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정치인 테러 피습

2024-01-12 (금) 여주영 뉴욕 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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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년전 여름, 1981년 로널드 레이건 미 대통령을 습격했던 존 힝클리가 41년 만에 감옥에서 풀려났다. 오랜 복역으로 노령의 나이인 66세가 된 힝클리는 자신의 트위터에 “41년 2개월 15일, 마침내 자유다”라고 올렸다. 미 법원은 충분히 죄 값을 치렀다고 보았는지 힝클리에게 부과했던 모든 제재와 감시를 동시에 해제했다.

1981년 3월30일 오후 워싱턴 DC 소재 힐튼호텔 앞에서 발생한 사건은 전 세계를 경악케 했다. 저격된 직후 총격으로 폐에 손상이 생긴 레이건은 불행 중 다행으로 즉시 병원으로 이송된 후 수술을 받고 빠르게 회복했다. 80년대는 세계적으로 정치테러가 많았던 시기였다.

힝클리가 자유를 찾은 지 한 달후, 아베 신조 전 일본 총리가 피습을 당했다. 그의 ‘산탄총 피습’ 장면이 전 세계 미디어를 통해 전파됐다. 아베 신조 사망 당시 개인들이 찍은 동영상도 트위터를 통해 퍼져나갔다. 유튜브 소식통들은 일본을 영원히 바꿀 수 있는 충격 사건이라고 시끌벅적 떠들었다.


아베 신조 일본 총리는 극우 세력의 대표적인 인물이라 보수의 상징이던 레이건 대통령 저격 사건을 떠올리게 했다. 전직 일본 자위대원이었던 가해자가 총 부품을 입수해 개조한 무기로 전직 총리를 노린 충격적 사건이라는 헤드라인이 뉴스를 탔다. 그렇게 아베는 세상을 떠났다.

한국에서도 정치인 피습사건은 심심치 않게 있어왔다. 2006년, 선거유세 중 당시 보수당을 표방한 한나라당 대표였던 박근혜 전 대통령이 피습 당했다. 서울에서 유세 중 괴한 2명으로부터 당한 것이다.

사건은 박 대표가 시민들과 웃으면서 악수하며 유세하던 중 순식간에 벌어졌다. 한 명이 박근혜를 죽이라고 소리치면서 달려들었다고 한다. 박 대표를 칼로 공격했던 괴한은 징역 10년을 받고 수감됐다 출소했다. 그 후 한동안 정치인들을 향한 칼 테러사건은 잠잠했었다.

그런데 새해벽두부터 한국에서 또 정치인 피습사건이 벌어졌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2일 오전 부산에서 피습을 당한 것이다. 괴한의 흉기에 목 부위를 공격당하는 동영상이 유튜브에 즉시 퍼졌다. 부산 신공항 부지를 둘러본 후 기자들과 걸어 내려가던 중 싸인을 해달라고 다가온 용의자에게 왼쪽 목 부위를 습격당한 것이다. 치명상은 아니었던지 다량의 출혈이 발생하지는 않았던 것 같다.

처음에는 이 60대 남성이 범행에 사용한 흉기가 등산용 칼이었고, 손잡이 부분이 테이프로 감겨 있었다고 전해졌다. 하지만 근처에 있던 사람들이 찍은 영상이나 일부 유튜브 채널에서는 이 대표가 흉기가 아닌 나무젓가락처럼 보이는 물체로 찔린 듯 보이기도 했다.

쓰인 흉기와 관련, 온라인상에서는 각종 추측이 난무하고 있다. 하지만 정작 논란이 되고 있는 것은 왜 부산대학교 종합병원이라는 최고급 수준의 병원을 두고 헬기를 태워 서울 소재 대학병원으로 두 시간이나 걸려 태워 보냈냐는 사실이다. 막상 서울대병원의 기자회견을 보니 큰 길이의 치명상은 아니라고 하는데 오히려 가까운 부산 병원에서 응급수술을 하는 게 누가 봐도 타당하지 않느냐라는 공감대가 형성된 듯하다.

레이건 대통령 피습사건 때는 현직 대통령이니 국가기밀이나 보안을 위해 비밀경호대의 의전을 따를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이재명 당대표의 상태는 국가기밀의 수준이 될 수는 없을 것이다. 물론 개인 의료정보가 보호되어야 하는 것은 당연하겠지만 말이다.

어쨌든 이재명 급습 사건으로 예정되었던 이 대표 관련 모든 재판은 올 스톱, 무기한 연기되었다.

한때 대통령 후보로까지 나왔던 홍준표씨는 자신의 소셜미디어 계정에 “2006년 5월 지방선거에 앞서 박 대표 피습 사건을 연상시킨다”고 말했다. 이후 그녀가 이끌던 보수당이 동정표가 작동했는지 총선에서 크게 승리한 걸로 알고 있다. 과연 이번 선거 결과는 어떻게 될까?

<여주영 뉴욕 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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