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성귀 사랑
2022-07-24 (일) 09:56:51
한연성 / 통합 한국학교 VA 캠퍼스 교장
어릴 때 한옥인 친정 집 마루에서 더운 여름 점심 먹던 시간이 종종 생각난다.
마당 담장을 둘러 작은 화단이 있고 화단 안쪽으론 겨울 김장 김치를 묻던 항아리가 땅속 깊이에 있었고 담을 붉은 색으로 장식하던 넝쿨 장미, 담이 끝나는 지점엔 각종 항아리들과 포도넝쿨이 풍성하던 모습이 눈에 그려진다.
화단이라고 말은 고상하게 불렀으나 여름엔 상추와 열무 그리고 고추등 우리가 친하게 만날 수 있는 채소가 햇볕을 한껏 받아 싱싱하게 자랐다.
아침마다 부지런한 아버지께서는 포도나무와 화단에 물을 주고 출근을 하셨고 방학이면 꼬맹이 고모, 삼촌들이 모여 앉아 화단에서 수거한 채소로 풍성한 점심을 먹었다.
열무 싹에 보리밥을 은빛 찬란한 양푼에 비비면 숟가락만 들고 달려드는 시집 식구들을 울 엄마는 흐뭇하게 바라보곤 했다. 열무가 좀 자라면 열무 물김치를 만들어 마당 언저리 다라이 물 속에 김치통을 담가놓고 조금이라도 시어지는 시간을 늦추곤 했다.
우리 형제들 중에 나만 그 비빔밥의 맛을 알아서 대가족의 군중에 합세하여 황제 같은 포만감을 만끽하곤 했다. 고기도 없는 상추 쌈과 아삭한 풋고추의 매력은 지금도 그리운 맛이다.
미국에 와서 어린 시절의 시골스러움을 잊지 못해 좁은 집 화분에 간단한 채소는 심어 먹기도 했지만 늘 부족하였다.
엄마와 같은 교회 권사님이 계시는데 지난 몇 년동안 많이 아프셨고 여러가지 이유로 여유롭지 못해 뵙지 못하고 미안한 마음으로 지내던 중 먼저 연락을 주셨다. 너무 죄송해서 차마 인사도 못하는데 텃밭에 고추가 실해서 나누고 싶다고 하신다. 일정을 뒤로 하고 제일 먼저 얼굴이라도 뵙고 싶어서 달려갔다.
신문지에 돌돌 싸인 채소를 풀어보니 90도를 오르내리는 이 더위에 텃밭에서 손수 재배한 부추와 튼실한 고추. 어린 시절 엄마에게 느끼던, 땀을 흘리며 손수 사랑을 담아 전해주신 그 따뜻함이 가슴을 차고 올라온다. 요즘 젊은 사람들은 채소를 줘도 반겨하지 않는다는 말로 반드시 맛나게 먹어야 한다는 다짐을 하시고 손에 쥐어 주신다.
난 어느 누구보다도 푸성귀를 좋아하는 그러나 그리 젊지 않은 세대이다. 한줌의 채소에 담긴 키우는 사람의 땀과 사랑을 생각하면 돈으로도 살 수 없는 값진 무언가를 넉넉하게 얻게 된다. 돌아보면 이렇게 받은 깊은 사랑을 누구에게 나눌 수 있을지 나는 아직도 혈기가 남아서 사랑을 나누기 전에 판단을 하고 성을 내고 산다.
부추와 고추를 바라보며 수많은 삶의 갈래와 감사하지 못하고 사는 각박함을 다시 반성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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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연성 / 통합 한국학교 VA 캠퍼스 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