뇌종양 진단을 받던 날, 동료 선교사 두 분의 중병 소식도 듣게 되었다. 그들도 청천벽력 같은 진단에 일상이 요동치겠구나. 우리 소식을 듣는 다른 동료들에게도 충격이 일렁이겠구나. 문득, 예고없이 들이닥친 나의 위기가 나만의 일이 아니라 ‘우리’의 일이고, 날마다 누군가들이 겪는 일이라는 현실이 가슴을 파고 들었다. 나의 상황에 객관성이 부여되자 마음에 의연성이 생겼다. 많은 사람들이 헤쳐가는 가시밭길을 외면하고 나홀로 꽃 길을 고집할 순 없다.
지나온 인생을 돌이켜 보는데, 삶이 통째로 선물임을 깨닫는다. 우여곡절 많은 삶의 현장에서 쏟아 부은 땀과 눈물에 비해 내가 누린 열매는 늘 과분하게 넘쳤다. 때로 몸과 마음이 번아웃 되어 주저 앉기도 했다. 하지만 깊은 침체의 시간을 견디며 숨을 고르노라면, 어느새 삶은 다음 단계로 나아가고 기대치 않은 새로운 장이 열리곤 했다. 내가 겪는 모든 것들을 통해 결국 진일보의 성장을 이끌어내는 보이지 않는 큰 손이 늘 함께 해왔다. 그러니 잘했다고 자랑하거나 못했다고 위축될 것이 없다. 건강하다고 자만하거나 아프다고 절망할 일도 아니다.
투병 중이던 어느 날, 같은 시기에 중증 진단을 받았던 그 분들이 세상을 떠났다는 소식을 들었다. 처음 중증 소식을 접했을 때 각오했던 일이다. 우리 중 누군가는 떠날 수도 있다. 사람이 죽는 것은 정해진 일이니 그 시기가 당겨진다고 크게 동요되지 말자. 그럼에도 그들의 부고 소식에 심장이 내려앉았다. 함께 시작했던 경주에서 혼자 남겨진 듯한 쓸쓸함이 쓰나미처럼 몰려왔다.
멍한 정신을 가다듬고 주변을 둘러보는데, 그동안 눈에 띄지 않았던 사람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각자의 방식으로 투병의 경주를 감당하고 있는 이웃들이다. 내가 그러했듯, 다들 자기 앞에 펼쳐진 가시밭길을 헤쳐가느라 절박하고 외로운 싸움을 하고 있었다. 그들을 향해 손 흔들며 진심 어린 인사를 건네고 싶었다. 나도 같은 경주를 하고 있다고… 함께하는 이웃들이 있다고… 무엇보다, 이 경주에서 승리하기까지 거대한 사랑의 손이 우릴 붙들고 있다고… 당신은 결코 혼자가 아니라고…
지난 몇 달간 나의 투병 이야기를 풀어놓으면서, 과거의 흔적이 현재의 아픔으로 되살아나 움찔하며 뒷걸음질친 순간들도 있었다. 그럼에도 굳이 그 기억들을 되짚어 드러낸 것은 누군가에게 동병상련의 위로와 격려가 닿길 바라는 간절함 때문이었다. 그러니 아픈 몸과 마음을 다독이며 외로운 경주를 하고 있는 그대여, 우리 서로 응원하며 함께 소망의 빛을 바라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