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대부’를 보면 지난 15년간 미국의 중동정책을 한마디로 압축해 묘사하는 듯한 대사가 나온다. 대부 3부작의 마지막 편에는 나이가 든 마이클 콜레오네가 자신의 과거와 거리를 두려는 모습이 그려진다. 백발의 ‘대부’ 마이클 콜레오네는 손에 피를 묻히는 ‘마피아 사업’에서 손을 떼고, 은원관계로 맺어진 오랜 인연을 정리하려든다. 그러나 걷잡을 수 없는 위기상황이 그를 제자리에 주저앉힌다. 은퇴계획이 틀어지자 마이클은 “이제 막 빠져나온 줄 알았는데 다시 끌려 들어갔다”고 한탄한다.
지날 달 요르단에서 현지 무장단체의 드론 공격으로 세 명의 미군이 사망하자 바이든 대통령은 대응방향과 수위를 놓고 고심했다. 당시 바이든 대통령도 마이클 콜레오네와 같은 생각을 하지 않았을까?
조지 W. 부시 대통령 집권 2기 이후, 미국 행정부는 중동에서의 역할을 축소하려 했다. 논리적으로 타당한 결정이다. 중동지역에서 미국이 수입하는 원유량은 극히 미미한 수준에 불과하다. 이라크에 새 정부를 수립하고 개혁을 이루려던 미국의 시도는 엄청난 역효과를 불러왔다. 게다가 미국 주도의 국제질서를 위협하는 세력은 중동국가가 아니라 중국과 러시아다. 중동은 곁가지에 불과하다.
그러나 위기란 우리가 선택한 시간과 장소에서 발생하는게 아니다. 미국이 중동지역에서 발을 빼기 시작하자 이 지역의 판세를 바꾸어 놓을 일련의 움직임이 일어났다. 중동에 대한 워싱턴의 관심이 떨어지면서 예멘의 후티 반군에서 레바논의 헤즈볼라와 (이번에 미군을 상대로 테러공격을 자행한) 이라크 이슬람 저항운동에 이르기까지 반미 무장단체들의 힘과 영향력이 대폭 강화됐다.
이들이 각자의 위치에서 영향력과 중량감을 잃지 않도록 지원하는 ‘뒷배’가 바로 시아파의 맹주인 이란이다. 가자지역에서 벌어지고 있는 이스라엘-하마스 전쟁은 이란을 등에 업은 중동지역의 반미 무장세력들에게 그들의 적법한 존재이유를 입증하고, 무력을 과시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제공했다.
이들의 공격이 확전으로 이어지는 것을 막으려는 워싱턴의 노력은 목표달성을 위해 무력개입의 수위와 강도를 끌어올려야 하는 역설적인 논리의 함정에 빠졌다. 바이든이 ‘자제’ 쪽으로 기울 경우 공화당은 그가 약한 모습을 보인다며 비난공세를 강화할 것이다. 이미 린지 그레이엄을 비롯한 공화당 상원의원들은 미국의 신뢰도를 보전하기 위해 이란에 공습을 가해야 한다고 목청을 높였다.
하지만 미국의 군사개입 확대는 잘못된 선택이 될 것이다. 중동지역의 무장단체들은 정규군과의 전투에 능하다. 후티 반군은 거의 10년에 걸친 사우디의 폭격을 무탈하게 견뎌냈다. 헨리 키신저가 닉슨의 국가안보보좌관으로 발탁되기 몇 주전 포린 어페어즈에 기고한 에세이를 통해 지적했듯 “게릴라는 지지만 않으면 이긴 것이다.”
미국 외교정책의 비극은 이런 딜레마를 너무도 명백히 겪었다는데 있다. 정부에 들어간 키신저는 미국의 신뢰도를 흠 없이 유지해야 할 필요성과, 절대 약하게 보여선 안 된다는 압력에 굴복했다. 그는 북베트남군을 겨냥한 대대적인 무력조치를 지지했지만, 결국 실패로 끝났다. 월남전에서 북베트남은지지 않음으로써 이겼고, 미국은 이기지 못해 졌다.
이란의 대리역인 중동의 반미 무장집단들은 미국과 이스라엘의 대규모 전략적 실수를 유도하기 위해 혼란을 극대화하려든다. 이들의 최대 노림수는 이스라엘과 사우디아라비아의 관계정상화 노력을 무산시키는 것이다. 이라크 이슬람 저항운동이 미군에 가한 공격은 구체적인 목표를 갖고 있었다. 이라크에 주둔 중인 미군을 내치도록 이라크 정부에 압력을 가하는 것이 그들의 목표였다.
이라크 이슬람 저항운동은 시아파 정당들로 짜여진 바그다드 연합정부를 지탱하는 중심세력이다. 워싱턴과 이들 무장 집단 사이의 전투에서 바그다드 정부는 정권 유지 차원에서 이라크 이슬람 저항운동의 손을 들어줄 수밖에 없다. 이라크 정부가 이들의 압력을 이기지 못해 미군 주둔군을 내치면 이란은 ‘이라크 접수’를 완료하게 된다. 이렇게 되면 이란은 미국이 페르시아만에 구축한 안보체제를 허물어버린다는 목표에 한 걸음 더 다가서게 된다.
바이든 행정부는 미군 사망자가 나온 테러공격에 무력으로 대응할 수밖에 없지만 확전으로 이어지지 않을 방도를 찾아야 한다. 이란은 이미 여러 경로를 통해 그들 역시 확전을 원치 않는다는 신호를 보냈다.
이란의 지원 아래 미국의 국익을 해치려는 광범위한 캠페인에 대응하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군사적 개입을 확대하는게 아니라 워싱턴이 이 지역의 정치적인 긴장을 해소할 능력을 지니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다시 말해 가자의 위기를 이용해 이스라엘의 안보욕구와 팔레스타인의 독립국가 건설 열망을 충족시킴으로써 이 지역의 장기적인 안정에 필요한 조건을 만들어내는 것이다. 여기서 성공한다면 사우디와의 관계정상화뿐 아니라 아랍 국가들과 이스라엘 사이의 광범위한 화해가 수월해진다. 이런 종류의 정치적, 외교적 대응은 워싱턴 매파들의 비위에 맞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이것이야말로 미국의 적대국에게 가하는 가장 효과적인 받아치기가 될 것이다.
같은 영화에서 마이클 콜레오네는 이렇게 말한다. “너의 적들을 결코 미워하지 말라. 그 미움이 너의 판단력에 영향을 줄 것이다.”
예일대를 나와 하버드대에서 정치학 박사학위를 받은 파리드 자카리아 박사는 국제정치외교 전문가로 워싱턴포스트의 유명 칼럼니스트이자 CNN의 정치외교분석 진행자다. 국제정세와 외교부문에서 가장 주목받는 분석가이자 석학으로 불린다.
예일대를 나와 하버드대에서 정치학 박사학위를 받은 파리드 자카리아 박사는 국제정치외교 전문가로 워싱턴포스트의 유명 칼럼니스트이자 CNN의 정치외교분석 진행자다. 국제정세와 외교부문에서 가장 주목받는 분석가이자 석학으로 불린다. <
파리드 자카리아 워싱턴포스트 칼럼니스트 / CNN ‘GPS’ 호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