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급 기독교 서적들이 줄지어 출판되고 있습니다. 외국의 저명한 학자/목사/영성가들의 저작이 대부분입니다. 기술의 발달로 출판 시장 접근이 용이해져, 경쟁적으로 기독교 서적이 출간되어 팔리기 위해 매력을 발산 중입니다. 좋은 서적이 많이 발간되는 것은 참 좋은 일입니다. 더 많은 서적이 발간되면 좋겠습니다.

그런데, 우려되는 현실은 기독교가 자꾸 책 속으로만 들어가는 것 같다는 것입니다. 미국이나 유럽에서 발간되는 기독교 서적은 꽤 수준 높은 것들이 많습니다. 특별히 영국 신학자들의 저서들은 세계적인 수준을 자랑하는 것들이 많습니다. 그러나, 미국과 유럽에서 볼 수 있는 기독교 현상은 신앙 '공동체'의 축소입니다. 기독교 신앙을 가지고 공동체를 일구는 현실 사람들은 점점 줄어드는데, 기독교 신앙에 대한 지식이 담긴 서적은 날로 수준이 높아져 갑니다.

저는 예전에 한국 기독교는 미국의 시민 종교화나 독일의 국교화 보다는 영국의 기독교 신앙의 매니아화와 같은 방향으로 흐를 가능성에 대하여 말한 적이 있습니다. 공동체는 축소되지만 몇몇의 기독교 매니아들이 아주 고급진 기독교 지식을 형성하는 방향으로 갈 거라는 이야기입니다. 저는 이미 기독교 서적 출간의 경향을 보면서 그쪽으로 가고 있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습니다.

신앙은 공동체로 구현되어야 하는데, 공동체는 줄어들고 그 대신 기독교 신앙이 책 속으로 흘러 들어가는 것 같습니다. 요즘 출간되는 기독교 서적들을 읽어 보면, 모두 기독교의 진리를 깊고 수려하게 잘 풀어내고 있습니다. 그러나 정작 기독교 공동체는 하루가 멀다 하고 무너지고 축소되고 있으니, 기독교의 진리가 아무리 깊고 수려한들 무슨 소용이 있나 싶습니다.

독서를 통해 기독교의 수려하고 깊은 진리를 깨달은들, 그것이 현실 세계의 공동체로 이어지지 못하고, 자기 만족에 그치거나, 엘리트화 되거나, '그들 만의 리그'에 그친다면, 기독교 신앙은 세상을 향해 무엇을 말하고자 하는 것인지, 묘연해질 뿐입니다.

요즘 출간되는 기독교 서적들을 읽으면 기독교 진리를 더 깊이 알게 되고, 그동안 잘못 알고 있었던 신앙 상식을 교정할 수 있게 되어 좋습니다. 그만큼 기독교 신학도 많이 발전하고 분명해진 것이죠. 그런데, 기독교의 수려하고 깊은 진리를 깨달은 사람들은 현실 교회를 자꾸 부정하게 되거나 비판하게 되면서 오히려 '가나안 성도'만 배출하게 되는 것 같습니다. 현실 교회에 또는 현실에 참여를 전혀 하지 않으면서 자신은 마치 참된 진리를 깨달아서 성화된 것처럼 생각하는 신앙은 분명 영지주의 신앙과 닮았습니다.

사실, 기독교 진리, 기독교 신앙만큼 단순한 것도 없습니다. 기독교 신앙은 무슨 도를 깨우치거나 무슨 위대한 일을 요구하지 않고 그저 예수께서 십자가 위에서 보여주신 '차별 없는 사랑'을 실천하면 됩니다. 기독교가 꿈 꾸는 세상은 모든 사람이 평화롭게 어우러져 사는 대동세상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맞닥뜨린 현실은 어떠합니까. '선교'라는 이름 하에, '전도'라는 이름 하에, 심하게는 '그리스도의 이름 하'에 온갖 차별과 배제와 혐오가 저질러지고, 사회(세상)는 분열에 분열을 거듭하고 있습니다.

아무리 생각해도 기독교는 책 속에 있는 게 아니라 우리의 두 손에, 우리의 두 발에, 우리의 몸에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기독교의 진리를 수려하고 깊게 책 속에 기록해 두는 것도 좋으나, 자신의 손과 발에, 그리고 깊은 마음 속에 새기는 것이 진짜 신앙일 것입니다. '공동체'는 없어지고 '개인'만 남아 도는 이 시대에, 우리는 무엇을 위해 기독교 신앙을 가지고 살아가야 하는지, 다시 한 번 생각해 봅니다.

책 속이 아니라 사람 속으로 스며드는 신앙을 꿈꾸어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