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요양원, 갈 것인지 안 갈 것인지?

2024-05-28 (화) 윤여춘 전 시애틀 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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뇌출혈로 쓰러진 동갑내기 매제가 4년째 요양원에 누워있다. 초기엔 내가 보낸 위문편지를 읽어주면 눈을 껌벅거린다며 간호사가 동영상을 찍어 보내줬는데 지금은 누이가 문병 와도 전혀 반응이 없단다. 내 어머님도 요양병원에 1년반 가량 누워계시다가 돌아가셨다. 거동은 불편하셨지만 정신이 말짱하셔서 간호사들의 찬탄을 받으셨다. 한국의 요양원 인상이 좋게 남아있다.

내가 시애틀에서 20년 동안 살았던 쇼어라인 동네의 한 요양원에서 알츠하이머를 앓는 두 할머니를 상습적으로 강간한 남자 간병인이 지난 주 2년 만에 체포돼 구금됐다. 그는 치매환자의 말을 믿지 말라며 고국인 필리핀으로 도주했다가 지난 2월 슬그머니 미국으로 돌아왔다. 경찰은 그가 버린 담배꽁초에서 채집한 DNA가 피해 할머니들에게서 채집한 것과 일치하자 즉각 체포했다.

미국 요양원(너싱홈)에서 일어나는 성폭행은 새삼스러운 일이 아니다. 이미 7년 전에 CNN이 ‘요양원의 강간사태’라는 제목으로 보도한 특집기사를 보면 미네소타 요양원에서 치매 할머니를 상습적으로 강간한 손자뻘 간병인이 동료에게 들켜 쇠고랑을 찼고, 텍사스와 노스캐롤라이나에선 인지능력이 없는 할머니들에게 강제로 구강섹스를 시킨 간병인들이 가족의 신고로 체포됐다.


캘리포니아에선 치매 할머니를 성폭행한 후 “나는 이래서 이 직업이 좋다”며 히쭉인 간병인이 할머니의 고함소리에 도망쳤다. 간병인들이 내 매제 같은 뇌성마비 환자 등 할아버지 5명을 벗겨놓고 젖꼭지와 성기를 꼬집으며 행진시켰다. 미네소타에선 10대 남녀 보조간병인들이 할머니 할아버지 치매환자 15명을 한 방에 모아놓고 가슴을 더듬고 사타구니를 문지르며 킬킬 거렸다.

CNN은 2000년 이후 전국 요양원에서 발생한 성폭행 신고가 1만6,000여건에 달하고 2013년부터 2015년까지 1,000여 업소가 처벌받았다며 피해자들이 대부분 증언능력 없는 치매환자들이고, 감독관이 부족하며, 업주들이 처벌이 두려워 사건을 은폐하기 일쑤고, 저임금(시간당 11~12달러)이어서 자질 있는 간병인들이 외면하는 점 등이 양로가정의 성폭행 사태를 부추긴다고 지적했다.

세계보건기구(WHO)도 미국 요양원의 노인폭행 사태가 이미 전국적 이슈라고 지적했다. WHO는 2020년 보고서에서 전국 요양원과 여타 사회복지시설에 수용된 60세 이상 성인들 가운데 6명 중 1명꼴로 신체적, 정서적, 성적 또는 재정적으로 학대당한다며 당국에 신고되는 사건은 24건 중 1건 꼴에 불과하기 때문에 실제로 일어나는 노인 피해사례는 훨씬 많다고 덧붙였다.

내가 좋게 생각하는 한국 요양원에선 아직 성폭행이 문제되지 않지만 물리적 폭행은 꼬리를 잇는다. 최근 인천의 한 요양원에서 60대 여성 간병인이 84세 할머니를 폭행해 다리를 부러뜨린 혐의로 체포됐다. 작년 7월엔 파주 요양원에서 80대 치매 할머니를 폭행해 숨지게 한 간병인과 동료 치매환자 2명이 폭행치사 혐의로 기소됐다. 이 할머니는 입소한지 20일 만에 변을 당했다.

폭행문제가 아니라도 요양원에 자발적으로 들어가겠다는 노인은 보지 못했다. 요양원은 현대판 고려장으로 비유된다. 쇠락한 노인들이 모여 영구차를 기다리는 대합실이란다. 부모를 요양원에 보내면 불효라는 유교적 통념이 강하지만 그래도 자식들에게 희생을 강요할 수 없다. 가족 하나가 전담 간병인이 돼줘야 한다. 부모자식 간, 자녀부부 간 갈등으로 가정파탄이 일기도 한다.

청년들의 군 입대처럼 노인들의 요양원 입소는 절박한 이슈다. 나는 아직 건강한 편이라고 애써 자위한다. 하지만 모를 일이다. 랜드연구소 보고서에 따르면 57~61세 미국인들 중 56%가 죽기 전에 요양원에서 최소한 하룻밤을 지내게 된다. 1,000밤을 지낼 사람도 10%나 된다. 요양원에 가지 않기 위해, 가더라도 군복무 기간보다 짧게 살기 위해 오늘도 산책길을 열심히 걷는다.

<윤여춘 전 시애틀 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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