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부부의 인생은 같다

2023-12-16 (토) 이근혁 / 메릴랜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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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이 간다. 같이 가도록 참아가며 서로 맞춘다. 시작과 끝이 같도록 아무런 문제도 없이 살아가는 부부는 있을 수 없는 소설이나 영화 속 얘기다.

못 맞추면 따로 산다. 대부분 속도 끓이고 살면서 나이를 먹으면 돌이켜보고 참 잘 견디었고 자신의 과거를 본다. 지나온 세월에 누구를 탓하지는 못하지만 자신의 잘한 일은 ‘참는 것’이었다. 서로 안 맞는데 맞출 수 있는 것은 기계 톱니바퀴와 인간의 의지 두 가지다. 개중에 금실 좋은 부부로 살아가는 사람도 있지만 그들도 맞추어 그렇게 보이는 거다.

속 썩이다가 먼저 간 영감 생각하며 보고 싶다고 하고, 먼저 간 아내 생각하며 눈물 흘리는 사람에게는 하늘에서 주신 인간의 진정어린 모습이 보인다. 어차피 한번 사는 인생이라면 참고 견디며 한 생을 만들어 보는 게 진생이다.


부부가 살다가 하나가 아프면 남은 하나도 따라서 인생이 망가진다. 그래도 그것을 견디며 같이 살아가는 것이 인생의 덕목이며 맛이다.

간장이나 묵은 된장의 맛을 모르는 사람도 있으니 어쩔 수 없겠지만 묵은 된장, 잘 익은 김치의 맛으로 살다가 과거를 회상할 때 씁쓸하든 환하든 미소라도 지으며 스스로에게 감사하며 가야 한다.

무엇이 좋은 건가. 어찌해야 옳은가. 너의 인생도 있지만 내 인생은 더 소중한데. 그걸 내 마음대로 못하는 게 늙은 부부의 삶이다.

94세이신 나의 장인어른이 계신다. 내 몸은 건강한데 같이 살아온 아내가 힘들다.

뒷바라지 하느라 내 인생은 같이 묻혀 간다. 살만큼 사셨다고 말할 수도 있지만, 오늘도 친구한테서 받은 글 속에는 100살이 넘어서도 활동하는 즐거운 인생살이가 올라오는데, 그 분은 움직임이 힘들고 정신없는 아내를 데리고 운동하러 다니신다. 여행 못 다닌 지 수십 년이다. 혼자서 골프도 칠 수 있는, 건강하고 체력도 대단하시다.

지하실에 탁구장 만들어 공 건네주며 조금이라도 움직이게 하고, TV를 보며 발마사지 할 수 있도록 그 앞에 지압 깔대 보조기를 설치하셨다. 평생 안하던 밥도 지어서 병든 아내를 정성으로 보살피며 살아가신다.

사위 나이 70이 넘어서 같이 늙어가지만, 내 삶은 어떻게 변할지. 본 받을 건 많은데 본 보일 건 하나도 없다.

한치 앞을 알 수 없지만 좋은 분 삶을 옆에서 보다보면 나 또한 좋게 변하는 어떤 삶이 나올 런지….

<이근혁 / 메릴랜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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