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진등(無盡燈)] 고집멸도
2022-05-26 (목)
동진 스님 (SAC 영화사 주지)
초파일이면 속가 어머니는 절에 가셨다. 그렇게 간절히 바라는 운동화는 안 사주셔도, 절에 가셔서 운동화보다 비싼 등은 켜셨다. 심통이 나서, ‘그 돈을 날 주면 내가 부처님보다 엄마한테 더 잘할텐데’ 했다. 어머니는 남이 들을 새라, 조용히 하라며, 온 힘을 다해 묵언의 협박을 하셨다. 그런 모친이 지은 복으로, 내가 복되게 잘 살고 있음을 알아, 지금은 물론, 너무 감사하고 있다. 이번 초파일은 한국의 어버이날이기도 했고, 미국의 어머니날이기도 했다. 그래서 속가 어머니 생각이 잠시 났었다. 이번엔 어머니같은 노보살님들이 빠짐없이 오신 까닭일 수도 있다. 버린 자는 잘 모르지만, 버림을 받은 이는 버린 자를 잊지 못한다. 최근 우연한 계기로 내가 형제도, 부모도 냉정히 버리고 떠난 자, 임을 처음 알게 됐다. 출가가 거룩한 일이라 여겨, 스스로 걸어들어간 불가 이기에, 그들도 좋아할 것이라 여겼다. 그들이 떠난 나에게 실연의 상처를 안고 사는 지, 진정 몰랐다. 말은 못해도, 그들은 많이 슬펐었다고 한다. 그 슬픔은 애정 했던 것에 대한 상실감에서 비롯된 것이기에, 잃어버리지 않은 자는 모르는 것이다. 나는 그들을 버린 적도, 잃은 적도 없다. 노보살님들이 절에 와서 예나 지금이나 얘기하는 것이 이와같은 슬픔이다. 출가나 출세나 가출이거나 간에, 떨어져나간 자식에 대한 슬픔이다. 신체 아프다고 할 때보다 자식 얘기할 때, 그것이 비록 자랑일지라도, 그 속엔 슬픔이 있다. 그 사랑스런 내 자식이 곁에 없는 것이다. 아무도 버린 이 없건만, 혼자 버림받은 것이다. 그 허무한 슬픔의 하소연은 늘 허공에 흩어진다. 본인에겐 간절한 아픔이지만, 그것은 본인 만의 것이다. 버리고 갔다고 여기는 것은 버림받았다 여기는 자의 ‘생각’이다. 당신들이 젊은 날 그랬듯, 자식들도 그저 때가 되어 다음 단계로 이동하고, 그들의 삶을 살고 있을 뿐이다. 어떤 식으로든. 모이고 흩어지는, 인연집산하는 것이지, 누가 누굴 버리고 버림받고의 일은 아닌 것이다. 세상 모든 고통은 집착에서 비롯된다. 이 집착은 이름과 형태를, 잘못된 분별의식을 가지고, 이름과 형색이 있다고 믿는데서 비롯된 것이다. 즉, 사과가 있다고 믿는다. 수차 얘기했지만 당신이 알고 있는 그 사과는 세상에 없다. 자식도 당신이 아는 그 자식은 처음부터 없었다. 하지만 이름과 형태에 집착하면, 그것은 있다. 이것은 생각과 분별심이 만든 허상으로, 그게 진실로 있다,고 여기면 사라짐이 슬프다. 사라져서 슬픈 게 아니라, 상실이 싫은 내 마음 때문이다. 왜 내 마음은 잃은 것이 싫은가 ? 이것을 깨달아 알면, 그 슬픈병에 걸리지 않을 수 있고, 걸렸다 해도 바로 낫는다. 해마다 똑같은 슬픔을 토해내어, 듣는 젊은이들을 도망치게 만들지 않을 수 있다. 그들에겐 아직 버리고 간 자식이 없다. 그런 사람들을 보고 있자면 언제나 가슴이 아프다. 손만 뒤집으면 다른 세상이 있는데, 손은 있어도 뒤집을 맘은 없다. 착에 매달려 바닥만 보고 등은 없다고 한다. 그게 인생이다. 고집 이다. 모르면 그렇게 살 수밖에 없다. 쫌, 손등만 보지 말라고, 다른 쪽도 있다고!!! 하고 싶지만, 문제는 그 상실감이 슬픈병이라는 걸 그들은 모른다. 늙은이한테 늙었다 하면 절대로 인정 안 하듯이, 모두가 아는 걸 본인들만 모른다. 알려줘도 고집스럽게 인정 안한다. 인생의 불행과 행복은 ‘고집, 멸도’ 단어 하나 차이다. 당신의 마음이다. ‘고집’하고 있으면 삶은 고달프고, ‘멸도’를 알면 삶은 편안해진다. 그 모든 고가 ‘집’에서 온 것임을 이미 알아, 부처님께서는 다 놓고 출가하시어 ‘멸도’를 이루었다. 덕분에 많은 후세들이 안심을 얻었다. 속세를 떠나 출가를 하거나, 속세에 살며 ‘집’을 놓고 살거나, 처처에서 자유롭다면, 둘은 크게 다를 바 없다. 어차피 마음 문제이고, 마음은 그 어디 정처가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것을 일러주지만, 달라지진 않는다. 이걸 계속 하나, 늘 한 생각 일어나지만, 중이 할 일이라 그저 한다. 초파일은 좌우당간 지나갈 것이니, 인연시절 도래하면, 부처님 말씀 이근에 담아둔 자, 마음의 눈을 뜰 날도 올 것이니, 하고.
<동진 스님 (SAC 영화사 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