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살며, 느끼며 - 광란의 시대, 그 이후

2022-12-02 (금) 민병임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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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격적인 연말 샤핑 시즌이 시작되었다. 28일 사이버 먼데이 매출은 인플레이션 부담과 경치 침체 우려에도 역대 최대수준에 이르렀다. 가족, 이웃, 우편배달부, 아파트 관리인 등 크리스마스 선물을 챙겨야 할 곳이 많다보니 이번 연말이 지나면 크레딧카드 부채가 늘 것이다.

그러나 이는 일부 중산층이나 저소득층 사정이지, 주식 투자에 일찌감치 눈을 뜬 젊은 층, 정부 경기 보조금을 저축하여 주머니가 두둑한 이들은 돈 쓸 호기를 맞았다.
뉴욕시에서 한시간 반 정도 거리에 미동부 최대 아웃렛몰 우드버리가 있다. 220개 정도의 가게는 중저가 제품을 비롯 구치, 발렌시아가, 보테가 베네타, 입센 로랑, 프라다, 불가리 등 명품 매장이 있다.

추수감사절 일주일 전에 이곳에 잠시 들렀는데 중저가 매장은 한산하기 짝이 없고 명품 브랜드 매장 앞에 사람들이 줄 지어 서있었다. 최소 30분~한시간이상을 기다려야 안으로 들어갈 수 있다. 이들은 샤핑은커녕 외출도 제한된 팬데믹동안 억눌려진 샤핑 심리 욕구를 분출시키고자 무작정 사들이고 있다. 명품 소비를 통해 자신이 더 높은 계층에 속한 것처럼 여기는 차별화 요구도 한 몫 했다.


또한 코로나팬데믹 동안 자산 가격이 급등한 일부 상류층들은 호화 파티와 명품 치장, 해외관광 및 유흥에 몰입하고 있다. 이를 명품 보복 심리 내지는 보복 소비(revenge spending)라고 한다. 질병과 재난과 같은 외부요인 때문에 소비가 어느 순간 분출하는 것은 코로나 블루로 인한 우울한 마음에 대한 보상심리도 있을 것이다.

실제로 구치, 발렌시아가, 보태가 베네타, 에르메스 등 명품 브랜드마다 올해 3분기 매출이 작년보다 19% 늘어났다고 한다. 루이뷔통모에헤네시(LVMH)그룹 CEO 필리프 샤우스는 주식을 사고팔아 가볍게 한 재산 챙긴 젊은층이 다소 이른 나이에 명품소비를 하는 현상을 “광란의 1920년대(Roaring 20s: 미국 대호황기)’ 와 비교한다.

그렇다면 1920년 미국에는 어떤 일이 있었던가. 또 1920년대 후에는 어떤 일이 벌어졌는가. 미국의 1920년대는 “모두 행복하십니까?” 외치면서 먹고 놀며 흥청거리는 시대였다.

반면 유럽은 4년간 계속 되었던 제1차 세계대전의 상처를 치유하는 힘겨운 시간이었다. 이태리 무솔리니가 내세운 파시즘 슬로건은 ‘충성, 복종, 전투’ 로 다가올 시대의 불길한 전조를 보였다.

1920년대 미국은 화려한 고층건물들이 도심에 들어섰고 관광사업이 발달했다. 서민들의 자동차 여행이 보편화 되었고 라디오, 축음기를 사들여 새로운 음악인 재즈를 들었다. 1920년대 실시된 주류제조판매 금지조치에 비밀영업을 하는 술집이 늘자 도박 고리대금업 등 불법이 판치는 새로운 범죄 집단도 등장했다.

미국에 광란의 시대가 도래, 지출과 과시적인 소비가 미덕이 되었다. 대호황기의 부유와 풍요는 겉으로만 그랬다. 농업 광업 섬유업 임업 등 기존의 기간산업은 가격 하락에 허덕이고 있었다. 이렇게 흥청망청 살다가 1929년 10월29일자 뉴욕타임스 탑 기사에 ‘전국적인 매도열풍으로 주식 시세, 140억 달러나 폭락’ 이 게재되면서 대공황은 시작되었다.

이후 10여년간 공황 후유증으로 휘청거렸고 독일에서는 히틀러가 등장했고 급기야 제2차 세계 대전이 일어나 전 세계가 전화에 휩싸였다.
어째 한 세기가 지난 요즘의 풍경이 1920년대 그 시절과 비슷해 보인다. 40년만의 최악 인플레이션에, 일부 부유층의 명품 보복 소비까지. 코로나가 완전 없어진 것처럼 다시 흥청망청 들뜬 분위기 등등이 위기의식을 갖게 한다.

일단,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전쟁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이 전쟁으로 에너지 위기 시대가 왔고 세계는 양분되려 한다. 지금은 더 이상의 적대와 대립을 막고 외교와 협상의 중요성을 인식할 때이다. 1929년 대공황, 제3차 세계대전 같은 미래는 결코 오지 않아야 한다.

<민병임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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