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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팀 연봉의 경제학’

2023-08-03 (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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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이저리그에서 가장 많은 27차례나 월드시리즈를 제패한 뉴욕 양키스를 부르는 또 다른 이름은 ‘악의 제국’(Evil Empire)이다. 이 같은 양키스의 별명에는 천문학적인 금액을 쏟아 부어 스타급 선수들을 싹쓸이 한다는 비아냥거림이 들어있다. 이 별명은 지난 2002년 양키스가 쿠바에서 망명한 특급 투수 호세 콘트레라스를 영입하려 하자 당시 보스턴 레드삭스 사장이었던 래리 루치노가 “‘악의 제국’이 이제는 촉수를 라틴 아메리카로 뻗치고 있다”고 비난한 데서 비롯됐다.

그리고 이후 ‘악의 제국’은 양키스의 별명을 벗어나 아예 ‘공적 효력’을 지닌 상표권이 됐다. 지난 2013년 한 사업가가 ‘베이스볼 이블 엠파이어’(Baseball Evil Empire)라는 문구를 상표로 등록할 수 있게 해달라는 소송을 제기했으나 법원은 ‘악의 제국’은 야구와 관련된 용어로 사용할 때는 양키스만이 상표권을 행사할 수 있다며 이를 기각한 것이다.

지난 수십 년 간 양키스는 이처럼 돈으로 선수들을 쓸어 담는 구단으로 악명이 높았지만 이제는 그 자리를 같은 지역을 연고로 한 뉴욕 메츠에 내줘야 할 것 같다. 메츠가 새롭게 비공식적인 ‘악의 제국’으로 등장한 것이다. 그 뒤에는 헤지펀드의 귀재로 총 자산이 175억 달러에 달하는 구단주 스티브 코헨이 있다.


지난 2020년 24억 달러에 메츠를 인수한 그는 우승을 목표로 엄청난 연봉을 안겨주며 스타급 선수들을 끌어 모았다. 올 시즌 시작 당시 메츠의 26인 로스터 연봉 총액은 무려 3억5,000만 달러. 2위인 ‘악의 제국’ 뉴욕 양키스의 2억8,000만 달러보다 무려 7,000만 달러가 더 많았다.

하지만 코헨의 기대와 달리 메츠는 정규시즌에서 완전히 죽을 쑤고 있다. 1일 현재 메츠는 50승 55패로 내셔널리그 동부지구에서 4위에 머물고 있다. 3억 달러가 넘는 돈을 연봉으로 쓴 팀의 성적으로는 보이지 않는다. 2위 연봉 팀 양키스 역시 비슷한 처지다. 55승 51패로 아메리칸리그 동부지구에서 꼴찌다.

팀 연봉과 성적 사이에는 어느 정도의 상관관계가 있을까? 야구와 축구, 농구 등 거의 모든 스포츠 종목에서 팀 연봉은 성적과 상당한 관계가 있는 것으로 나타난다. 최고 기량을 가진 선수들로 꾸려진 빅 마켓 팀들이 경쟁에서 유리한 고지에 서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하지만 올 메이저리그가 보여주고 있듯 팀 연봉 총액이 항상 성적과 직결되는 것은 아니다. 일정 수준을 넘어서면 연봉과 성적은 비례하지 않는다. 아니, 오히려 반비례 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올 시즌 돌풍을 일으키고 있는 볼티모어 오리올스가 그것을 증명한다.

오리올스의 연봉 총액은 6,800만 달러로 리그 30개 팀 가운데 29위다. 팀 연봉 총액이 메츠의 상위 두 선수의 연봉(슈어저와 벌랜더 각 4,330만 달러, 슈어저와 벌랜더는 메츠가 사실상 시즌을 포기하면서 텍사스 레인저스와 휴스턴 에스트로스로 각각 트레이드 됐다)을 합친 액수보다도 훨씬 적다. 그런데도 당당히 아메리칸리그 동부지구 선두를 달리고 있다.

이와 관련해 관심을 모으는 것은 전체 연봉 총액보다 팀 성적과 더 관계되는 것은 연봉 구조라는 주장이다. 이는 한국과 미국 프로야구를 대상으로 한 몇 몇 연구를 통해 제기된 것인데 주장의 핵심은 팀 전체 연봉과 관계없이 선수들 간 연봉격차가 클수록 승률이 낮아지는 경향이 있다는 것이다.

메츠의 경우 두 명의 노장 투수가 각각 4,300만 달러 이상을 연봉으로 챙긴 반면 10여 명은 이들의 10분의 1에도 미치지 못하는 연봉을 받고 있다. 메이저리그 최저 연봉은 72만 달러로 일반인들 기준으로는 엄청난 액수이다, 하지만 아무리 72만 달러 이상, 아니 수백만 달러를 받는다 해도 수천만 달러를 받는 동료를 보며 박탈감을 느끼게 되는 것은 자연스럽다. 수억 달러를 연봉으로 쓰고도 바닥을 헤매는 메이저리그 팀들의 부진은 돈만으로는 경쟁력을 구축할 수 없다는 사실을 일깨워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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