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서 10여 년 동안 일을 하고 2021년 2월 미국에 다시 돌아왔다. 한국에 있을 때는 명절 때마다 고향을 찾아 부모님을 뵙고 인사를 드렸는데, 지난 주말 추석을 맞은 부모님께 전화로만 인사를 드렸다. 추석에 형제들과 함께 모여 예배를 드렸는데, 올해는 미국에 있어 함께 하지 못해 죄송한 마음이다. 포항에 계신 사촌 형님께 안부 전화를 드렸더니 지난 힌남노 태풍으로 시내 곳곳에 많은 피해가 발생해서 수해복구에 힘쓰고 있다는 소식도 들었다.
추석은 음력 8월 15일에 지키는 행사로 우리 민족 최대의 명절이다. 추석은 성경에 나오는 이스라엘의 절기 중 초막절(혹은 장막절)과 같다. 초막절은 히브리어로 숙곳(sukkot)이라고 하는데, 이스라엘의 추수감사절이다. 한국 교회의 추수감사절은 일반적으로 미국 교회의 전통에 따라 11월 셋째 주에 지키는데, 일부 교회에서는 추석을 추수감사절로 지키기도 한다.
초막절은 유대력으로 7월(티슈리) 15일에 시작하여 일주일 동안 지킨다. 유대력도 음력을 사용하는데, 한국과는 약 1달 정도 차이가 나서 유대력의 7월 15일은 한국의 음력 8월 15일과 비슷하다. 그래서 옛날에 성경의 절기에 대한 강의를 하면서 구약의 초막절과 한국의 추석이 비슷한 날이라고 말했던 기억이 있다. 올해는 어떤가 하고 확인해 봤더니 초막절 시작이 10월 9일이라 9월 11일이 추석인 한국의 음력과 차이가 많이 난다.
추석은 전통적으로 온 가족이 모여 풍성한 수확과 조상의 은덕에 감사하는 차례를 지내지만 기독교인은 하나님께 감사의 예배를 드림으로 명절의 기쁨을 함께 나눈다. 우리가 경배할 대상은 오직 하나님이시기 때문이다. 미국에 있는 우리 한인들은 한국처럼 추석을 지내지는 않지만, 여러 한인 단체에서 9월 10일 베이지역 추석 축제, 9월 24일 한국문화축제 등, 고국의 명절을 느낄 수 있는 행사를 개최하고 있다.
성경의 절기는 자연의 변화와 구원사적 사건이 절묘하게 연결되어 있다. 온 우주만물의 창조주인 동시에 역사의 주관자인 하나님께서 자연의 변화와 구원사적 사건을 이끄시기 때문에 자연과 역사 사이에는 밀접한 관계가 있다. 대표적인 것이 성경의 3대 절기인 유월절, 오순절, 초막절이다. 출애굽 사건을 기념하여 지키는 절기인 유월절은 봄의 절기이다. 출애굽 사건은 구원사적으로 이스라엘 역사의 봄이기도 하다.
오순절은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들이 시내산에서 하나님으로부터 율법을 받은 날을 기념하여 지키는 절기이다. 이날을 맥추절이라고 하는데 보리와 밀의 수확 시기이기 때문이다. 성경에서 보리는 대맥, 밀은 소맥이다. 오순절은 애굽 왕 바로의 노예였던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백성이 된 날이다.
초막절(혹은 장막절)은 출애굽 한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에서 40년간 생활하다가 요단 강을 건너 약속의 땅 가나안에 들어 온 후 지키기 시작한 절기이다. 초막절은 광야 40년간 죽지 않고 살아 약속의 땅 가나안에 들어 온 구원받은 사람들의 절기이다. 그래서 이스라엘 백성들은 초막절에 집 앞마당이나 베란다에 초막(장막)을 짓고 광야생활을 기억한다. 또한 초막절은 타작 마당과 포도주 틀의 소출을 드린 후 풍성한 수확을 허락하신 하나님께 감사를 드리는 추수감사의 절기이다.
자연의 변화와 인간의 역사는 서로 다른 영역인 것 같지만, 성경의 절기에서 보듯, 이 둘은 불가분리의 관계에 있다. 하나님은 인간의 역사뿐만 아니라 자연의 변화도 주관하시기 때문이다. 기후변화에 따른 자연재해를 목격하면서 인간의 역사에 축복과 심판이 있는 것처럼 자연도 축복이 될 수 있고 재앙도 될 수 있다는 것을 깨닫는다.
아직 한국에 양가 부모님과 형제들이 있어서 이번 추석에 함께 하지 못한 아쉬움이 있지만, 사실 이곳에서 우리는 사랑하는 가족과 함께 사철 푸른 나무와 일년 열두 달 번갈아 피는 꽃들이 끊이지 않는 좋은 자연환경에서 살고 있다. 오늘도 자연과 계절의 변화에도 역사하시는 하나님을 고백하면서 내 삶을 인도하시는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하고, 하나님이 창조한 자연을 아름답게 잘 보존할 수 있도록 노력해야겠다.
<
임봉대 목사(에벤에셀 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