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인칼럼] 미국에서 산다는 것은(3)
2022-06-09 (목)
강순구 목사 (성령의 비전교회 담임)
미국은 좋은 나라다. 세계 어디를 가 봐도 미국만큼 풍요롭고 자유스러운 곳이 없다. 살면 살수록 더 느낀다. 나는 항상 미국에 살면서 적응하는 것이 힘들었었다. 언어도 힘들고 문화도 이해하기 쉽지 않았다. 그런데 최근에 내가 많이 바뀌었다. 가랑비에 옷 젖는다고 40년간을 살다보니 어느덧 나는 미국에 많이 익숙해졌다. 영어로도 꽤 부담 없이 어느 정도 소통이 된다. 미국 사람들 사고방식에도 조금 익숙해져서 쓸데없이 인종차별 운운하지 않게 되었다. 인종차별을 대놓고 하는 사람은 극소수다. 대부분의 사람은 호의적이고 친절하며( 이 친절함이야말로 세계 으뜸이다.) 긍정적이다. 다만 우리 한국인이 아직도 소수이다 보니 그들에게 익숙지 않아 어색하게 반응할 뿐이다. 지난주에 코비드 19‘에 걸린 성도가 있어 주일 대면 예배를 취소하였다. 이번 기회에 동네 미국 교회에 한번 가봐야 되겠다는 생각이 들어 내가 사는 트레이시 에서 가장 사람들에게 평점이 높은 교회에 가서 예배를 드렸다. 기대와 달리 수백 명 중 흑인 두세 가정, 그리고는 대부분 백인들이었다. 아마 히스패닉도 있겠지만 겉으로는 잘 구별되지 않고 그 많은 인도나 동남아 계통 사람도 없었다. 자기들 끼리 삼삼오오 떠들고 잡담하며 예배시간이 다 되었는데도 들어갈 생각을 하지 않았다. 나는 처음 간 사람이 적극적으로 나서기도 쑥스러워 그냥 예배당에 들어갔다. 자연스럽게 예배를 인도하는 찬양팀과 목사님으로 조금 마음이 편해지긴 했지만 앞으로 시간이 있어도 또 오고 싶은 마음은 들지 않았다. 어느 정도 익숙해진 것과 완전히 마음의 긴장이 풀려 자유스러워진 것과는 차이가 있음을 느꼈다. 예배에서 은혜 받는 것은 다음의 문제였다. 사람은 마음이 자유스러워야 한다. 마음이 편해져야 나의 영혼도 자유를 누리는 여유를 가질 것이다. 우리 교회도 그런 면이 부족했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미국에서 산다는 것은 세계인으로 사는 것이다. 미국이 세계의 축소판이기 때문이다. 이곳에 살면서 고향에서 동창 만나는 분위기를 기대할 순 없다. 그러나 누구 눈치 보지 않고 자유스럽게 하고 싶은 것 마음껏 할 수 있는 나라가 미국이다. 세계인으로 살되 몇 가지 규칙만 지키면 정말 풍요하고 자유스러운 나라가 미국이다. 팬데믹 이후로 많이 팍팍해지고 어려워졌어도 미국만한 나라는 세계 어디에도 없다. 나는 이제 미국에 살아도 한국에 살아도 별 상관이 없다. 단지 노후의 건강과 고향에 대한 향수를 감안할 때 한국으로 돌아가고 싶은 마음이 조금 더 드는 것뿐이다. 미국에서 노후에 할 수 있는 나의 할 일을 주신다면 이곳에서 살 것이다. 그러나 한국에서 어떤 기회가 있다면 조국으로 돌아갈 것이다. 이번에 방문해보니 우리나라도 많이 바뀌었다. 세계화된 측면, 자유스러운 면도 보인다. 그러나 여전히 숲은 보지 못하고 나무만 보는 편협한 사고방식도 존재함을 느꼈다. 남자는 보람된 일이 있는 곳으로 가는 것이다. 그것이 건강을 지킬 수 있는 가장 좋은 길이다. 할 일이 있고 목표가 있는 사람은 늙지 않는다. 나는 목사로, 아니 기독교인으로 어디에 사는 것보다 무엇을 추구하며 하나님 앞에 살 것인가를 우선으로 살 것이다. 한 때는 교회가 나의 전부였다. 목회자로 교회의 성도들을 섬기는 것이 나에게 주신 하나님의 사명이라 생각했고 은퇴 후에도 교회 주변에서 무언가 성도들에게 유익한 것을 해야 되겠다고 생각했었다. 그러나 한국 여행을 하면서 사람들이 기독교인, 특히 목회자를 대하는 깊은 심중을 알게 되고는 생각이 많이 바뀌었다. 주의 종이기 이전에 인격과 상식을 가진 자가 되어야겠구나. 무엇을 가르치려 하지 말고 그들의 말을 들어주고 공감해주는 자가 되어야겠구나. 상대방에게 편한 사람이 되어야겠구나. 나에게 네 살 많은 누나가 있다. 40년 가까이 대학교수를 하다가 몇 해 전에 은퇴하였다. 은퇴하면서 비슷한 동료들과 결의했단다. 우리는 깨끗이 은퇴하고 학교 문을 나가면 다시는 되돌아보지 말자고. 자꾸 학교에 미련을 갖게 되면 후배들이 힘들어할 거라고. 정말로 누나는 학교를 떠날 뿐이 아니라 전공도 떠나버렸다. 그리고 지금은 라오스로 가서 매형과 함께 학생들을 가르치며 선교사 비슷한 일도 하며 행복해 한다. 그래 평생 떠나지 못했던 교회도 영원하진 않다. 하나님의 나라만 영원할 것이다. 나는 하나님 주신 나의 길을 찾을 것이다.
<강순구 목사 (성령의 비전교회 담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