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가주 등 해외 한인사찰들의 살림살이는 대체로 열악하다. 도량을 도량답게 가꾸는 건 둘째치고 렌트비 등 경상비 건사도 빠듯한 곳이 한둘 아니다. 10여년 전 다닥다닥 새크라멘토 주택가의 셋집시대를 마감하고 전후좌우 확 트인 새크라멘토 외곽 농축지역에 5에이커 새터를 마련해 이전한 영화사(주지 동진 스님)라고 예외일 수 없었다. 비교도 안되게 덩치를 키운 까닭에 멋모르는 이들은 내심 영화사 속살림이 든든한가보다 했을지 모르지만 실은 맨손 도전이었다. 이 지면을 통해 드문드문 전했듯이 묘목구입비를 아끼려 새똥에 섞여 싹을 틔운 새싹을 애지중지 키우는 등 스님과 소수정예 신도들의 10여년 각고끝에 오늘날의 풍광을 갖추게 된 것이다.
특히 동진 스님은, 기자에게 전해준 누구 말대로 “땅에 묻혀 풀에 묻혀 보이지도 않는 몸으로…저러다 큰 탈이라도 날까봐…” 걱정될 정도로 죽어라 일에 매달렸다, 더 나아갈 밑천도 동력도 다 바닥날 때까지, 그리고 실제로 스님이 쓰러질 때까지. 그게 끝이 아니다. 묘하다고 해야 하나, 부처님 가피라고 해야 하나, 어제도 없이 내일도 없이 오직 하루 하루 오늘에 집중하며 일하고 공부만 하는데 영화사의 서원목록은 저절로 줄었다, 백마 타고 온 초인이 몰래 해결해주고 간 것처럼. 독립대웅전이 그렇게, 소요유도 그렇게, 연못도 그렇게, 잔손질 꽤 많이 들어간 안뜰 조경도 그렇게, 대웅전 벽화도 그렇게 영화사의 식구가 됐다. 법회 때면 비좁은데다 식당과 가까워 여간 불편하지 않았던 해우소 불편을 덜었으면 하는 생각에 야외 해우소 하나쯤 있었음 좋겠다 싶었지만 지갑이 홀쭉한 까닭에 마음뿐이었는데 글쎄 몇달 전에 이 문제도 그 어떤 인연 덕분에 봄바람결에 훠이훠이 과거완료형이 됐다.
속속들이 알 수는 없지만 돈을 다루는 스님의 자세를 보면 뭔가 달라도 한참 다르다. 주거형 수행공동체 추진을 목표한 이전불사 초기에 이 이 저 이 소개로 소위 있다 하는 이들이 와서 돈 냄새 풍겨가며 관심을 보이곤 했지만 스님은 돈에 혹하기는커녕 청정한 보시의 중요성을 아프게 일깨워주며 간보기류 같은 마음을 돕는 일이라면 차라리 안하니만 못하다며 계획을 무기한 접어버렸을 정도다.
아마도 올 상반기 어느 즈음에 한국의 후원자가 6,000달러를 보시했을 때도, 스님은 법당 천장공사 등 돈 먹을 하마들이 즐비한데도 무슨 필이 꽂혔는지 더 늦기 전에 의미있는 일을 시작해야겠다면서 단 1달러도 따로 떼놓지 않고 전액 2022 영화사 장학생 선발(6월에 1명 3,000달러 지급, 12월에 1명 3,000달러 지급예정) 종잣돈 겸 마중물로 썼다, 내년 내후년의 장학금 모금은 또 그때의 인연 따라 이어가기로 하고.
스님의 그때 그때 아낌없이 비움 자세가 그 어떤 조화를 부리는지 영화사의 위시리스트는 지금도 저 대웅전이나 소요유나 야외해우소처럼 <참 묘하게> 해결되곤 한다. 지난 6월 영화사 장학사업 시작을 알리는 기사에서 동진 스님이야말로 본보 불교면의 으뜸 버팀목이면서도 스님 자체를 입체조명하려는 기사 등에 대해서는 10년 넘게 비협조(?)로 일관해온 점을 불자들에 일러바쳤듯이, 이번에 알게 된 경사 역시 기자는 보름쯤 늦게 뒷북뉴스로 알게 됐다.
스님이 한달에 한번 10년 넘게 기고해온 무진등 칼럼 중 가려뽑은 수십편이 영어로 번역돼 지난 8월15일부로 아마존 전자책 < Inexhaustible Lamp: A Korean SEON Monk’s diary -15 years in California by Sunwha(Dongjin) Kim (Author), Sungja Cho(Translator) > 으로 거듭난 사실을 말이다. 일체의 뜬구름화법 고담준론이나 비슷한말 반대말 뜻풀이법문을 배제하고 스님의 일상을 부처님 가르침의 저울에 올려놓고 살피고 재고 뜯고 고치는 전달력 갑 칼럼이어서 수삼년 전부터 UC데이비스에 와 있는 불자 방문학자나 유학생 등 사이에서 영어번역 주문이 있었다는 것을 알고 있었고, 또 3-4년 전 실행직전까지 간 것을 알고 있음에도 기자는 이번에 또 낙종 아닌 낙종을 할 뻔했다. 그러면서도 기자 짐작에 <유명한 은둔자> 같은 형용모순적 삶에 대한 스님의 확고한 철학에서 비롯된 것이라 믿기에 세칭 언론계 은어로 "아니 왜 저까지 물먹이려 하십니까?" 따위 불평이 있을 리 없다, 역시 스님이란 생각밖에.
스님이 그러하니 번역자(조성자)도 닮았나보다. UC데이비스에 머무는 마지막 몇달간 쉬지도 않고 오직 칼럼 번역에 매달린 그는 임무를 완수하자 인터뷰는 고사하고 공개리에 공치사 한마디 들을 겨를도 없이 홀가분하게 한국으로 떠났다 한다.
책은 아마존 서점에 들어가 접속 및 구입할 수 있다: https://www.amazon.com/dp/B0B9S261PN/ref=mp_s_a_1_4?crid=1OPN0LM6QU30O&keywords=inexhaustible+lamp+book&qid=1660667136&sprefix=inexhaustible+%2Caps%2C347&sr=8-4&ref_=d6k_applink_bb_dls&dplnkId=22dcbb15-9189-4eb2-a326-492e3aec3add
한편 영화사는 기왕에 시작한 장학활동이 내년에도 내후년에도 세세생생 이어질 수 있도록 홈페이지에 상설코너를 마련해 기금모금을 받고 있다. 이런 류의 홍보성 기사도 썩 내켜하지 않는 스님의 결을 존중해 그런 부분은 의도적으로 흐릿하게 쓰다보니 그런 것인지 몰라도, 북가주 불자들이 스쳐가는 명사들에게는 비교적 후하게 지갑을 열지만 막상 북가주발 상서로운 일에는 한마음 울력전통이 썩 굳지 않아서 그런 것인지 몰라도, 정작 북가주 불자들의 호응은 참 미미하다, 알아보기가 민망할 정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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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태수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