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수정헌법 14조 3항에 대한 진실

2024-01-09 (화) 민경훈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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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연방 헌법은 가장 고치기 힘든 법의 하나다. 연방 상하원 의원 2/3가 개정안을 가결한 후 이를 다시 주로 보내 전체 주 의회나 헌법 개정을 위한 공의회 3/4가 승인해야 한다. 이런 까다로운 절차 때문에 1789년 연방 헌법이 작동한 이래 지금까지 1만1,848건의 헌법 개정안이 발의됐지만 지금까지 통과된 것은 27건에 불과하다.

이중 가장 중요한 것의 하나가 적법 절차와 평등 보호 조항이 들어 있는 수정 헌법 14조다. 이 조항 중 지금까지 거의 적용된 적이 없는 것이 제3항이다. 남북 전쟁이 끝난 직후 통과된 14조 중 반란을 일으켰던 사람들이 전쟁 후 다시 공직을 맡는 것을 금지하기 위한 이 항목의 전문은 다음과 같다.

“연방 의회의 일원으로서, 연방 정부의 관리로서, 주 의회의 일원으로서, 주 정부 행정관이나 사법 관리로서, 연방 헌법을 지지하겠다는 서약을 한 후 연방 정부에 대한 반란이나 반역을 하는데 개입하거나 그 적들에게 도움을 준 자는 연방 상하원 의원이나 대통령, 부통령 선거인, 연방 정부와 주 정부의 민이나 군 관련 어떤 직책도 맡을 수 없다. 단 연방 의회는 상하원 2/3의 찬성으로 이 자격 박탈을 면제할 수 있다.”


사문화된 줄 알았던 이 조항이 요즘 미 정국의 핵심 이슈로 떠오르고 있다. 콜로라도 주 대법원이 루저 도널드가 2021년 1월 6일 폭도들의 의사당 난입을 방조 고무한 것을 반란 행위 개입으로 보고 공화당 대선 후보 자격을 박탈한 데 이어 메인 주 총무처 장관도 같은 이유로 그의 이름을 투표 용지에서 뺐기 때문이다. 연방 대법원이 콜로라도 판결에 대한 상고를 받아들임으로써 루저 도널드 출마 자격 여부는 여기서 가려지게 됐다.

루저 도널드 측은 이 조항은 그에게 해당되지 않는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 이유는 첫째, 루저 도널드는 대통령이었는데 이 조항에는 대통령이라는 말이 없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가장 한심한 주장이다. 연방 정부의 관리로서 헌법을 지지하겠다는 서약을 한 후 반란에 개입한 자는 어떤 연방 정부 공직도 맡을 수 없다는 글자가 보이지 않는가. 대통령은 당연히 연방 정부의 관리다.

둘째는 1.6 연방 의회 난입이 반란이 아니며 루저 도널드가 여기 개입한 적이 없다는 것이다. 적법하게 선출된 대통령 인증을 하려는 연방 의회에 무기를 든 폭도가 몰려들어 경관을 죽여가며 방해한 것이 반란이 아니라면 뭐가 반란인가. 루저 도널드가 이들을 선동한 것은 연방 하원 탄핵 보고서를 통해 확인된 바 있다.

세번째는 이 연방 헌법 조항을 뒷받침하는 하위법이 없고 반란 관련 유죄 평결이 난 적도 없기 때문에 이들 결정은 무효라는 것이다. 그러나 모든 헌법 조항이 하위법을 필요로 하는 것은 아니다. 일례로 연방 헌법은 미국에서 태어나지 않거나 최소 35세가 되지 않은 자의 대통령 출마 자격을 박탈하고 있다. 관련 규정이 너무나 명확해 하위법이 필요 없다. 수정 헌법 14조 3항 어디에도 반란에 관여한 자가 유죄 평결을 받아야 출마 자격을 박탈할 수 있다는 구절은 없다.

미국 법조계의 보수파는 판사는 개인 생각이나 판결의 정치 사회적 파장을 고려하지 않고 오직 법을 만든 사람들의 원뜻을 존중해야 한다는 ‘원뜻주의’(originalism)를 신봉하고 있다. 많은 보수주의 법조인이 이 헌법 조항을 적용할 경우 루저 도널드의 출마 자격은 박탈된다고 보는 것은 이 때문이다.

그럼에도 다수 법조 관계자는 연방 대법원이 그런 결정을 내리지 않을 것으로 보고 있다. 법원은 정치적 문제에 가급적 개입하지 않는다는 전통이 있는데다 그럴 경우 후폭풍이 만만치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2000년 부시 대 고어 판결에서처럼 연방 대법원이 플로리다 재검표를 막음으로써 사실상 대선 결과를 결정한 전례가 없는 것도 아니다.

정치적 문제는 정치적으로 해결하는 것이 바람직한 것은 물론이다. 그러나 루저 도널드처럼 진 선거를 안 졌다고 우기면서 지지자를 선동해 연방 의회를 공격하게 하는 자에게 이는 적용되지 않는다. 연방 대법원에서 불리한 판결이 나오면 지지자들이 난동을 부릴 가능성은 있지만 이는 2024년 대선에서 루저 도널드가 졌을 때도 마찬가지다. 이 때 루저 도널드가 순순히 패배를 인정할 것이라고 보는 사람은 정신이 아예 없거나 나간 사람이다. 연방 대법관들은 좌고우면하지 말고 헌법의 원뜻에 충실한 판결을 내리기를 기대한다.

<민경훈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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