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발언대] ‘해킹 도둑과 도둑 은행’

2024-05-30 (목) 채수호 자유기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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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해 말 크리스마스 전 후 2, 3일 사이에 내가 알지 못하는 여섯건의 데빗카드 사용금액들이 무려 5000여불이나 나의 은행구좌에서 우루루 빠져나갔다. 누군가 나의 데빗카드 정보를 도용하여 베xx바이에서 TV, 랩탑, 셀폰 등 전자제품들을 무더기로 사 간 것이다. 모바일뱅킹 앱에서 이러한 사실을 확인한 즉시 P은행 고객서비스부서와 타운의 경찰서에 신고하고 사용하던 데빗카드를 폐기하였다.

P 은행은 신고한지 3일만에 해킹당한 금액 전액을 내 구좌에 입금시켜주었다. 은행에서 자체적인 수사를 착수해서 그 결과가 나올 때 까지 우선 임시로 크레딧을 지급한다는 단서가 붙어있었다. 나는 은행의 신속한 조치에 고마워하며 문제가 해결된 것으로 알고 이 일을 덮어두었다. 그런데 잊어버리고 있던 이 문제가 지난 4월 초 느닷없이 다시 불거져나왔다. 은행에서 내게 돌려주었던 5000여불 중에서 두건의 거래대금 1600여불을 다시 빼내간 것이다. 뿐만아니라 은행은 뜻밖의 인출로 인해 연쇄부도가 난 12건의 수표에 대해서도 건당 36불씩 오버드래프트 수수료를 꼬박 꼬박 부과하였다.

영문을 몰라 은행 고객서비스부서에 전화로 문의하였더니 자체조사결과 해당 두건에 대해서는 물품 구매자가 베xx바이에 제시한 3 포인트 정보가 정확하므로 합법적인 거래라는 것이었다. 나는 ‘도둑이 이미 내 정보를 훔쳐갔는데 그것이 맞는것은 당연한 일이 아닌가, 그리고 도둑이 베xx바이에서 저지른 여섯건의 불법거래 중에서 왜 두건만 합법적일 수 있는가?’ 하고 따져물었다. 은행은 나의 질문에 ‘자체조사결과 합법적이었다’ 는 무성의한 답변만 되풀이하였다.


그로부터 한달간 나는 은행에 열번 넘게 전화를 걸어 이의(디스퓨트)를 신청하였고 은행은 이의신청을 접수한지 3일도 채 안되어서 매번 같은 내용의 우편통지문을 보내왔다.
아무리 은행을 상대로 하소연해봐야 도둑맞은 내 돈을 돌려받을 수 없다는 것을 알게된 나는 다른 방법을 택하기로 했다. 우선 베xx바이 본사에 연락해서 도둑이 물건을 픽업해 간 뉴저지 매장의 주소와 날짜, 시간 등을 확인하여 그 정보를 타운의 형사에게 전달하고 그시간에 내가 뉴욕에 있었다는 것을 증명하는 뉴욕 지하철 티켓OMNY 구입기록도 제출하였다. 그 다음 금융거래 불만신고센터(CFPB)에 자초지종을 적어보냈다.

그로부터 일주일도 안되어서 P은행 고객담당 중역이라는 사람이 내게 전화를 걸어왔다. 내가 문제삼았던 불법거래대금 1600불과 그로인해 발생한 오버드래프트 수수료 432불 전액을 환불해주겠다는 것이었다. 작은 승리를 기뻐하기 전에 ‘영어도 서툴고 정신도 흐려져있을 늙다리 아시안 이민자이니 적당히 시간을 끌면 제풀에 나가떨어지겠거니’하고 생각했을 대기업의 횡포에 씁쓸한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채수호 자유기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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