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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니메이션은 아이디어·추상적 관념·은유 등 표현하기에 적합”

2022-07-29 (금) 글 박흥진 한국일보 편집위원 / 할리웃 외신 기자 협회(HFPA)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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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흥진의 Hollywood Interview - ‘마이 러브 어페어 위드 매리지’의 감독 시녜 바우마네

“애니메이션은 아이디어·추상적 관념·은유 등 표현하기에 적합”

‘마이 러브 어페어 위드 매리지’의 감독 시녜 바우마네

여자는 결혼해 아이를 낳고 가사를 돌봐야 한다는 가정과 사회의 고정 관념에 반항하면서 사랑의 의미와 자신의 정체를 찾으려고 애쓰는 젊은 여자 젤마의 삶을 다룬 장편 애니메이션‘마이 러브 어페어 위드 매리지’(My Love Affair with Marriage)를 감독한 시녜 바우마네(57)를 영상 인터뷰 했다. 이 영화는 지난 6월에 열린 프랑스 안시 국제 애니메이션 영화제에서 상영됐다. 구소련 치하의 라트비아에서 태어나 모스크바대에서 심리학을 전공한 바우마네는 애니메이터이자 감독이요 시와 동화를 쓰는 작가이기도 한데 현재 뉴욕에서 작품 활동을 하고 있다. 바우마네는 질문에 만면에 미소를 머금은 채 밝고 명랑하게 대답했다.

“애니메이션은 아이디어·추상적 관념·은유 등 표현하기에 적합”

‘마이 러브 어페어 위드 매리지’의 한 장면



-애니메이션이 화면으로 얘기를 하는데 실사 영화보다 유리한 점이 무엇인지.


“나는 애니메이터여서 움직이는 모습으로 생각을 한다. 머리에 떠올라 떠나지 않는 특별한 모습으로부터 작품을 시작한다. 애니메이션은 아이디어와 추상적 관념 및 은유 등을 표현하기에 아주 적합한 매체이다. 실사 영화는 이런 것들을 표현하기엔 한계가 있다. 그리고 애니메이션은 복잡한 문제들에 보다 쉽게 접근해 그 것에 관해 논의할 수 있는 장점도 있다.”

-당신에게 영향을 준 애니메이션 감독은 누구인가.

“먼저 폴란드 계 리투아니아 삽화가로 무대 디자이너이자 연극 포스터 디자이너인 스타시스 에이드리게비시우스이다. 그 다음은 체코의 스톱 모션 애니메이터인 얀 스반크마예르이다. 그야말로 뛰어난 애니메이터이다. 그리고 지난 1995년 미국으로 이주한 뒤 내게 큰 영향을 준 사람은 인간 존재의 밝고 우스운 측면에 초점을 둔 스타일을 갖춘 빌 플림턴이다. 따라서 내 스타일은 초현실적이요 어두운 동유럽의 것과 유머와 희롱기가 있는 미국 스타일이 함께 섞인 것이라고 해야겠다.”

-영화에는 소련이 붕괴한 뒤로 여자들은 직장에서 밀려나 생존하려면 섹시한 옷을 입고 부자 남자들의 도움을 받아야만 한다는 장면이 있는데 그 것이 사실인가.

“구소련은 남녀평등을 기반으로 세워졌지만 그 것은 말 뿐이다. 공산당 수뇌부에 여자란 한명도 없었던 것이 이를 잘 알려주고 있다. 그러니까 우리는 모두 평등하다는 것은 실제와는 다른 순전히 명목상의 것이었다. 여자는 선생이나 권력을 쥘 수 없는 남자들에게 비 위협적인 일이나 하도록 기대를 했었다. 권력은 다 남자들의 것이었다. 그 것이 내가 겪은 현실이었다. 그러나 소련이 붕괴하고 자본주의가 몰려오고 나서도 이런 병폐는 고쳐지지 않고 오히려 더 단단해졌다. ‘남자들은 위험을 무릅쓰고 돈을 버는 사람들이다. 그들은 마피아와 거래해 수백만 달러를 번다’면서 여자들은 살아남으려면 이에 적응해야만 한다는 것이었다. 그 것이 내가 본 현실로 나는 이를 영화에서 보여주려고 했다.”

-스튜디오와 함께 만들지 않고 독립영화인으로서 활동하는 이유가 무엇인가.

“어떤 다른 사람들의 결정에 의해 만들어지지 않는 창작의 자유 때문이다. 처음부터 끝까지 내 생각과 의도와 영감에 따라 영화를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부정적인 면도 있다. 그 것은 제작비의 한계다. 제작비가 너무 높아서는 안 된다. 독립영화인들은 제작비 조달이 쉽지가 않다. 이 영화를 만드는데 7년이 걸린 까닭도 바로 그 때문이다. 더구나 이 영화는 얘기 서술 방식이 종래의 영화들과는 달리 드라마에 뮤지컬과 생체학 까지 포함된 것이어서 제작비 조달이 쉽지 않았지만 난 나만의 방식대로 얘기를 하고 싶었다. 스튜디오가 이런 스타일의 영화를 만들려고 할지 의문이다. 난 젊었을 때 재단사였는데 옷을 만들 때도 옷감을 보면서 창작성이 내 머리를 치고 들어오는 대로 따라 만들었다. 난 제작비의 결핍을 창조적인 해결로 보상한 셈이다.”


-당신은 단편영화와 스톱 모션영화도 만들었는데 그 것들을 통해 실험한 것을 이 영화 만드는데 원용이라도 했는가.

“단편영화는 이야기 서술의 새 형식과 새로운 시각적 접근 방법을 발견하는데 있어 아주 중요한 구실을 한다. 그 것은 장편영화는 할 수 없는 실험을 가능하게 해준다. 이 영화에서 사용된 스톱 모션 방식과 손으로 그린 인물들은 이 영화 전에 만든 내 영화 ‘더 록스 인 마이 포케츠’에서 사용했던 것들이다. 나는 단편영화를 정말로 좋아해 틈만 나면 그 것들을 보기 위해 극장엘 간다. 그런데 단편영화나 장편영화나 만들고자 하는 집념과 열정은 다 마찬 가지다.”

-당신의 가족들은 자기들의 얘기가 당신 영화에서 묘사되는 것을 꺼려하는지.

“‘더 록스 인 마이 포케츠’는 1백년에 달하는 우리 가족 여자들의 자살과 우울증에 관한 얘기여서 우리 가족은 그에 대해 전연 달가워하질 않았다. 그들은 자신들의 발가벗은 모습이 드러났다고 생각해 아무도 그 영화를 좋아하지 않았다. 그 뒤로 한참을 그들은 나를 멀리했다가 요즘은 많이 나아져 ‘내 얘기 만들어 줘’라고 말 할 정도다. 난 내가 하고픈 얘기를 위해 남의 얘기를 사용해야 할 권리가 있는지에 대해 항상 고심하고 있다. 그러나 이 영화는 경우가 다르다. 실제 있었던 일을 바탕으로 만든 것이긴 하나 사실을 그대로 표현한 기록영화는 아니다. 어느 특정한 심리적 고통을 제거했기 때문에 동화와도 같은 분위기를 지녔다고 하겠다.”

-영화에는 남자 아이들이 젤마에게 공산당에 충성하는 서약을 하라고 윽박지르는 장면이 있는데 공산주의 체제 하에서 자란 당신도 그런 경험을 했는가.

“난 공산주의나 사회주의 체제 하에서 자란 것이 아니라 독재정권 하에서 자란 것이다. 일단의 사람들이 남의 재산과 부를 자기들 마음대로 관리했다. 우리는 제대로 말 할 목소리가 없었다. 체제에 저항하고 정치적이 되면 추방당했다. 나는 공산당의 동조자가 되든지 아니면 반체제 인사가 되든지 또는 정치에는 관여를 하지 않는 비정치적이 되든지 셋 중의 하나가 되어야 했는데 그래서 비정치적이 되기로 결정했다. 반체제 인사가 되면 고등교육도 못 받고 직장도 얻지 못하며 사람들은 두려워 당신과 함께 얘기하기를 꺼려하기 때문이었다. 이런 비정치적인 태도가 미국에 와서야 고쳐졌다. 모두가 참여하고 개입하는 민주주의 때문이다.”

-후에 영화로 만들기 위해 일기라도 쓰는지.

“안 쓴다. 일기를 쓰면 그 날 하루의 상세한 일들이 다 매우 중요한 것으로 여겨지게 마련으로 그렇게 되면 얘기를 하는 창작자로서 너무 세세한 것에 매달리게 되기 때문이다. 일기를 쓰지 않는 것은 지나치게 세세한 것으로부터 거리를 두고 보다 보편적인 얘기를 할 수 있기 때문이다. 난 보편적인 인간의 경험과 관계를 맺고자 한다. 지나치게 세세한 것에 치우치다 보면 관객들도 내가 진실로 하고자 하는 의도로부터 멀어지게 마련이다.”

-당신은 애니메이션 팬인가 아니면 그냥 작업으로 생각하는가.

“난 첫 눈에 애니메이션에 반했다. 그리고 그 것은 나의 사명이기도 하다. 나는 그 것에 푹 잠겨 있다. 그 것은 나의 한 부분이며 또 내 정체의 한 부분이다.”

-처음에 본 애니메이션은 무엇인지.

“어려서 본 유리 노스타인이 만든 ‘안개 속의 고슴도치’다. 이 영화는 나를 자연의 경이와 신비 그리고 모험과 연결 시켜준 것으로 나는 지금까지도 이 것을 보고 사랑하고 있다. 어려서 TV에서 이틀이 멀다하고 방영해줘 70번 이상을 봤을 것이다. 가끔 내가 가르치는 학생들에게 보여주는데 학생들은 틀자마자 졸기들 시작하더라.”

-동 유럽 라트비아 태생의 사람으로서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을 어떻게 생각하는가.

“매일 매 시간 가슴이 찢어지는 것 같다. 우크라이나를 위한 시위에도 참가했고 또 그 나라를 위해 시간과 돈도 기부했다. 라트비아도 러시아의 다음 침공의 목표가 될 수 있다. 난 아직도 가족과 친구들이 고국에 있기 때문에 그런 침공이 없기를 바랄 뿐이다. 가슴이 찢어지는 느낌과 함께 무기력감에 빠질 뿐이다.”

<글 박흥진 한국일보 편집위원 / 할리웃 외신 기자 협회(HFPA)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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