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저주받을 김정은의 신년사

2024-01-15 (월) 정기용 전 한민신보 발행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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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해 벽두 북한 국무위원장 김정은과 노동당 부부장 김여정 자매의 반민족, 패륜적 발표가 한반도 전역에 암운을 드리우고 말았다. 김정은은 “남한은 동족관계가 아닌 교전관계이며 평정해야할 별개의 국가다”라고 선언했다. 남한을 평정하겠다는 것은 무력으로 남한을 정복하겠다는 의도이며 김정은이 이처럼 극단적 발언을 한 것은 자기의 권력을 더 이상 지탱하기 어려운 상태에 이르렀다는 비명으로 다가온다.

김정은은 권력의 위기가 올 때마다 차례로 외부와의 연결고리를 끊어버리는 강경조치를 취해왔다. 한국이 지어준 금강산 관광시설을 철거했고 탈북자들이 보내는 대북전단(삐라) 살포를 트집 잡아 9.19 남북 군사합의 산물인 ‘남북군사 연락사무소‘를 폭파시켜 버렸다.

북한 내부 상황이 심상치 않다는 소식이 전해 올 때마다 김정은의 인민 탄압 강도가 더욱 심화되고 있는 양상이다. 북한 교화소에는 이미 12만여 명의 정치범이 수감돼 있고 지난해부터는 한국 비디오를 보았다는 이유로 학생들이 처형당했다는 보도도 있었다. 청바지를 입었다거나 남한 말투 사용자를 적발하여 처벌했다는 평양방송의 발표도 있었다. 외부의 분위기가 유입되는 것을 극도로 경계하고 있다.


김정은의 새해 첫 연설에서 한반도를 두 개로 나누고 전쟁을 하자는 것은 그의 사즉생 결단, 마지막 카드로 보인다. 김정은은 이 연설에서 남한의 진보 세력들도 심하게 비난했다. “남한의 진보라는 자들도 보수세력과 합세하여 북한을 흡수통일하려는 졸개들”이라고 질책했다.

남한 진보세력의 대표인 문재인 전 대통령은 북한이 탈북자들이 보낸 삐라에 김정은을 폄훼했다고 펄펄뛰며 남북군사 연락사무소를 폭파하자 한국의 국가정보원장, 통일부장관, 안보실장 등 국가 안보라인을 모조리 경질시켰다. 김여정이 강경화 외교장관의 발언을 문제 삼고 “후과를 각오하라”고 협박하자 한 달도 안 돼 강 장관을 경질시키기도 했다. 문재인 전 대통령은 미국의 따돌림 등 압력을 받으면서도 거의 속절없이 북한과 어울렸던 기록이 있는 장본인이다. 그럼에도 김여정은 그를 “교활한 자”라고 직격했다.

한반도 분단 이래 우리는 민주, 공산 양 진영으로 갈라져 6.25 전쟁 등 온갖 우여곡절을 겪었지만 그래도 민족통일의 희망만은 포기하지 않았다. 박정희, 김일성 두 독재자들도 통일의 ‘금과옥조’인 7.4공동성명을 발표했다. 김영삼 전 대통령도 상호 연락사무소 설치, 기자교류 등 방안을 가지고 김일성 사망 직전까지 물밑 작업을 진행시켰다. 김대중 전 대통령은 ‘햇볕정책’을 앞세우고 ‘남북연방제’를 제안, 김정일 전 국방위원장도 이를 수락하여 정상회담을 실현했다. 노무현, 문재인 전 대통령도 북한을 방문하는 등 통일 추진에 노력해왔음은 우리 모두가 주지하는 바이다. 남북 어느 누구도 한반도를 두 개의 나라로 나누자고 하지 않았다.

어린 시절부터 스위스 등 유럽에서 교육을 받았다는 김정은이 등장하자 이제 북한 땅에 다소나마 자유의 바람이 불 것으로 희망을 가졌었는데 웬일인가. 김정은은 독재 권력에 취해 민족 열망의 정반대 길을 질주하고 있다.

남한을 동족관계가 아닌 ‘전쟁관계 적국’이라며 정복하겠다는 선언은 우리 민족의 가슴에 희망 대신 절망을 안겼다. 한반도를 예까지 우리가 어떻게 지켜왔나. 생각할수록 김정은의 광란에 신의 저주가 내릴 것만 같다. 남북 전쟁이 나면 한반도는 모두가 파멸이다. “평화통일의 환상을 깨라”는 김 자매의 발언은 핵전쟁을 하자는 협박 아닌가. 김정은의 전쟁 모험을 아랑곳하지 않고 싸움에만 몰두하고 있는 남한 정치판을 보면서 정초부터 저절로 한숨이 깊어질 뿐이다.

<정기용 전 한민신보 발행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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