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내조의 여왕 십보라
▶ 임봉대 목사 / 에벤에셀 교회
2009년 한국에서는 ‘내조의 여왕’이라는 드라마가 인기를 끈 적이 있다. 고구려의 온달과 평강공주에서 모티브를 가져 온 것이라고 한다. ‘내조의 여왕’은 똑순이 같은 아내가 뭔가 부족한 남편을 도와 성공시킨다 스토리이다.
그러나 ‘내조의 여왕’은 남편이 가진 큰 뜻을 이룰 수 있도록 묵묵히 헌신한 아내의 모습이기도 하다. 리들리 한인이민역사기념각에 한덕세라는 한 여성의 기념비가 세워져 있다. 한덕세는 이화학당 성악과 출신으로 김형순과 결혼했다. 김형순은 배제학당에서 신문물을 공부하고 미국으로 이민 와 리들리에서 털없는 복숭아인 넥타린을 개발하여 백만장자가 되었다. 김호와 함께 김형제 상회를 설립하여 사업을 확장하고 독립운동과 동포사업을 위한 기부에 앞장섰다.
한덕세는 김형순의 사업을 돕기 위해 가사도우미나 어린이 보살핌 등을 하고 음악강습소 운영을 하면서 독립운동을 적극 지원하였으며, 대한인국민회와 대한여자애국단 임원으로 활동하였다. 한덕세는 남편 김형순과 이화학당 은사였던 김호의 독립운동 지원과 어려운 동포 돕기 사업을 잘 할 수 있도록 도왔던 애국지사요 내조의 여왕이었다.
성경에 대표적인 내조의 여왕이 있다면 모세의 십보라이다. 십보라는 미디안 제사장 이드로의 딸로 모세가 이집트 병사를 죽이고 광야로 도망쳤을 때 만나 결혼한 아내였다. 십보라는 모세가 가장 어려웠던 시절에 함께 했다. 십보라와 결혼한 모세는 40년 동안 광야에서 목자로 있다가 시내산에서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이집트에서 종으로 혹사당하고 있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해방시키라는 소명을 받았다.
모세는 그의 아내 십보라와 두 아들을 데리고 이집트로 가던 도중 여호와께서 갑자기 그를 죽이려고 하였다(출 4:24). 이때 십보라가 아들의 포피를 잘라 그의 발에 댐으로 모세의 생명을 구했다(출 4:25-26). 십보라는 모세의 생명이 위급한 상황에 신속하게 대응하여 그의 생명을 구해 주었다.
그리고 십보라는 두 아들과 함께 친정으로 돌아가고 모세만 홀로 이집트로 내려 갔다. 모세가 이스라엘 백성들을 이집트에서 출애굽시킬 때까지 십보라는 전혀 등장하지 않는다. 모세가 십보라를 다시 만난 것은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들을 이끌고 홍해를 건너 광야에 들어와 장인 이드로를 만났을 때였다(출 18:2-3).
민수기 21장에 보면 모세가 구스 여자를 취한 것 때문에 미리암과 아론이 모세를 비방한 일이 생겼다. 구스는 ‘이디오피아’를 가리키지만 ‘피부가 검은 사람’을 뜻하기도 한다. 유대인들은 전통적으로 모세가 취한 구스 여자가 십보라를 가리킨다고 본다. 광야의 유목민인 미디안 종족 십보라는 검은 피부로 인해 구스 여자로 취급받았던 것이다.
서양의 기독교 성화를 보면, 모세의 아내 십보라를 백인으로 그리고 있지만, 미국의 흑인교회에 있는 성화에는 모세의 아내 십보라를 흑인으로 그리고 있다. 우리는 서구 교회의 영향을 받아 자연스럽게 예수님도 마리아도 모세도 십보라도 다 백인인 것처럼 받아들이는 경향이 있다.
광야에서 재회한 십보라를 보고 미리암과 아론이 모세를 비방한 것을 보면 십보라가 모세와 함께 이집트에 가지 않은 것은 그의 사역에 지장을 주는 일이 없도록 배려한 것이다. 십보라는 자신을 감추고 오직 모세만이 드러나도록 하였다.
광야에서 모세와 재회한 십보라는 또 한가지 눈에 보이지 않는 중요한 일을 하였다. 광야에서 백성들을 이끌 때 모세 혼자서 모든 일을 감당하는 것을 본 이드로는 모세에게 천부장, 백부장, 오십부장 등 중간 지도자들을 세워 백성들을 효과적으로 이끌도록 조언하였다. 십보라는 광야에서 모세 홀로 애쓰는 모습을 보고 안타까운 마음이 있었을 것이다. 우리는 십보라가 아버지 이드로에게 자기 남편 모세가 백성들을 잘 이끌 수 있도록 도움을 줄 것을 부탁하였을 것이라는 짐작을 해 볼 수 있다.
십보라는 눈에 보이지 않지만 꼭 필요한 산소 같은 존재였다. 십보라는 모세가 가장 어려웠던 시기인 광야에서 함께 했던 최고의 반려자요, 죽을 뻔 했던 모세의 생명을 구하고, 출애굽 사역을 잘 감당하도록 한 내조의 여왕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