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대나무 침대

2024-02-09 (금) 김홍식 내과의사·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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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인들이 멕시코를 방문하면서 가난한 현지인들 중 맨바닥에서 잠을 자는 분들에게 나무로 침대를 만들어 준다는 소식을 접하고 나도 간접적으로 동참할 기회가 있었다. 침대의 시작은 동굴에서 살던 원시시대에 오물이나 해충을 피하기 위해 잠자리를 땅에서 들어올리기 위한 것으로 추측된다. 고대 이집트 침대는 4개의 동물 다리 모양이 침대 상판을 지지하고 있다.

상당한 시간이 흘러간 일이지만 인도네시아 정글 지방에 선교를 갔을 때가 생각이 났다. 여름이었고 적도 부근이니 낮에는 무척 더웠다. 보르네오 섬 원주민들을 방문하여 의료를 포함한 봉사를 늦게까지 하고 숙소로 돌아가기엔 시간이 많이 흘렀고 원주민들과 친해지기도 할 겸 대원들은 삼삼오오 흩어져 원주민들의 집에서 밤을 지내기로 하였다. 나도 허름한 원주민 집에 도착을 하여 주인이 내어온 과일을 맛있게 먹고, “잠은 어디서 잘까요?” 하니, 창문도 제대로 되어있지 않은 방에 있는 대나무로 엮은 판상을 가리킨다. 매트리스도 이불도 없었다. 가지고 간 가방에 있던 수건 한 장을 깔고, 가지고 있던 모든 반팔 티셔츠를 껴입고 누웠는데 갑자기 정글의 소낙비가 지나가니 온도는 떨어져 추워오고 등짝은 배겨서 잠을 이를 수도 없다.

돌아누우면 몸이 더 쑤시니 밤새 끙끙 거리다 새벽녘에 잠깐 졸았던 모양이다. 대나무 판상 밑에서 닭과 돼지들이 짖어대는 바람에 놀라 깨어났다. 온 몸은 쑤시고 뻐근한데 손님 대접한다고 연기 나는 불을 피어대며 직접 따서 볶은 후 엉성하게 갈은 원두커피를 따뜻한 물에 타고 고구마처럼 생긴 열매를 쪄서 준다. 굴뚝이 없어 온 집에 퍼지는 매운 연기 속에서 정제되지 않아 텁텁하지만 따뜻한 커피와 열매를 같이 먹으니 살 것 같다. 새벽과 함께 떠오르는 태양의 볕을 쬐니 굳은 온몸 근육이 조금씩 녹았다. 온 집에 퍼지는 매운 연기는 벌레를 쫓아내는 역할에는 좋았으나 많은 원주민들의 기관지에 나쁜 영향으로 천식을 일으키고 있었다.


한국의 온돌과 굴뚝이 간절히 생각났다. 온돌은 방바닥에 돌을 깔고 아궁이에 불을 지펴서 돌을 달구어 방을 데우는 구조인데 열이 돌에 축적되기 때문에 누워있으면 온몸 근육이 풀린다. 바닥에서부터 공기가 더워져 방안의 습도가 적당히 유지되고 아궁이에 땐 불의 연기는 굴뚝으로 빠져 나가기에 방안의 공기는 맑다. “인도네시아에 굴뚝과 온돌이 어떨까?” 하는 생각을 해 보았다. 난방효과는 좋지만 온돌에서의 생활은 앉아서 하는 생활이기에 딱딱한 바닥에서 자는 건 물론, 눕고 일어나는 과정에서 척추에 가해지는 압력이 누적되다가 나중에 척추질환 발병에 영향을 끼친다. 침대와 매트리스를 사용하면 좌식생활에서 오는 척추의 과부하를 피해 비교적 편하게 눕고 일어날 수 있다.

고대 그리스 로마인들에게 침대는 잠을 자는 용도뿐 아니라 사회생활의 중심이었다. 성기게 속을 채운 매트리스가 이때 처음 생겨났는데 이집트 침대보다 부드럽고 푹신했다. 4각 형태에 머리받침대를 갖춘 간소한 침대가 유행했으며 이 침대들은 식사나 사교를 위한 소파로 쓰였다. 15세기 르네상스 시대에는 신분이 높은 귀족들 사이에서 침대는 사회적 권위를 나타내는 것이었다. 우산 모양의 천개와 아름다운 무늬를 넣어 짠 커튼을 드리웠다.

19세기 후반에 접어들면서 비로소 침대가 서민 계급 사이에 널리 보급되어 장식보다도 실용적인 면에 중점을 두게 되었다. 최고의 숙면을 위한 매트리스의 기능적 발달과 함께 모션베드도 등장하였다. 모션베드는 상체를 살짝 들어 올려 코골이와 수면무호흡증을 완화하기도, 하체를 상체보다 높게 들어 올려 하체부종 해소에도 도움을 준다. 인류의 초기 침대가 지푸라기나 짐승의 가죽, 말린 고사리 등 자연 소재로 제작되었을 것을 생각하면 오늘날 우리의 잠자리는 얼마나 편한가? 인도네시아의 대나무 판상에서 밤을 지새웠던 일을 떠올리면 하루 밤을 잘 자는 것이 얼마나 큰 축복인지 새삼 느낀다.

<김홍식 내과의사·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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