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주인공들의 서서히 무르익어가는 로맨스 그린 은유이자 우화’

2022-08-19 (금) 박흥진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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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불체자와 그들의 처지를 다루며 어둡지만 희망이 보이는 이야기

‘주인공들의 서서히 무르익어가는 로맨스 그린 은유이자 우화’

추야오(앞)와 솔로몬이 외계인을 만나기 의해 애리조나 사막에 도착했다.

제목과 여주인공이 입은 우주복 등을 비롯해 공상과학영화의 범주 안에 들어갈 작품이지만 이런 공상과학 영화의 틀은 실은 우리 주변의 외계인들인 불체자와 그들의 처지를 다루기 위한 구실에 지나지 않는다. 이런 사회비판적인 의도와 함께 둘 다 주변인물들인 남녀 주인공들의 서서히 무르익어가는 로맨스를 그린 일종의 은유이자 우화와도 같은 작품이다.

차분하고 담담하며 아름다운 영화로 영화를 연출하고 공동으로 각본을 쓴 안토니오 티발디 감독의 빈틈없는 솜씨가 돋보이는데 조금 더 긴장감이 있었으면 하는 아쉬움은 있지만 어두우나 희망이 보이는 얘기의 서술과 함께 그 것을 담은 전반적인 분위기가 보기에 아주 좋다. 서서히 보는 사람의 마음을 빼앗아가는 준수한 영화다.

영화는 뉴욕에 사는 젊은 멕시칸 불체자 솔로몬(호르헤 안토니오 게레로)이 금속탐지기로 자석 돌을 찾는 장면으로 시작된다. 솔로몬은 자기가 사는 트레일러 위에 대형 안테나를 달아 놓고 외계로부터의 신호를 청취하면서 외계인에 집착하는 막일꾼이다. 그는 어렸을 때 집을 떠난 어머니가 외계인들에 의해 납치됐다고 믿고 어머니를 찾기 위해 이렇게 외계인에 매어 달린다.


어느 날 솔로몬이 변기가 고장 난 젊고 아름다운 중국계 불체자 여자 추야오(싱첸 류)의 아파트에 갔다가 테이블 위에 놓인 자석 돌과 벽의 그림 등을 보고 추야오도 자기처럼 외계인에 관심이 크다는 것을 발견한다. 그런데 추야오는 10대 때 초현실적인 피납경험을 한바 있다. 추야오는 낮에는 네일 살롱에서 일하고 밤이면 자기를 밀입국시킨 범죄조직을 위해 몸을 팔아야한다. 범죄조직의 두목은 추야오의 목에 위치추적 칩마저 심어놓고 추야오를 감시한다.

자기를 만나러 네일 살롱까지 찾아온 솔로몬을 마다한 추야오와 솔로몬은 납치사건에 연루돼 만나면서 범죄조직으로부터 도주하기 위해 행동을 같이 하게된다. 둘의 궁극적 목표는 외계와 교신하고 외계인을 만나는 것. 그리고 둘은 자신들이 찾는 진실을 위해 애리조나 사막으로 차를 몬다. 애리조나 사막에 도착한 둘은 여기서 솔로몬이 예전에 알던 역시 외계세계에 집착하는 콘스탄스(오-란 존스)를 만나는데 이 에피소드는 사족처럼 느껴진다.

마침내 사막 한 복판에 도착한 추야오와 솔로몬은 외계인을 만나기 위해 높은 바위 위로 올라가 서로를 끌어안는다. 둘은 과연 외계인을 만나 우주 저 쪽으로 이사했을까. 명확한 답이 없이 끝이나 더욱 매력적이다. 게레로와 류가 언어가 통하지 않으면서도 서서히 서로에게 이끌려 들어가는 모습을 마치 쇠붙이가 멀리 떨어진 자석에게 끌려들 듯이 은근하게 표현한다. 둘 간의 화학작용이 완벽한데 모두 표정 없는 연기를 민감하고 절묘하게 해낸다. 특히 류의 눈으로 보여주는 만감을 지닌 연기가 뛰어나다. 이런 둘의 모습과 함께 뉴욕의 번잡함과 애리조나 사막의 광활함을 대조적으로 찍은 촬영도 훌륭하다. 우리 가운데의 생명체인 일리걸 에일리언(불체자)을 의미하는 제목은 ‘우리도 사람이다’ 정도로 번역하면 어떨까.

<박흥진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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