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멜 삼보사 주지 대만 스님이 삼보사에서의 두번째 3년결사를 마쳤다. 불기 2566년 부처님오신날인 지난 8일이 그 회향날이었다. 삼보사 부임 전에 곡성 성륜사 주지를 맡으면서 했던 결사까지 치면 세번째다. 3년 전 부처님오신날의 입제가 그랬듯이 올해 부처님오신날의 회향도 아는 이들만 아는 가운데 법요식에 묻혀 지나갔다. 네번째 결사 또한 그럴 것 같다. “내년 초파일 즈음에 시작하려고 하는데… 시차에 별 의미는 두지 않아요.”
삼보사에서만 6년이 넘는 결사 중 특별히 어려웠던 점을 묻는 질문에는 “이런저런 잡다한 일이 많은데 영어가 안되서 어려움이 많지요”라는 뜻밖의 답을 내놨다. 실은 ‘이런저런 잡다한 일’이라고 퉁쳐버린 어려움이 진짜 어려움이었던 것 같다. 몸에 탈이 나 하루 12시간 이상이던 참선시간을 6~8시간으로 줄여야 했고, 물에 불린 현미 몇줌으로 때우던 하루 한끼 식사도 바꿔야 했다.
“오래 앉으면 저절로 공부가 되는 수행을 하고자 하는데 앉는데 심각한 장애가 와서 할 수 없이 참선시간을 줄일 수밖에 없었고… 물과 현미만 있으면 누구의 도움없이 수행하다 갈 수가 있어서 시작했는데 치아가 흔들리고 시큰거려서 포기했어요, 또한 미국산 현미가 내 몸에 안맞아서…” 심각한 장애는 비밀에 붙였다.
코로나19 때문에 절살림에 주름이 깊어지지 않았을까. 다들 어려운 마당에 그 정도면 괜찮았다는 뜻인지 정말 괜찮다는 뜻인지 그 와중에 도움을 준 불자들에 대한 감사에 방점이 찍인 것인지 모를 답을 내놨다. “팬데믹으로 어려운 와중에도 불자님들의 정성이 꾸준하게 이어져서 잘 지냈어요. 올초에 2만3천불가량 써서 부엌도 새로 하고, 후반기엔 솔라패널을 설치할려고 해요.”
앞으로의 수행계획을 물었다. “부처님같이 될려면 참선밖에 없다고 생각해요. 세상 뜰 때까지 이렇게 살아야죠. 삼보사가 지은지 오십년 됐는데 여기저기 고쳐가면서, 내 몸도 마음도 같이 고쳐가면서 살아야죠.” 삼보사는 1971년 여름 미국에 온 덕산 이한상 거사의 통큰 보시로 지금의 도량터를 마련하고 1972년 공사를 거쳐 1973년 1월 개원했다.
삼보사에서의 두차례 3년결사, 즉 6년이 넘도록 스님은 병원에 갈 때나 식료품 구입차 마트에 갈 때, 그리고 손님과 함께 요세미티나 샌프란시스코행 등 손꼽을 정도 말고는 산문을 벗어난 적이 없다. 그렇다고 늘 혼자는 아니다. 두세명 내지 너댓명 단위로 찾아와 몇일 몇주 묵으면서 참선을 하는 동호인들이 심심찮게 삼보사를 찾는다. “(그런 분들이) 오면 몸과 마음가짐에 대해 알려주고 호흡 따라서 몸 맘 숨을 일치시키는 훈련(명상)을 같이 한다”면서도 스님은 신도들과 북가주 불자들에게 하고픈 말을 묻는 질문에는 “내 공부가 수승하지 못해서 뭐라고 드릴 말씀은 없어요. 각자 알아서들 하시는 것 같던데요”라고 사렸다.
“다만 나는 다음 결사 때 공부의 마침표를 찍고 싶은데 글쎄요, 그렇게 잘 될런지…” 아주 드문 소통 중에도 꽤나 자주 ‘좌탈입망’ ‘마감’ 같은 단어를 입에 올린 것이 생각나 ‘공부의 마침표’가 뭘까 사뭇 궁금했으나 그래봤자 허허로운 웃음 말고 들을 게 없겠다 싶어 더 묻고픈 마음에 서둘러 마침표를 찍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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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태수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