국 최종 결정권자인 미국의 동의가 있어야만 핵을 쓸 수 있다는 점에서 양국의 이해 관계가 엇갈릴 때는 무용지물이다.

어떤 국가간의 약속도 그것을 지키는 것이 자국의 이익에 도움이 되는 순간까지만 유효하다. 가까운 역사만 보더라도 미국의 군사 지원 약속을 믿고 있다 무너진 월남과 아프가니스탄 정부, 핵무기를 스스로 넘겨준 후 러시아 침공으로 영토를 빼앗기고 폐허가 돼 가는 우크라이나 등 그 예는 수없이 많다.

한국뿐 아니라 미국에서조차 한국에 핵 옵션을 허용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는 것도 현 사태의 위중성을 보여준다. 케이토 연구소의 더그 밴도우 연구원은 “한국의 독자적 핵 개발을 차악의 선택으로 받아들여야 한다”고 주장했고 앨리슨 후커 전 백악관 국가 안보 회의 아시아 담당 선임 보좌관은 “한국이 자체 핵 무장을 향해 … 더 빠른 속도로 나아간다는 사실을 배제할 수 없다”고 말했다.


한국이 자체 핵을 개발해야 할 이유는 또 있다. 한국의 현 출산율은 여성 한 명당 0.6명으로 세계 최저 수준이다. 20년 후 20살 난 남성 수는 12만으로 지금보다 반으로 준다. 한국군 숫자는 2030년대 중반이면 지금 50만에서 30만도 유지하기 힘들어진다. 이런 상태에서 핵으로 무장하고 있는 북한의 120만 병력을 상대하는 것은 불가능해진다. 자체 핵 보유 없이는 대한민국의 생존이 어렵다고 보는 것이 상식이고 한국 국민의 70%가 이를 지지하고 있다.

그럼에도 일각에서는 이를 끝내 반대하고 있다. 흥미로운 것은 이들 중 상당수가 반미 자주화를 입에 달고 살며 대북 유화론을 펴는 좌파라는 점이다. 다른 것은 모두 미국이라면 이를 갈면서 안보만은 철저하게 미국에 의지하자는 이들을 어떻게 봐야 할 것인가.

물론 핵 개발에는 미국 설득부터 많은 난제가 놓여 있다. 그러나 대한민국의 존폐가 걸린 문제를 시도조차 해보지 않고 포기할 수는 없다. 지금부터라도 한국 정부는 이를 실현하기 위한 첫 걸음을 내디뎌야 한다.

<민경훈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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