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오늘 하루 이 창 열지 않음닫기

“아주 좋은 여자야”

2022-07-25 (월) 11:05:06 최숙자 비엔나, VA
크게 작게
우리 아들이 대학에 들어 간 후, 허전한 마음을 달래기 위해 이 집으로 이사한지 벌써 25년이 되었다. 남편이 돌아 가시고 혼자 되신, 복덕방을 하시는 고등학교 선배님께서, 이 동네는 운치가 있고, 집이 자주 안 나오는데, 이상하게도 이 집은 시장에 나온지 1년이 되도 안 팔렸다고 했다. 내가 어렸을 때 살았던 후암동 언덕의 돌집과 비슷한 인상을 주어 첫눈에 내 마음을 끌었고 쉽게 사기로 결정하고 이사했다.

약 100 가구가 사는 우리 동네는 비교적 땅이 넓고, 동네 앞에 하이킹 트레일이 있어서, 아침마다 걷는 사람이 많다. 매일 걸으면서, 대부분 얼굴을 알게 되고, 간단한 대화를 하고, 해마다 출판되는 주소록 덕분에, 우리는 동네 사람들이 어디에 사는지를 알 수가 있다. 특히 팬데믹으로 재택근무를 하는 젊은이들도 알게 되어, 나는 그들에게 만나서 반갑다는 카드를 보내어, 아는 얼굴이 더 늘었다.

어느 날 아침 동네의 산책을 하면서 만난 백인여자 조(Joe)가, 우리 동네에 새로 한국사람이 이사 왔다고 하면서, 아주 좋은 여자라고 강조한다. 우리 동네의 오리지날 오너인 조는 어렸을 때 폴란드에서 이민 온 피난민으로 뉴욕주에서 가난하게 살다가, 자수성가해서 지금은 돌아가신 남편과 시작한 방위산업 계통의 사업을 계속 하고 있다. 팬데믹 중에 가난한 사람들에게 주는 음식을 받으려고 줄을 서 있는 소수계 사람들이 좋은 차를 타고 있는 모습을 TV에서 보면, 비교적 부정적인 생각을 하는 조가, 새로 이사한 한국계 사람을 칭찬하는 것이 너무나 재미있었다. 어떻게 좋으냐고 다시 물어보니, 그냥 좋다고 한다. 똑똑한 발음으로, 새로 이사 온 한국 여자분의 이름도 알려 주고 내 이름과 비슷하다고 하며, 주소를 알려주면서 함께 점심을 하자고 한다.


조와 매일 함께 산책을 하는 이란 계 여자와 한국계 여자 두 명, 네 명의 이민자가 멕시코 음식점에서 즐겁게 식사를 했다. 조가 무엇을 하고 싶다는 얘기만 시작하면, 새로 온 한국분은 열심히 들을 뿐 아니라, 계속 같이 하자고 초대를 하니, 보통때는 굳었던 조의 얼굴에 웃음이 만발한 것을 보면서, 아주 좋다는 여자의 의미를 조금은 알 것 같았다

나는 그 분과 서로의 이름과 연락처를 교환하고 그 분을 잊고 있었는데, 그 분은 이사 오자마자 오픈 하우스를 해서, 먼저 동네 친구들을 초대한다고, 우리도 놀러 오라고 연락을 주었다. 나는 그 댁에 가는 대신, 그 부부를 우리 집에 따로 초대했다.

초대한 날, 약속시간에 맞추어, 예쁜 꽃과 과일을 들고, 우리 집에 오신 새 이웃은 우리보다 훨씬 나이가 적고 인상도 좋고, 진실하고 솔직해서 금방 대화를 즐겁게 할 수 있었다. 부부가 함께 연방정부에서 일하다가, 부인만 먼저 은퇴를 했고, 2년전 연방정부에서 은퇴한 나의 남편과 서로 잘 통하며 공통점이 많고, 배울 점이 많은 부부와의 감사한 시간이었다.

대화를 하면서, 조가 좋은 여자라고 한 이유를 알 수가 있었다. 그 부부는 미국 교회에 다니는 교인으로, 삶으로 남들을 섬기고 있는 하나님의 귀한 제자였다. 먼저 동네에서도 외로운 사람들을 식구같이 도와주고, 우리 동네에 이사 오자마자, 3년전에 과부가 되어 외롭다는 조를 식구같이 가슴에 품어 준 따뜻한 여자였다.

우리 집을 떠나기 전에 자기 집에 초대하는 날짜를 잡아주는 열성파의 좋은 새 이웃을 알게 되고, 그 이웃을 연결해 준 조가 알려 주어서, 우리도 모처럼 극장에 가서, 2시간 반의 긴 엘비스 영화를 볼 수 있었다. 집에 오는 길에 타이 (Thai) 식당에 들르니, 독립 기념일이라, 일찍 문을 닫아 가까운 맥도날드에서 모처럼 먹어본 음식도 맛이 있으니, 이년 반 동안 답답했던 마음이 해방된 듯한 푸근한 마음으로 감사했다.

<최숙자 비엔나, VA>

카테고리 최신기사

많이 본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