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자연 재난’ 아닌 ‘통치 재난’

2025-07-23 (수) 12: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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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05년 8월29일 초대형 허리케인 ‘카트리나’가 미국 남동부를 강타해 1,800명 이상이 사망하고 1,250억 달러가 넘는 재산 피해가 났다. 특히 뉴올리언스를 중심으로 한 루이지애나의 피해가 극심했다. ‘카트리나’는 이 지역을 초토화 시킨 미국 역사상 최악의 재난 중 하나로 꼽힌다.

가장 강력한 5등급 허리케인으로 시속 165마일의 강풍과 폭우를 동반한 ‘카트리나’의 위력은 대단했다. 도시 전체가 물바다로 변해 버렸으며 강풍에 찢겨지고 떨어져 나간 주택의 지붕과 건물의 유리창, 간판들이 하늘을 날아다니기도 했다. 뉴올리언스 지역 30만 명을 비롯해 루이지애나, 미시시피, 앨라배마에서 67만 명에게 전기 공급이 끊어졌다.

‘카트리나’가 엄청난 자연 재난이었음은 부인할 수 없지만 피해를 더욱 키운 것은 정부의 부실 대응이었다. 특히 FEMA(연방재난관리청)의 대응은 한심할 정도였다. 이 기관의 과실과 오판은 일일이 열거하기 힘들 정도다. 가장 피해가 컸던 뉴올리언스 시청 관리들이 희생자 구호를 위한 고무보트를 요청했지만 오염된 물로 보트가 손상될 우려가 있다는 이유로 이를 거절했다. 또 급수트럭의 진입을 막았고 적십자가 보내준 식량도 제대로 받지 않았으며 임시숙소로 꼭 필요한 2만 개에 달하는 트레일러 주택을 조지아 주 애틀랜타에 묵혀 놓기까지 했다.


이런 한심한 대응은 당시 부시 대통령이 FEMA 책임자로 마이클 브라운을 임명할 때부터 이미 예견된 것이었다. 마이클 브라운은 재난 관련 전문성이 전혀 없는 인물로, 정치적 보은을 위해 부시가 이 자리를 준 것이었다. 브라운이 얼마 지나지 않아 해임된 것은 너무나도 당연한 일이었다.

부시 대통령에 대한 비판도 고조됐다. 그는 초강력 허리케인이 몰려오는데도 휴가를 즐겼으며, 안전한 공중에서 상황을 살펴보았을 뿐 피해지역을 제대로 돌아보지도 않았다. 특히 부시 행정부는 9.11 테러 후 국가의 재원과 역량을 지나치게 테러 대응 시스템에 투입함으로써 ‘카트리나’ 같은 자연재난 대응 능력을 약화시켰다. 뉴올리언스의 제방이 홍수를 막지 못한 것은 이라크 전쟁에 따른 재정난이 초래한 나비효과라고 할 수 있다.

지난 7월 초 발생해 캠프를 하던 소녀 27명 등 최소 135명의 사망자와 여러 명의 실종자를 발생시킨 텍사스 홍수와 관련해서도 연방정부의 잘못된 정책이 부른 참사라는 여론이 커지고 있다. 이번 역시 FEMA의 대응이 신속하지 못했다는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 인력을 3분의 1로 대폭 축소했고, 비용을 줄이기 위해 10만 달러 이상 외부 용역에 대해서는 국토안보부 장관 승인을 받도록 해 재난 상황에 빠르게 대처하지 못하도록 만들었다는 것이다.

FEMA 축소는 트럼프 대통령의 고집에 따른 것이다. 그는 지난 대선 때부터 이 기관을 없애거나 축소해야 한다는 주장을 해왔다. 또 트럼프는 기후위기 불신론자이다. 그는 취임 후 기후 연구를 담당하는 연방직원들을 해고하고 기후위기를 부정하는 과학자를 에너지부에 채용하기도 했다.

텍사스 홍수 같은 재난이 앞으로 더 빈번하게 일어날 것 같은 불길한 생각을 지울 수 없는 것은 기후변화에 대해 트럼프가 갖고 있는 관점 때문이다. 허리케인 ‘카트리나’로 인해 엄청난 피해가 발생했을 때 펜실베이니아 대학의 저명한 정치학자인 존 딜루리오는 “우리가 얻을 수 있는 첫 번째 교훈은 이것이 ‘자연 재난’이 아닌 ‘통치 재난’이라는 사실”이라고 지적했다. 허리케인과 지진 같은 자연 재난들은 잠시 동안은 ‘신의 영역’에 머물지만 곧 정부의 대응이라는 ‘인간의 영역’으로 넘어오게 된다는 얘기다. 텍사스 홍수는 이런 사실을 다시 한 번 상기시켜 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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