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인생네컷

2024-01-19 (금) 박인애 수필가
크게 작게
모니터 하단에 2024년 1월 18일 오전 3시 38분 화씨 36도라고 적혀 있다. 잘 시간을 놓쳤다. 초저녁에 조금 잤더라면 좋았을 텐데, 끊임없이 오는 전화와 문자로 눕지 못했다. 회장 임기가 끝난 줄 모르는 분들의 부탁이라 외면할 도리가 없었다. 머릿속이 복잡해서 Red Bull을 마셨다. 차가운 카페인이 들어가니 온몸의 신경이 까치발을 딛고 일어섰다. 몸이 반응한다는 건 살아있다는 증거다. 요 며칠 죽음에 관한 대화만 나눠서 인지 그 단순한 논리가 새삼 감사로 다가왔다.

22년 전 오늘 이 시간에도 깨어 있었다. 아침이면 수술하러 가야 한다고 생각하니 걱정이 앞서 잠이 오지 않았다. 출산할 무렵이면 태아의 머리가 자궁 입구로 내려오는데, 우리 아기는 거꾸로 있어 내려올 생각을 하지 않았다. 의사가 알려준 묘한 자세로 매일 운동을 해 보았지만, 소용없었다. 결국 제왕절개를 하기로 했다. 그날도 오늘처럼 생각이 많았다. 딸을 만날 생각에 설레기도 했지만, 배를 가른다는 사실이 두렵기도 했다.

미국은 서른다섯살 넘은 임산부를 올드 마미로 분류하는데, 마흔의 나이에 아이를 가졌으니 올드 마미 중에도 상 올드 마미였다. 노산일수록 난자가 건강치 못하니 기형아일 확률을 배제할 수 없다며 보험도 적용 안 되는 특수 소노그램을 정기적으로 하였고, 병원 방문 횟수도 젊은 임신부에 비해 많았다. 만약의 경우를 설명할 때마다 불안함이 없진 않았으나, 무조건 낳겠다고 마음먹으니 편해졌다. 사랑하는 사람의 아이를 갖고, 태어날 날을 기다렸던 그때가 살면서 가장 행복했던 시간이었다.


지인의 소개로 만난 여의사가 제니퍼였다. 당시 그녀는 전문의 일 년 차 새내기였다. 키가 작고 마른 체구의 그녀는 꼼꼼하고 자상했다. 나는 불안하지 않은데 혼자 수술한 경험이 없어서 불안했는지 베테런 선배의 도움을 받아도 되겠냐고 물었다. 결국 제왕절개 수술 집도는 할아버지 의사가 하고, 제니퍼는 옆에서 어시스트를 했다. 우리 딸이 제니퍼가 받은 첫 번째 아기였다. 그녀가 내 산부인과 담당의여서 일 년에 한 번 정기검진 때면 만나게 되는데, 잊지 않고 딸의 안부를 묻는다. 어릴 땐 맡길 곳이 없어 데리고 갔기 때문에 보았지만, 학교에 다닌 후부터는 매년 사진을 보여 주며 서로의 자녀들이 자라는 이야기를 나누곤 했었다.

겨울 방학을 맞은 딸내미가 집에 왔을 때 처음으로 산부인과에 갔다. 친구 엄마들이 18살 넘으면 산부인과에 가서 매년 정기 검진을 하는 게 좋다고 조언했을 때, 상 올드 마미는 시집도 안 간 애를 왜 산부인과에 데려가느냐고 정색을 했다.그래서 딸내미는 22살이 되어서야 첫 검진을 받으러 가게 되었다. 미국에서 자라서인지, 친구들에게 들어서인지 몰라도 거부감 없이 받아들였다. 제니퍼는 자기가 받은 첫아기가 숙녀가 되어 온다는 사실이 실감 나지 않는 모양이었다. 친정 엄마처럼 반기는 모습을 보는데 가슴이 뭉클했다. 어릴 때 딸이 앉아 나를 기다리던 복도 의자에 앉아 딸을 기다렸다. 통창으로 들어온 겨울 햇살이 내 등을 쓰다듬었다. 내 어머니는 어떤 생각을 하며 나를 길렀을까 생각하니 눈물이 삼켜졌다.

딸이 자기 생일 선물로 셋이 사진을 찍자고 했다. 중년 아저씨가 된 후, 사진 찍는 걸 반기지 않던 남편이 그러자고 했다. 한주 당겨 생일 파티도 하고 한국 마트에 입점한 무인 사진관에서 인생네컷을 찍었다. 우리는 딸이 시키는 대로 왕관을 쓰고, 포즈를 취하며 네 장의 사진을 찍었다. 어린 딸이 아니면 그런 게 있는지도 몰랐을 것이다. 생각보다 예쁜 사진을 나눠주고 학교로 돌아갔다.

오늘은 딸내미의 진짜 생일이다. 시어머니의 팔순 생신이기도 하고, 문학회 회원인 손용상선생님의 장례식이기도 하다. 축하도, 잘 보내 드리는 일도 남은 자의 몫이다. 아무쪼록 올해도 열심히 노력해서 내년엔 삶까지 업그레이드된 인생네컷을 찍을 수 있었으면 좋겠다.

<박인애 수필가>

카테고리 최신기사

많이 본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