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애난데일의 밤 미국인 넘쳐난다

2023-06-11 (일) 윤양희 기자
크게 작게

▶ 현장 르포: 한인타운 ‘풍경’이 바뀌고 있다

애난데일의 밤  미국인 넘쳐난다

9292 바베큐 식당에서 소주잔을 기울이며 한국식 구이 음식을 즐기는 미국인들.

애난데일이 달라지고 있다. 워싱턴 지역의 한인타운이나 다름없는 애난데일에서 한인이 밀려나고 미국인들이 ‘점령’하고 있다.

지난 6월초, 애난데일의 식당가 풍경은 이곳이 한인타운인가 하는 의구심이 들 정도로 10여 년 전과는 달라 있었다.

한인 손님 대신에 미국인들(이하 다른 인종)이 대부분의 테이블을 차지하고 한국식 바비큐를 뜯고, 한식을 즐기고 있는 풍경이다. 변화한 한인타운 애난데일의 현장으로 달려가봤다.


▲ “저녁 손님 70% 이상이 미국인 고객”

워싱턴 DC에서 남서쪽으로 20분 거리에 위치한 버지니아 애난데일은 1980년대 말 이후 한글 간판이 여기저기 세워지면서 한인타운으로 자리 잡았다.

2000년대 후반, ‘꿀돼지’ 등의 한국식 BBQ 구이점들이 생기면서 한류 영향을 받은 미국 젊은이들을 중심으로 한국음식에 관심을 보이면서 애난데일로 몰리기 시작했다.

워싱턴 지역에는 현재 약 35곳(분점 포함) 이상의 한국식 구이전문점이 영업을 하고 있는데 애난데일에만 외갓집, 고기야, 철기시대, 9292 바비큐, 아난골, 곱창스토리 등 여러 곳이 성업 중이다. 이런 구이 식당과 일부 식당, 빵집을 중심으로 한인 고객보다는 미국인 손님들이 더 붐빈다.

주말 저녁, 9292 바비큐 식당을 방문했을 때 식사를 하고 있는 테이블 10곳 중 8곳의 손님들이 미국인들이었다. 백인, 흑인, 아시안 등 다양한 인종들이 한국식 구이를 먹고 있는 모습이 뿌듯하고 자랑스럽기까지 했다.

버지니아의 샬롯츠빌에서 왔다는 멜리나 양은 “친구를 만나러 이곳에 왔다가 친구 소개로 한국식 구이식당을 오게 됐다”면서 “너무 맛있고 좋아서 다음에도 또 올 예정”이라고 말했다.

써니 리 매니저는 “우리 식당은 문 연지 3년 정도밖에 안 됐지만 오픈 때보다 미국인 손님이 15% 이상 증가했다”면서 “주중 낮과 저녁에는 애난데일에서 근무하는 한인들이 주를 이루지만 주말 낮과 저녁에는 미국인 손님이 70-80%를 차지하고 있다”고 말했다.


구이식 BBQ 식당은 주로 고기를 구워 먹어 미국인들에게 그리 낯설지 않지만 한국식 중화요리는 중국 본토 음식과는 차별이 있어 호불호가 갈리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장원반점에도 미국인 손님이 점점 늘고 있다고 한다.

김덕만 장원반점 사장은 “한국사람 입맛에 맞춰진 한국식 중식이 미국인의 미각을 자극하고 있는 것 같다”면서 “젊은 미국인들이 자장면과 짬뽕, 돌솥비빔밥을 주문하고 먹는 모습을 보면 사실 나도 신기하다”고 말했다. 이어 김 사장은 “지난해부터 주말 저녁에 미국인 손님들이 15-20% 증가하고 있는데 매출에 좋은 영향을 미치고 있다”고 덧붙였다.

돼지국밥, 순대 등을 파는 토속촌 식당의 경우 주말 저녁이면 남녀노소 할 것 없이 미국인 손님으로 붐비고 있다. 늦은 저녁 식당에 들어섰을 때 한 미국인이 젓가락으로 칼국수 면발을 하나하나 집어 먹는 모습은 신기하기만 했다.

한 종업원은 “돼지국밥 같이 미국인에게 생소한 한식들도 은근히 인기가 많고 따뜻한 국물을 원하는 미국인들이 증가하고 있는 추세”라고 말했다.

▲ 한류 열풍에 1.5세, 2세들이 한국음식 전도사

미국인들은 코리안 푸드를 어떻게 알고 한인타운으로 몰리고 있는 걸까? 요즘 워싱턴 지역에서 한국을 모르는 미국인들의 비율은 그리 높지 않다. 한국의 위상이 높아지고 한류의 영향도 있지만 40여 년간 애난데일을 한인타운으로 일궈온 한인 1세 자녀들이 미 주류사회로 진출하면서 주변인들에게 자연스럽게 한국의 문화와 음식을 알리는데 일조하고 있다.

헤이마켓에 거주하는 1.5세 제니 씨는 “1990년대(초등학생 시절) 부모님과 이민 왔을 때만 해도 학교에 가면 한국을 모르는 애들도 많았고 대학교를 다닐 때도 마찬가지였다”면서 “하지만 직장을 다니면서 한류의 영향을 받은 동료들이 한국에 대해 알고 싶어해 한국식당을 몇 군데 데리고 다녔더니 해피 아워로 간단하게 회식을 했던 동료들이 스스로 한국식 구이식당을 찾아가 한식을 즐기는 모습에 나도 놀라긴 한다”고 말했다.

또한 한식당에서 일하면서 한식을 맛본 젊은 미국인들의 입소문도 한몫하고 있다. 써니 리 9292 바비큐 매니저는 “K-POP, K-FOOD 열풍에 힘입어 식당에서 일했던 젊은 친구들이 한식의 맛을 본 후 지인과 가족들에게 알리고 입소문을 타면서 꼬리에 꼬리를 물고 친구들을 데리고 오는 경우가 많다”면서 “특히 주말 저녁에는 손님들이 줄 서서 기다리는 일도 비일비재하다”고 덧붙였다.

애난데일에는 쿵푸티, 티도, 공차 등의 아시안 차 종류의 상점들이 크게 늘었다. 밤 10시가 넘은 시각에도 상점 안에는 젊은이들로 북적대고 있었고 찻집 밖에 앉아서 티를 마시는 사람들도 눈에 띄었다. 뿐만 아니라 한인 빵집들에도 미국인 손님으로 가득했다.

이처럼 코리안 푸드를 찾는 행렬은 애난데일 뿐만 아니라 센터빌, 엘리콧시티 등 한인 상업지역은 예외 없이 길게 이어지고 있다.

▲ 글로벌 타운으로의 모색

평일 낮 애난데일을 돌아보면 식당 앞에 텅 빈 주차장들이 많지만 밤에는 미국인들이 애난데일을 점령하면서 한인 비즈니스 성장에 도움을 주고 있다. 반면 사건 사고들도 끊임없이 발생하고 있는 실정이다.

페어팩스카운티 경찰국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 메모리얼데이 연휴 일주일간 애난데일과 메이슨 디스트릭 지역에서 강도, 절도, 마약 등 사건사고가 65건 이상 발생했다. 매주 50건 정도의 사건들이 일어나고 있으며 며칠 전 나이트클럽에서는 총격사건이 발생해 충격을 주고 있다. 코로나19 팬데믹 기간에는 일부 한식당들에 강도가 침입해 피해가 늘어 업주들이 불안에 떨기도 했다.

김덕만 장원반점 사장은 “빛이 있으면 그림자가 있는 법”이라면서 “한인타운이라고 해서 한인들만 있을 수는 없다. 한인타운인 만큼 한인들이 많지만 백인, 흑인, 스패니시 등 인종에 상관없이 서로 배려하고 이해하면서 글로벌 타운으로 발전시키는 것이 우리 한인들의 몫이 아닌가 생각된다”고 말했다.

<윤양희 기자>

카테고리 최신기사

많이 본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