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7년간 사제폭탄 소포로 발송해 3명 사망·23명 부상
1996년 4월 체포당시 테드 카진스키 머그샷.<로이터>
'유나바머'라는 별명으로 알려진 미국의 폭탄 테러범 테드 카진스키가 수감 중 사망했다. 향년 81세.
뉴욕타임스(NYT)는 10일 카진스키가 노스캐롤라이나주 연방교도소 의료센터에서 숨졌다고 보도했다.
연방수사국(FBI)에 따르면 카잔스키는 이날 오전 자신의 감방에서 의식이 없는 채로 발견됐다. 당국은 성명을 통해 "인명 구조 조치를 시작하고, 응급 의료 서비스를 요청했다"며 "카진스키는 지역 병원으로 이동했고 의료진에 의해 사망 선고를 받았다"고 밝혔다. CNN은 11일 연방 교도소 관계자들이 카진스키가 스스로 목숨을 끊은 것으로 보고 있으며 공식적인 사인 규명을 위한 조사가 진행될 것이라고 전했다.
카진스키는 1978년부터 1995년까지 미국의 대학과 항공사 등에 소포로 사제폭탄을 보내 3명을 숨지게 하고, 23명을 다치게 만든 테러범이다.
유나바머(Unabomber)라는 별명도 대학을 뜻하는 영어단어의 앞 글자 'Un'과 항공사를 뜻하는 영어단어의 앞 글자 'a', 폭탄을 만드는 사람이라는 뜻의 'Bomber'를 섞어 만든 조어다.
수학과 교수였던 그가 대학과 기업에 폭탄을 보낸 것은 기술문명과 산업사회에 대한 반감 때문이었다.
워싱턴포스트(WP)는 하버드대 재학 때 카잔스키가 당시 심리학자이자 하버드대 교수였던 헨리 머레이가 중앙정보국(CIA)의 지원을 받아 진행한 실험에 참여했다면서 참가자의 신념을 가혹하게 폄하하는 실험이 그에게 영향을 미쳤을 가능성을 제시했다.
해당 실험은 한국 전쟁 당시 소련과 중국 북한이 미군 포로를 대상으로 마인드 콘트롤 기법을 사용한 데서 착안한 이른바 'MK-울트라 프로젝트'의 일환이었다고 WP는 부연했다.
그는 검거 전인 1995년 각 언론사에 보낸 선언문 '산업사회와 미래'를 통해 기술의 발전은 필연적으로 인류의 재앙이 될 것이라면서 혁명을 통해 산업사회를 전복해야 한다는 주장을 폈다.
52페이지 분량의 이 선언문은 17년간 정체가 밝혀지지 않았던 카진스키의 검거에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카진스키의 동생이 가족들과 연락을 끊은 형의 문체와 선언문의 문체가 비슷해 보인다고 FBI에 제보했고, FBI는 1996년 몬태나주 강가에서 사냥과 채집 등으로 자급자족 생활을 하던 그를 검거했다.
1942년 시카고에서 폴란드계 이민자 가정에서 태어난 그는 초등학교 때 아이큐 167을 기록했고, 16세 때 하버드대 수학과에 입학한 수학 천재였다.
카진스키는 24세 때인 1967년 버클리 캘리포니아대(UC 버클리) 사상 최연소 수학 교수가 되는 등 학계에서 인정받았지만, 2년 후 사표를 냈다.
이후 그는 몬태나주에서 자신이 만든 오두막에서 문명사회와 단절된 채 생활했다.
전깃불 대신 직접 만든 양초로 밤을 밝혔고, 직접 사냥한 토끼 고기와 자신이 키운 감자 등으로 영양을 보충했다.
이 과정에서 그는 자신이 거주하는 몬태나주 산림지역의 생태계 파괴와 개발에 분노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후 그는 폭발물 제조법을 독학으로 익혀 소포로 보내는 테러를 시작했다.
그는 폭탄에 지문 등 어떤 증거도 남기지 않았기 때문에 FBI는 17년간 그를 잡지 못했다.
재판과정에서 그는 정신분열증을 주장해 유리한 판결을 받으려는 변호인의 전략을 거부했다. 법원은 유죄를 인정한 카진스키에 무기징역을 선고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