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에 오고나서 그 이듬해였다. 쏠리스트 앙상블 공연이 있었다. 안형일 오현명 엄정행 박수길 박성원 그렇게 잘 알려진 남성 성악가 마흔여 분을 모시는 일정에 당연히 워싱턴 시내 관광이 포함됐다. 영어며 시내 지리며 그분들과 하등 다를 게 없는 처지였지만 개똥도 약에 쓴다니, 대절한 관광버스에 행사관계자로 동행했다. 원님 덕에 시내 투어를 하게 된 것이다.
초행이 아닌 분들도 있고 리허설도 해야 하니 풀코스는 뛰지 않고 숙소가 있던 타이슨스 코너를 떠나 시내 조지타운에서 쇼핑을 하고 나머지 볼거리는 버스로 지나가며 주마간산 하는 일정을 택했다. 그러니까 가이드의 구라빨이 투어의 핵심인 것이다. 여행사 가이드는 대개 남자들이 했었는데 우리가 대절한 버스는 조잘조잘 아가씨가 맡았다.
버지니아에서 시내로 들어가는 길은 풍광도 밋밋하고 별 얘깃거리도 없어 버스 안이 다소 좀 어색했는데 시내로 이어지는 키 브릿지(Key Bridge·사진)를 넘는 순간 가이드 아가씨의 목소리가 높아졌다.
“지금 건너는 강이 포토맥 입니다. 옛날 인디언 말로 사랑의 강이라는 뜻이래요. 보세요. 아름답지요? 포토맥입니다.”
와우! 다들 목을 빼고 차창 아래, 다리 아래 흘러가는 강물을 내려다 봤다. 포토맥은 도시를 끼고 흐르는 강으로는 제법 수려한 편이다. 거기다가 사랑의 강이라니! 감탄이 여기저기서 터져나왔다.
사랑의 강 포토맥(Potomac River). 한번 뇌리에 깊게 박히고 나니 이후 매번 대할 때마다 새록새록 더 사랑스러울 수밖에. 좋은 지식은 나누는 법, 당연히 아내한테 아는 척 잘난 척 했고 워싱턴을 찾아오는 선후배 친구들에게도 좋은 기억을 심어주었다. 헐!
줏어들어 배우던 구전의 시대가 거하고 인터넷의 시대, 구글의 세상이 펼쳐지면서 사랑은 개뿔! 포토맥의 맨 얼굴이 드러났다.
알곤키언 인디언 부족의 말로 파토우멕(Patawomek, Patowmack)은 ‘가져온 물건’을 뜻한단다. ‘산물의 집산지’ ‘물물교환의 장소’ 그런 맥락이 유력한 것이다.
숲과 늪지대였던 이곳의 이동수단은 기본이 물길이었다. 여러 지류를 따라 흩어져 살던 원주민들이 카누에 물건을 싣고 와서 교환을 하던 큰물이 포토맥이었으니 이를테면 섬진강 줄기 따라 화개장터인 셈이다. 장터에서 눈이 맞아 사랑을 하기도 했겠지만 사랑의 강이란 설은 아무래도 지어낸 얘기 같다.
사랑의 강에서 물물교환소로 전락하고 나니 왠지 섭섭하신가. 그래서 어떤 주장에서는 포토맥을 백조의 강이라고 우기기도 한다. 백조는 모르겠고 목이 길어 모양이 백조 닮은 캐나다 거위는 많다. 그레이트 폴스에서 폭포수로 포말을 일으키며 곤두박질을 치기 직전의 상류 지역은 물흐름이 느려 고요한 호수처럼 물새들의 보금자리를 이룬다. 그 지역을 일러 인디언 말로 코콘골로토, 거위들이 꽥꽥대는 곳이라 불렀다는데 아마 거기에서 백조 썰이 나왔을 것 같다.
이렇게 사람들은 사실보다는 듣기 좋은 얘기를 선호하는 성 싶다. 사실이어도 재미가 없으면 듣고 싶어하지 않든지. 워싱턴 일대를 대표하는 또 하나의 인디언 지명인 셰넌도어(Shenandoah)도 그런 경우다.
포토맥의 근원지이자 존 덴버의 노래로 우리 귀에 읽은 셰넌도어를 놓고도 여러 설이 있는데, 어느 게 정설인지 알 수 없다는 게 정설일 뿐이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여러 설 가운데 유독 ‘별의 아름다운 딸’ ‘하늘의 딸’이라는 어원을 좋아한다. 왜? 장사에 도움이 되니까? 사학과 문학이 엉키는 자리는 참 처신하기 곤란하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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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재욱<전 언론인, V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