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제프 안의 한국 기행

2024-02-11 (일) 제프 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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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맛집 투어와 호캉스, 목적 없는 유랑체험

▶ 두 손으로 아름다움 창조한 남자들…거제 ‘매미 성’·‘외도’에서의 감격

제프 안의  한국 기행



-사랑의 진실
1969년 이런저런 사업에 실패한 이창호 씨는 마음을 달래려 부인 최호숙 씨와 낚시를 왔다 태풍을 만나 이 삭막한 섬에서 민박을 한다. 황폐한 바위섬에는 달랑 8가구가 살고 있었는데 1973년 그는 3년에 걸쳐 섬을 헐값에 사들였고, 섬으로 이주한 후 2003년까지 손수 단 하루도 안 쉬고 서양 고전에나 나올 법한 신비의 섬으로 가꾸었다.

부인 최효숙 씨의 회고에 의하면 마치 정신이 나간 사람처럼 그는 일했다고 한다. 섬 정상에 이르면 정원은 바다 위에 떠있는 몽환적 자태를 마냥 뽐낸다. 한 남자의 사랑이 이토록 위대하구나 하는 생각만이 내 머리를 채웠다.


그렇다, 사랑은 눈과 마음 그리고 목숨까지 모두 빼앗아간다. 그러나 사랑이 없었다면 이 모든 것 존재치 않았으리라. 바닷바람 휘몰아치는 외도 섬 최정상 작은 카페에서 에스프레소 한잔을 들이키는 맛이 내려다보이는 남해 풍광과 어울려 황홀했다.

-여기는 왜 온 거야
때때로 여행사 단체관광을 하다 보면 여기는 왜 손님들을 이끌고 왔을까 의문이 생기는 곳들이 있다. 거제시 매미성이 그런 곳이다. 남해 바닷가 어디라도 사진발 안 받는 곳 없건만 ‘성’이라는 이름에 전혀 걸맞지 않는 작은 토목공사에 불과한 곳에 우리는 도착해 걸어 내려갔다. 작은 골목길 양옆으로 미역과 김을 파는 소박한 노점들이 우리들을 반겼다.

도착한 바닷가 매미성은 2003년 태풍 매미로 경작지를 잃은 농작인 백순삼 씨(이름도 순박하다)가 자연재해로부터 작물을 지키기 위해 맨손으로 홀로 쌓아 올린 성벽이다. 방파제로 쌓기 시작했던 벽의 모습이 시간이 경과될수록 유럽풍의 여러 구비 돌계단과 로맨틱한 ‘니치’들로 연결되어 보는 이들에게 이국적 풍경을 선사했고 입소문으로 새로운 관광지로 탄생했다. 물론 그 배경에는 지역경제를 살리자는 절실한 의도 역시 깔려 있었다. 매미성은 전체를 둘러보는데 고작 10분도 안 걸렸다.

-“일하는 중 말 걸지 마세요”
공사가 진행 중인 한편에 손으로 쓴 작은 사인이 눈에 들어왔다 “일하는 중 말 걸지 마세요.” 웃음이 절로 나왔다. 한국인만큼 자신의 일에 열심인 국민도 없을 것이다. 나는 와이프에게 관대한 편이지만 그녀가 일에 열중하고 있는 내 모습을 보면서도 자꾸 말을 걸어오면 순간적으로 뚜껑이 열린다. 그래서 주인장의 마음이 이해가 갔다.

그러나 “궁금하시면 물어보세요”라고 써 있다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20년에 걸쳐 남이 안 하는 일을 홀로 묵묵히 하시는 분이라면 그래서 이제 찾아오는 관광객들과 자신의 철학을 진솔하게 대화하는 모습은 어떠할지 궁금했다.

버스에 오르기 전 “100% 석류주스 여성 몸에 최고”라는 사인이 보여 노상에서 12oz 한 병 구입했는데 만원이었다. 버스에서 와이프에게 건네자 “좀 비싸지” 하면서도 꿀꺽 잘도 들이킨다. 버스에 오르는 다른 분들 손에도 석류주스와 미역다발들이 들려 있었다. 미국에서 관광 온 분들은 상당히 유하면서도 관대하다. 알면서 속는다는 말이 있다. 사실 속아주는 것이다. 우리들은 서로를 바라보며 “donation” 하며 웃었다. 물건 구입하면서 ‘도네이션’ 하는 여유 생긴 걸 보면 대한민국과 미주 한인 모두 많은 성장한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외도와 매미 성의 남자들
이번 고국여행을 하면서 가장 감격스러웠던 부분은 역시 대한민국의 놀라운 발전이었다. 과거 눈에 보이는 발전에 초점이 맞추어졌다면 피부와 감성에 와 닫는 발전이 이루어졌음을 실감할 수 있었다. 외도와 매미 성이 그랬다. 당시 외지고 황폐했던, 그 누가 보아도 경제성 없는 서구식 정원을 황량한 돌 바위섬에 가꾼다? 그리고 또 한 분은 정부의 지원도 없이 혼자서 태풍을 막자고 방파제 성을 쌓는다? 모두 허망 된 남자들의 객기로 치부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불가능을 가능하게 만들었던 대한의 남자들은 달랐다. 그리고 가이드의 표현대로 외도는 지금 “돈을 다발로 벌어들이는 곳”이 되었다. 두 분의 공통점은 태풍의 피해자라는 점이다. 고난은 우리를 힘들게 하지만 겪고 나면 더욱 튼튼하게 만든다. 고난을 겪었는지 안 겪었는지는 결과가 말해준다. 미국에서 맨손으로 일군 수많은 성공의 신화 역시 한국 남자들의 맨손에서 이루어졌다. 미국에서 성공한 사람 치고 한국에서 돈 가지고 왔다는 사람은 단 한 명도 만나보지 못했다. 오늘날에도 미국의 위대함을 말해주는 것 역시 최고의 부호들은 모두 자수성가한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외도와 매미성에서 나는 그들의 고행이 눈에 보였기에 가슴이 더욱 벅차 올라왔다.

두 손으로 아름다움을 창조한 남자들, 그중 한 명은 이미 운명을 달리했고 노부인만이 섬 봉우리에 그가 세운 저택에서 홀로 남해의 망망대해를 바라보고 있다. 그 눈에 보이는 것은 남자의 마음일 것이다.
문의 jahn20@yahoo.com

<제프 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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