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히틀러 닮아가는 루저 도널드

2023-12-19 (화) 민경훈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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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역사에서 11월 9일은 특별한 날이다. 1918년 11월 9일은 제1차 대전에서 진 책임을 지고 카이저 빌헬름 2세가 퇴위하고 공화국이 선포됐다. 1938년 11월 9일은 유대인 박해가 공식적으로 시작된 날이다. ‘깨진 유리창의 밤’(Kristallnacht)로도 불리는 이날 하루 7,500개의 유대인 상점이 파괴되고 1,200개의 시나고그가 불탔으며 3만 명의 유대인 남성이 강제 수용소로 끌려가고 2,000여명이 살해됐다. 1989년 11월 9일은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고 40여년만에 냉전 종식과 독일 통일의 계기가 마련됐다.

그리고 1923년 11월 9일은 히틀러가 뮌헨에서 소위 ‘맥주집 쿠데타’를 일으킨 날이다. 그러나 경찰의 진압으로 26명의 히틀러 추종자가 사망하고 히틀러는 체포되는 것으로 끝났다. 그는 정부 전복 혐의로 5년형에 처해지지만 모범수 판정을 받아 8개월만에 석방된다.

그가 감옥에 갇혀 있는 동안 주로 한 일은 ‘나의 투쟁’을 쓴 것이다. 이 책에는 자기 어린 시절부터 자라온 이야기며 어떻게 반유대주의자가 됐고 나치당에 가입하게 됐으며 집권을 하면 어떤 일을 할 건지가 자세히 적혀 있다. 그는 여기서 자기는 오스트리아 빈에 오기 전까지 유대인을 만나 본 적이 없으며 처음에는 반유대주의를 일고의 가치도 없는 주장이라고 생각했다고 적었다. 그러던 것이 이들의 실체를 알고 난 다음에는 유대인 청소 없이 독일의 번영은 불가능하다는 결론에 도달했다는 것이다.


그는 또 바이마르 공화국 의회와, 사회 민주주의자, 마르크시스트 모두 유대인을 위해 일하고 있으며 이 또한 모두 없애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는 유대인들이 ‘시온 장로 의정서’(조작된 문서로 밝혀짐)에 따라 세계 지배를 꿈꾸고 있으며 제1차 대전 때 독일 민족을 타락시키는 유대인 1만2천에서 5천명만 독개스로 죽였어도 전쟁에서 이겼을 것이라 강변한다.

그는 이어 유대인뿐만 아니라 체코인, 폴란드인, 헝가리인, 세르비아인, 크로아티아인 같은 슬라브족들이 독일 민족과 섞여 피를 오염시키고 있다며 이들은 동화될 수 없고 이들의 땅을 빼앗아 독일 민족의 ‘생활 공간’(Lebensraum)으로 만들어야 한다고도 했다. 히틀러는 집권한 후 이 책에서 말한 것을 모두 실행에 옮겼다. 히틀러 지지자들의 “설마 그렇게까지 할 줄 몰랐다”는 변명이 통하지 않는 이유다.

히틀러의 주력 지지 기반은 제1차 대전 패배의 수모에다 막대한 전쟁 배상금 지급과 하이퍼 인플레, 대공황으로 생존의 위기에 처한 독일 중하류층이었지만 그를 이용해 사회주의를 막을 수 있다고 본 재벌과 자본가 계급, 그를 통제해 가며 군대를 재건할 수 있을 것으로 본 군부도 그의 손을 잡았다. 그러나 모두 착각이었다. 히틀러는 누구에게 통제될 인물이 아니었고 결국 그는 독일 국민 전체를 사상 최악의 파멸로 몰고 갔다.

집권 1기 때 확인된 정부만 10여명에 스스로 500명과 바람을 피웠다고 고백한 무솔리니 흉내를 내던 루저 도널드가 요즘은 부쩍 히틀러를 닮아가고 있다. 루저 도널드는 지난 주말 뉴햄프셔에서 열린 지지자 모임에서 이민자가 “우리 나라의 피를 오염시킨다”며 남미뿐 아니라, 아시아, 아프리카 등 “전 세계에서 우리 나라로 쏟아져 들어온다”고 말했다.

”피를 오염시킨다”는 말은 과거 나치가 유대인을 비롯한 타인종을 강제 수용소에 보낼 때 쓴 말과 똑같다. 바이든 대통령 선거 캠프는 루저 도널드가 히틀러를 흉내내며 독재자로 통치하겠다는 대선 공약을 내걸고 미국 민주주의를 위협하고 있다고 밝혔다.

루저 도널드가 히틀러 흉내를 낸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지난 달 역시 뉴햄프셔에서 한 연설에서 루저 도널드는 “우리 나라에서 거짓말과 절도, 선거 사기 행각을 일삼으며 벌레 같이 사는 공산주의자와 마르크시스트, 파시스트, 극좌 깡패들을 발본색원할 것을 약속한다”며 “이들은 미국과 아메리칸 드림을 파괴하기 위해 무슨 짓이든 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이어 외부로부터의 위협은 이들 내부 위협에 비하면 덜 위험하고 중대하다고 덧붙였다.

자신의 정치적 비판자들을 “벌레”라고 부르는 것은 나치를 비롯한 전체주의 세력이 상대방을 박멸할 때 쓰는 고전적 수법이다. 지금 미국에서 루저 도널드만큼 지속적으로 선거 사기를 치는 벌레 같은 인간이 또 어디 있겠는가.

세계화와 자동화로 일자리를 잃고 아시안 이민자들보다 신분이 추락한 백인 중하류층과 점점 교인 수가 줄며 주도적 위치를 상실할 위기에 처한 백인 교회 등 루저 집단이 루저 도널드를 지지하는 것은 어느 정도 이해가 가지만 한인을 비롯한 일부 이민자까지 그를 감싸는 것은 정말 모를 일이다. 그가 다시 집권하면 어떤 세상이 올 지가 그토록 안 보인단 말인가. 제발 지금이라도 헛꿈에서 깨어나길 바란다.

<민경훈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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