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공-붓다나라 미주지부 (buddhanara.usa@gmail.com)>
부처님은 150Km나 되는 먼 길을 걸어서 바라나씨의 녹야원(鹿野苑)으로 꼰단냐(Koṇḍañña), 와빠(Vappa), 밧디야(Bhaddiya), 마하나마(Mahānāma). 앗싸지(Assaji) 다섯 비구를 찾아갔습니다. 이들은 부처님이 출가하자 아버지 숫도다나가 싯다르타를 데려오라고 보낸 사자들이었습니다. 그들은 싯다르타를 데려오려고 우루웰라에 갔다가 싯다르타가 정진하는 모습에 감동을 받아 돌아가지 않고 싯다르타 옆에서 함께 수행을 한 사람들입니다. 그들은 싯다르타가 고행을 포기하자 실망하고 우루웰라를 떠나 바라나시의 녹야원으로 갔습니다. 부처님은 이들에게 자신이 깨달은 진리를 가르치기로 결심한 것입니다…
다섯 비구는 이렇게 따집니다. “고따마 존자여… 정진하다가 타락하여 윤택한 생활로 전락한 사치스러운 그대가 어떻게 인간의 법을 넘어선 원만한 성자의 지견(知見)을 성취할 수 있었겠소?”
부처님은 다섯 비구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비구들이여, 여래는 사치스럽지 않고, 정진하다가 타락하지 않았으며, 윤택한 생활로 전락하지 않았소. 비구들이여, 여래는 아라한이며, 등정각(等正覺)이요. 비구들이여, 귀를 기울이시오. 불사(不死)는 성취되었소. 내가 가르쳐주겠소. 내가 법을 설하리니, 가르침대로 실천하면 그대들은 오래지 않아 선남자가 집을 버리고 출가한 목적에 합당한 위없는 범행(梵行)의 완성을 지금 여기에서 몸소 체험적 지혜[勝智]로 체득하고 성취하여 살아가게 될 것이오…비구들이여, 그대들은 이전에 나에게 이와 같은 말을 들은 적이 있나요?”
“없습니다. 존자여!”
“비구들이여, 여래는 아라한이며, 등정각(等正覺)이요. 비구들이여, 귀를 기울이시오. 불사(不死)는 성취되었소. 내가 가르쳐주겠소. 내가 법을 설하리니, 가르침대로 실천하면 그대들은 오래지 않아 선남자가 집을 버리고 출가한 목적에 합당한 위없는 범행(梵行)의 완성을 지금 여기에서 몸소 체험적 지혜[勝智]로 체득하고 성취하여 살아가게 될 것이오.”
이렇게 부처님은 다섯 비구를 설득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부처님이 두 비구를 가르치면 세 비구는 탁발(托鉢)하러 갔고, 세 비구를 가르치면 두 비구는 탁발(托鉢)하러 갔으며, 이렇게 탁발하여 가져온 음식으로 여섯 사람이 생활했습니다.
이렇게 부처님의 가르침을 받은 다섯 비구는 마침내 열반(涅槃)을 성취하게 됩니다. 불교는 맹목적인 신앙을 요구하는 종교가 아니라 이 세상의 진리를 스스로 이해하고 실천하여 깨달아서 살아가도록 가르치는 종교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부처님이 깨달은 진리가 아무리 훌륭한 진리라 할지라도 다른 사람이 이해할 수 없고 실천할 수 없는 것이라면, 그것은 우리에게 아무런 소용이 없는 것입니다.
부처님이 깨달은 진리가 어렵기는 하지만, 누구나 노력하면 이해하고 실천하여 깨달을 수 있다는 것이 다섯 비구를 통해서 입증되었기 때문에 불교는 우리에게 다가올 수 있었던 것입니다.
다섯 비구를 통해 자신이 깨달은 진리가 모든 사람에게 적용될 수 있는 보편적 진리라는 것을 확인한 부처님은 본격적으로 자신의 가르침을 세상에 펼치게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