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턱대고 함부로 피를 뽑다간…
어느 날 한의원에 55세 된 부인이 찾아왔다. 이 분이 수개월 동안 어깨가 아파 고생하던 중에 들른 사우나에서 우연히 피를 뽑아주는 아주머니를 만났다. 그분 왈, 나쁜 피가 원인이니 피를 뽑으면 낫는다 해서 등에서부터 허리까지 부항을 붙여 놓고 피를 뽑았는데 다른 사람들보다 피가 많이 나와 바케스의 3분의 일쯤 되는 피가 나왔다는 것이다.
문제는 다음 날부터 시작되었다. 피를 뽑고 집에 돌아와서부터 이상하게 몸이 무겁고 기운이 없어지더니 다음 날엔 급기야 입술이 부르트고 가슴이 벌렁거리고 귀에서 소리까지 나기 시작한 것이다. 이상하다 싶어 목욕탕에 찾아가 물으니까 그 경우엔 마른 부항을 붙이면 좋다 해서 이번엔 피를 안 뽑고 건부항만 온 몸에 붙이고 돌아왔다.
그러나 다음 날 증세는 더 악화되어 이제는 손발에 쥐가 나고 눈가의 근육이 떨리는가 하면 입술이 타고 얼굴색이 창백해지기 시작했다. 그제 서야 피를 잘 못 뽑아 생긴 후유증으로 판단하고 한의원을 찾은 것이었는데 이 부인은 내원했을 때까지도 전신근육 경련증상과 피로, 손발이 계속해서 저리는 증상을 호소하고 있었다.
나쁜 피를 뽑아야 하는 이유
물론, 한방에서는 나쁜 피, 소위 어혈(瘀血)이라는 개념이 있어 이것이 원인이 되어 병이 생길 수 있다고 말한다. 타박을 입었을 때, 넘어져 다쳤을 때, 또는 교통사고로 몸을 상했을 때 몸에 나쁜 피, 혹은 죽은피(어혈)가 생긴다.
이런 나쁜 피는 가능한 한 빨리 몸에서 배출시켜주는 것이 회복에 도움이 되며 이 나쁜 피를 빼주지 않으면 결국 다른 피와 섞이게 돼 전반적인 몸의 피를 탁하게 만들 것이다. 결국 배출되지 않은 어혈은 나중에 온 몸이 결리고 쑤시고 저리는 후유증을 초래하게 만든다. 그러므로 나쁜 피가 생겼을 때 그 피를 신속히 밖으로 배출시켜 주는 것은 기본적으로 한의학적인 치료방법이라 할 수 있다.
무조건 피를 뽑기보단 정화시키는 방법도
문제는 죽은 피, 나쁜 피로 인한 증세가 아닌데도 불구하고 몸이 결리거나 쑤시고 아프면 무조건 나쁜 피 때문에 생긴 것으로 판단하고 피를 뽑기 때문이다. 허리가 아프면 허리 아픈 원인이 따로 있고, 어깨가 쑤시면 어깨 아픈 원인이 따로 있는데 의학적 진단과정 없이 모든 통증이나 결리는 증상들은 모두 나쁜 피 때문으로 판단하고 피를 뽑으면 앞서 예를 둔 부인의 경우처럼 다양한 후유증으로 고생하게 된다.
몸에 부항을 붙여 피를 빼는 경우는 주로 피부 밑에 소재한 모세 정맥혈로부터 피를 뽑기 때문에 뽑은 피의 색은 검붉은 색을 띄게 되고 이렇게 겉에서 피부를 통해 빼주는 피만 가지고는 우리 온 몸 심층에 흐르는 동맥혈을 비롯한 모든 피를 맑고 깨끗하게 정화할 수 없다.
만일 국소적인 타박으로 인해 죽은 피가 생기면 가능한 한 빨리 그 피를 제거하면 도움이 되지만 교통사고 같은 큰 사고로 전신에 타박을 입어 어혈이 온 몸에 발생하면 피를 국소적으로 뽑기 보다는 어혈을 맑게 해주는 당귀수산(當歸鬚散)같은 한약 처방을 사용해 피를 정화시켜 줘야 한다.
문의 (703)942-88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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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호윤 / 예담한의원 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