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세상만사 - 칸트의 행복론

2022-08-09 (화) 최효섭/목사•아동문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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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자 임마누엘 칸트는 인간의 3대 행복을 말하였다. 첫째 보람찬 일을 발견하였을 때, 둘째 사랑할 대상을 찾았을 때, 셋째 미래에 대한 확실한 소망을 찾았을 때이다. 결국 인간의 행복은 소망으로 결정된다는 것이다.

사람이 갖는 소망은 천태만상이다. 인생관이라고 어렵게 말하는 것도 결국 소망을 말한다. 물질에 소망을 두고 평생 싸우는 사람, 권력에 소망을 두고 싸우는 사람, 명예에 소망을 둔 사람 등 여러가지이다.

유대교의 저명한 철학자 래바이 심라이는 성경을 숫자적으로 설명하였다. “모세는 365개의 금계(禁戒_)와 248개의 긍정적인 계명을 언급하였으며, 다웟은 이런 윤례를 11개로 요약하였고,(시편 15편) 예언자 이사야는 이 윤례를 여섯개도 단축시켰으며(이사야서 33:14-15) 예언자 미가는 다시 이것을 세 개로 요약하고(미가서 6:9) 예언자 하박국은 결국 이것을 한 개로 주렸는제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하박국서 2:4)라는 말씀이었다.


이 해묵은 인간의 질문에 대한 해답을 신약 시대에 와서 바울이 결정적인 종지부를 찍고 있다. 그것이 신약성경 로마서 3장 24절이다.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아마 값없이 구속함을 얻었다”는 말씀이다. 죄인이 의인이 될 수 있는 자격은 물론 없고 그런 값을 지불할 수도 없는데 하나님 자신이신 예수 그리그도가 그 댓가를 십자가에서 대신 지불하셨다는 것을 믿는 것이 수천 년 동안 수억 명이 믿어온 소위 기독교 복음 곧 기쁜 소식인 것이다.

영국 격언에 이런 말이 있다. “하루만 행복하려면 이발소에 가라. 한달만 행복하려면 결혼을 하라. 일년쯤 행복하려면 집을 사라. 그러나 평생 행복하려면 정직한 사람이 되라. “정직을 행복의 최고봉에 얼려 놓은 것이다. 거짓말 안하고 돈을 벌 수는 없다는 말도 있다. 그러나 거짓으로 번 돈은 거품과 같다는 말도 있다.

필자는 30년 전 성공률 불과 20%라는 어려운 심장 수술을 받았다. 일주일 후 퇴원하여 집으로 돌아왔는데 마당에 핀 파란 작은 꽃을 보았다. 그 꽃은 옛날부터 있던 꽃이다.

그러나 너무 작아 보이지 않았다. 생명을 되찾은 나의 눈에 그 작은 것이 보이기 시작한 것이다. 그것이 바로 부활의 기쁨임을 깨달았다. 행복이란 찾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볼 수 있는 눈을 갖는 것이다.

문호 톨스토이는 “돈이여, 너 때문에 얼마나 많은 비극이 탄생하였을고!”하고 한탄하였다. 돈이 곧 행복이란 공식은 성립하지 않는다. 감리교의 창시자 요한 웨슬리는 “돈을 많이 벌라. 그러나 돈은 잘못 쓰면 지옥 위 입찰권이 된다”고 하였다.

권력도 마찬가지이다. 권력을 악용하면 많은 사람들을 지옥으로 인도한다. 권력을 선용하면 그 손은 천사의 손이 된다. 그러나 권력이란 참으로 요물이어서 그것을 일단 잡으면 욕심껏 쓰려고 하고 그것을 이용하여 돈도 이성도 마음껏 누리려한다.

한국군과 미군이 북한군을 북으로 밀어내자 그들이 버리고 간 많은 가옥이 생겼다. 그것을 역산 즉 반역자의 재산이라고 불렀고 보건사회부와 계엄사령부가 공동으로 그 가옥들을 국유화 하는 작업을 기독교 학생들에게 시켰다. 필자도 18세에 그 일에 뽑혔다.

점잖은 분들도 “자네가 너무 순진하군. 그런 좋은 기회에 서울에 큰 집을 한 채 잡아두면 부자가 되지 않았겠는가”하고 말씀하셨다. 내가 정말 어리석었는가? 나는 지금도 어리석었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나에게 맡겨진 일을 제대로 한 것이다. 행복이란 본인의 생각에 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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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효섭/목사•아동문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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