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부터 시작되는 밑도 끝도 없는 집안일로 온종일 바둥대다 보면 하루 일과가 끝난다. 이렇게 반복되는 단순노동이 할 때는 몰라도 마치고 나면 나도 모르게 파김치가 되어 버리고 만다.
체력의 한계를 느끼기 시작하는 나이가 된 것이다. 하나 둘씩 일감을 줄이고 생활반경도 줄이고 단순하게 살기로 작정하며 여유로움을 찾다 보니 일에 파묻혀 사는 자식 같은 젊은이들에게는 행여 우리 모습이 한가로운 노인으로 비춰질까 쓸데없는 노파심도 생긴다.
언제부터인가 젊은 사람들로부터 월요병이란 신조어가 생겨난 것은 우연이 아닌가 보다. 젊은 날에는 매일매일 주어진 빡빡한 일정을 눈코 뜰 새 없이 소화시키다 보면, 기다려지는 주말이 그들에게는 더없이 필요한 휴식의 시간이 된다. 그래서일까 매주 금요일 오후만 되면 “하나님, 감사합니다, 주말이 다가왔어요. 이제 저에겐 동전 한 푼 밖에 없어요”라고 호주머니를 털면서, 주말에 받을 봉급을 학수고대하며 금요일 오후를 기다린다고 한다.
주말이 되면 늘어지게 잘 수도 있고, 취미생활도 즐기고, 연인과 같이 해변가를 찾거나, 가족과 어울려 나들이를 나가거나, 때로는 남자라면 한 잔 술로 회포도 풀 수 있는 핫한 시간을 즐길 수 있기에 마음은 기대로 부풀기 마련이다.
그러나 짧은 휴일도 지나고 월요일이 돌아오면 일터로 향하는 발걸음은 몸을 짓누르는 듯 무거워지고, 마음 한 구석으로 몰래 스며드는 것이 월요병이었나 보다. 그런가 하면 이렇게 부산스럽게 살던 ‘젊은 시절의 한 순간’이 지나고 나면 긴긴 장수의 노년이 찾아온다. 벌써 지구촌의 노인 인구가 점점 불어나는 추세로 백세 시대가 눈앞에 와 있다. 요 몇 년 사이 팬데믹으로 더욱 무미건조한 시간을 보내야 하는 노인들에게는 젊은 한때 가슴 두근거렸던 주말의 추억도 퇴색되어가고 멀잖아 망각의 시간 속으로 잊혀져 갈 것이다.
오래 전에 읽은 영국의 수필가 찰스 램의 글이 어렴풋이 생각난다. 그는 젊음을 8월의 태양이 내려 쪼이는 해변에, 그리고 노년을 눈 내리는 12월의 들녘에 비유했다. 작렬하는 해변에서 젊음을 구가하는 청춘들이 눈 내리는 12월의 풍경은 아예 상상조차 하기 싫어하겠지만, 그러나 노인들은 한 겨울 창밖에 수북이 쌓이는 눈을 바라보며 한때 뜨거운 해변가에서 그들이 만끽했던 젊음의 열기를 사라져가는 망각의 시간 속에서나마 애써 붙잡아 두려한다는 것이다.
마치 구두쇠가 동전 한 닢(misers’ farthing)이라도 못 버리지 못하듯이. 체력과 인지능력이 노년을 판가름하는 기준이 된다면, 아직은 일어 설수 있는 힘과 가벼운 건망증 정도의 기억력만 잘 유지 한다면 노화의 속도를 늦출 수 있다고 한다.
나이 들어 굳어지는 마음에 주눅 들지 말고 지난 날 누렸던 가슴 뛰는 사연들을 회상하며 글로 남겨 본다거나, 야외로 나가서 넓게 펼쳐진 목장의 예쁜 풍경을 사진 속에 담아 보던지, 아니면 화초 앞에 앉아 사방에 향기를 풍기는 잎 푸른 꽃들과 대화하듯 그림을 그려 보는 등, 아직도 우리 곁에 남아 있을 노년의 긴 시간은 차고 넘치지 않는가? “피할 수 없으면 즐겨라”는 명언을 되새기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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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영순 우드스톡, M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