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주의’라는 정치 체제가 가장 확고하게 뿌리내린 나라는 그리스 아테네다. 왜 수많은 나라 중에서 아테네가 이런 정치 제도를 갖게 된 것일까.
그것은 무엇보다 아테네의 군사 제도와 직결돼 있다. 아테네는 징병제나 직업 군인제가 아니라 ‘호프라이트’라 불리는 ‘중장 보병제’를 갖고 있었다. ‘중장 보병’이란 자기 돈으로 갑옷과 무기를 갖춘 농부 출신으로 자유인인 성인 남성에 한했다.
이렇게 자신의 돈과 피로 나라를 지킨 이들이 국가의 운명을 좌우할 정치 문제에 대해 발언권을 갖게 된 것은 너무나 당연하다. 아테네의 참정권이 노예가 아닌 자유인 성인 남성에 국한된 것은 우연이 아니다.
참정권을 가진 시민들은 누구나 ‘민회’에 참석해 지도자를 선출하고 정책에 대한 찬반 투표를 할 수 있었고 무작위로 추출된 시민들은 배심원을 구성해 판결도 내릴 수 있었다. 지금도 흔히 쓰이는 ‘법 앞의 평등’(isonomia)이란 말도 이 때 나왔다.
예상대로 루저 도널드는 지난 주 미국민의 투표권 행사와 이와 관련된 공무 집행 등을 방해한 혐의로 기소됐다. 루저 도널드는 이미 포르노 배우와의 성관계를 은폐하기 위해 장부를 조작한 혐의로 기소됐고 한 여성이 제기한 민사 소송에서 성추행한 사실이 인정돼 손해 배상금을 물라는 판결을 받았지만 이는 개인적인 스캔들이다.
반면 이번 기소는 미국 민주주의의 핵심인 투표와 평화적인 정권 교체를 방해하려 했다는 점에서 혐의가 무겁다. 루저 도널드는 2020년 대선에서 패배한 후 선거 결과가 조작됐다는 억지 주장을 하며 연방 미 주 공무원들에게 선거 결과를 뒤집으라는 압력을 가했고 지지자들을 부추겨 2021년 1월 6일 연방 의사당을 공격하게 했다.
잭 스미스 특별 검사는 이번에 루저 도널드를 기소하면서 6명의 공범을 적시했는데 이들의 이름을 밝히지도, 기소하지도 않았다. 이는 앞으로 이들이 수사에 어느 정도 협조하느냐에 따라 기소 여부를 결정하겠다는 의도로 보인다.
또 루저 도널드가 지지자들을 선동해 의사당을 공격하게 했음에도 이 부분에 대해서는 기소하지 않았다. 그 이유는 그렇게 할 경우 루저 도널드가 자신의 발언이 수정헌법 1조가 보장한 표현의 자유에 속한다고 주장할 것이 뻔하기 때문에 불필요한 법적 공방을 최소화하기 위한 것으로 분석된다.
이번 기소장에는 그동안 알려지지 않은 사실들도 담겨 있는데 그 중 하나는 백악관 법률 부고문이 루저 도널드가 권좌에서 내려오지 않을 경우 모든 주요 도시에서 폭동이 일어날 것이라고 경고하자 공범 중 한 명은 그럴 때를 대비해 ‘반란 진압법’이 있는 것이라고 답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번 기소에 대해 루저 도널드는 “이는 바이든 범죄 가족과 무기가 된 법무부의 2024년 대선 개입 시도의 부패 최신판”이라고 말했다. 이번 기소에도 불구하고 골수 지지자들의 태도에는 변함이 없기 때문에 루저 도널드가 공화당 대선주자가 되는데는 별 지장이 없어 보인다.
그러나 본선은 별개다. 그 결과를 좌우하는 것은 공화당 골수가 아니라 중도파인데 이들이 이처럼 다양한 항목으로 기소된 루저 도널드에게 표를 줄 지는 의문이다. 미국민 과반수는 이번 기소를 지지하고 있다.
그러나 그렇다고 루저 도널드에게 아주 희망이 없는 것은 아니다. 바이든의 아들 헌터는 마약 중독자에다 아버지 이름을 팔아 거액을 외국 로비스트와 기업으로 받았고 창녀에 지불한 화대와 섹스 클럽 회비를 소득에서 공제하고 거액을 탈세했으며 불법으로 총기를 소지한 죄를 저지른 범죄 종합 백화점이다. 이런 그와 연방 검찰은 헌터가 두 건의 경범죄를 인정하는 조건으로 징역형을 면제해 주는 재판 전 합의에 도달했다.
그러나 이 합의는 지난 달 델라웨어 연방 법정에서 열린 재판에서 무참히 깨졌다. 마리엘렌 노리에카 판사가 이번 합의가 헌터가 저질렀을 지도 모를 모든 범죄를 면책해주는 것이냐고 묻자 검찰은 차마 그렇다고 답하지 못했고 이에 분노한 헌터 변호사들이 합의는 없다고 번복해 버린 것이다. 검찰은 묵시적으로 그런 약속을 했지만 판사 앞에서 이를 공식적으로 시인하지는 못했던 것으로 보인다.
그리스 이후 민주주의의 근본 원리의 하나인 ‘법 앞의 평등’은 전직 대통령뿐 아니라 대통령의 아들에게도 똑같이 적용돼야 함은 물론이다. 헌터는 바이든에게 ‘아픈 손가락’임에 틀림없다. 어려서 교통 사고로 어머니와 동생을 잃고 형의 그늘에 가려 살며 방황하는 모습이 애처로웠을 것이다. 그렇다고 정에 이끌려 특별 대우를 해준다면 루저 도널드의 공격에 정당성을 부여하는 것은 물론 중도 유권자의 마음을 잃을 수 있다. 지금은 ‘읍참마속’이 아니라 ‘읍참헌터’의 때라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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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경훈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