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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널린 게 감자인데…‘감튀 대란’은 왜 발생했을까

2022-02-09 (수) 이용재 음식 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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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용재의 식사 - 프렌치프라이의 역사

2021년 8월, 다소 충격적인 사건이 벌어졌다. 세계 최대 프랜차이즈 맥도널드에서 감자튀김, 즉 프렌치프라이를 먹을 수 없게 된 것이다. 국내 문제 아니냐고? 전혀 아니었다. 일본에서도 지난해 12월 비슷한 사태가 벌어졌다. 물량 공급에 차질이 생겨 24~30일까지 감자 튀김을 미디엄과 스몰 사이즈만 제공한 것이다.

코로나 시국이라 세계 물류, 특히 해운이 어려움을 겪고 있는 건 사실이다. 하지만 가장 흔한 식재료인 감자의 물량이 부족하다니 더더욱 충격적으로 다가올 수 있다. 기원전 8,000~5,000년부터 페루에서 잉카 원주민에 의해 경작된 감자는 1536년, 스페인 정복자(콘키스타도르)에 의해 발견돼 유럽으로 건너왔다. 1589년에는 월터 롤리경이 아일랜드에 감자를 들여와 주식으로 자리 잡았다. 잘 자라고 오래 보관 가능하고 영양소도 풍부하며 싸다. 그래서 대표적인 구황(救荒), 즉 흉년 따위로 기근이 심할 때 빈민들을 굶주림에서 벗어나도록 돕는 작물이 바로 감자 아닌가.

이런 감자가 부족해서 튀김을 못 낸다니 어딘가 앞뒤가 맞지 않는다. 널린 게 감자인데 그냥 시장에서 아무 거나 사다가 튀기면 안 되는 걸까? 그럼 오죽 좋겠느냐만 절대 안 된다. 사실 기본적인 감자의 세계도 그렇게 간단하지는 않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감자가 안데스나 칠레 중남부가 원산지인데 선발 육종을 통해 식용으로 분류되는 건 대략 1,000종이다.


■튀겨서 맛있는 감자는 따로 있다

그 많고 많은 감자의 면면을 소비자가 굳이 알아야 할 필요는 없지만, 적어도 1,000종이 크게 두 무리로 나뉠 수 있다는 점 정도는 기억하는 게 좋다. 분질(starchy)과 점질(waxy) 감자이고 기준은 전분의 함유량이다. 전분이 많아서 썰면 연하고 가루(분)가 묻어날 정도라 분질, 전분이 적어 표면이 매끌거리고 밀랍(wax) 같다고 해서 점질이다.

이들 가운데 맥도널드가 프라이에 쓰는 감자의 품종은 러셋 버뱅크, 아이보리 러셋 등 러셋(Russet)의 일족이 주를 이룬다. 러셋은 길어 모양새가 좋고 전분 함유량과 수분이 적어 튀기면 잘 부풀어 오른다. 비단 맥도널드가 아니더라도 감자튀김을 먹었을 때 속이 폭신하면서도 비어 있다면 적합한 품종의 감자로 잘 튀겨 냈다는 방증이다. 맥도널드는 매년 170만 톤의 감자를 프렌치프라이로 가공한다.

말하자면 널린 게 감자이더라도 튀김이라는 조리법, 또한 세계적인 프랜차이즈의 표준화 기준에 맞춰야 하므로 아무것이나 사다가 튀길 수 없다. 그래서 각 매장에는 생감자가 아닌 가공된 프라이가 납품되고, 어디라도 감자튀김이 맛있는 음식점이라면 바로 이런 제품을 튀겨서 냈을 가능성이 99%다. (뒤집어 말하면 집에서도 냉동 제품을 조리법만 잘 맞춰 튀기면 맛있는 감자튀김을 먹을 수 있다.)

■프렌치프라이, 기원을 둘러싼 논쟁

맥도널드가 아니더라도 프렌치프라이는 이제 원 재료인 감자를 떠나 독립적인 음식이 됐다. 따라서 그에 걸맞게 역사 또한 살펴볼 만한 가치가 있다. 무엇보다 프렌치프라이의 역사에서 가장 충격적일 수 있는 특이점은 어쩌면 이 튀긴 감자가 ‘프렌치’, 즉 프랑스 음식이 전혀 아닐 수도 있다는 사실이다.

그렇다, 전 세계에 프렌치프라이라 알려져 있는 감자튀김의 기원을 놓고 프랑스와 이웃 나라 벨기에가 영원히 끝나지 않을 논쟁을 벌이고 있다. 벨기에는 길거리에 널린 튀김 가게만큼이나 감자튀김은 자신들의 음식이라 강변한다. 자기네들이 감자튀김을 하나의 완성된 음식으로 자리 잡게 했지만 오해 탓에 프렌치프라이로 세계에 알려졌다고 주장한다. 프랑스가 서양 요리 종주국이며, 또한 같은 프랑스어를 쓰기에 착각했다는 주장이다.


시중에 유통되는 벨기에판 감자튀김의 탄생 비화를 종합하면 다음과 같다. 일단 튀겨 먹는 조리법 자체는 정복자들이 감자를 신세계에서 가지고 돌아온 스페인에서 비롯되었다고 한다. 튀김 박물관(벨기에 브뤼헤 소재)의 큐레이터이자 교수 폴 일레젬스에 의하면 예수의 성녀 테레사 수녀(1515~1582)가 최초로 감자를 지금의 프렌치프라이처럼 튀겨 먹었다. 그런 감자튀김이 퍼져 1680년대 이전부터 옛 스페인의 식민지였던 플랑드르(현 벨기에와 인접지역)에서 보편화된 것이다.

그런 가운데 벨기에 뫼즈강에 인접한 나무르나 앙덴 같은 마을에서 특히 생존 수단으로 프렌치프라이가 자리를 잡았다고 한다. 원래 이들 마을에서는 물고기를 잡아 튀겨 먹음으로써 끼니를 해결했는데, 겨울에 강이 얼어 낚시가 불가능하자 썬 감자를 물고기처럼 튀겨 먹어 난관을 극복했다는 것이다. 그렇게 감자튀김이 자리를 잡은 이야기에 미국이 가세한다. 1차 세계대전 당시 유럽에 파병된 미군이 감자튀김을 먹었는데, 벨기에 군인들이 프랑스어를 쓰자 착각하고 ‘프렌치프라이’라 불러 오늘날에 이르게 되었다는 것이다.

굉장히 그럴싸하지만 미국의 지분만큼은 어딘가 앞뒤가 맞지 않는다. 1차 세계대전 이전부터 프렌치프라이라는 영단어가 존재했으며, 1차 세계대전 종전인 1917년 이후 단어의 인기가 더 오르지 않았기 때문이다. 게다가 정확하게 막대 모양의 튀긴 감자인지, 아니면 납작한 칩 형태인지는 밝혀지지 않았지만 이미 1899년부터 프렌치프라이라는 단어가 미국에서 쓰였다고 한다.

다만 오늘날 맥도널드를 통해 프렌치프라이의 실세로 맹활약하는 미국의 감자튀김은 실제로 프랑스에서 도입됐는데, 미국의 3대 대통령이 된 토머스 제퍼슨이 바로 주인공이다. 그는 프랑스 대사 재임시절(1784~1789) 노예인 제임스 헤밍을 현지에서 셰프로 훈련시켜 150가지 음식의 레시피를 모았는데, 그 가운데 바닐라 아이스크림, 맥앤치즈, 그리고 감자튀김이 있었다.

‘작게 잘라 튀긴 감자’, 또는 ‘프랑스식으로 조리한 감자’ 등으로 불린 이 레시피는 ‘버지니아 주부(1824)’의 저자이자 제퍼슨의 친척인 메리 랜돌프에게 전수가 되었지만 주목을 받지는 못했다. 종주국이 프랑스든 벨기에든, 프렌치프라이는 1870년대까지 대중에게 알려지지 않았고 1900년대나 돼서야 본격적인 인기를 끌기 시작했다.

■맥도널드, 100% 식물성 기름 쓴다고 했다가$

맥도널드가 프렌치프라이의 실세로 활약하고 있지만 난관을 겪지 않은 것은 아니다. 오랫동안 맥도널드는 감자를 튀기는데 면실유와 우지를 섞은 기름을 써 왔다. 우지를 쓰면 확실히 맛은 있지만 포화지방이 넘쳐나는 탓에 맥도널드는 압박에 시달리게 된다. 그리하여 1990년, 드디어 맥도널드는 우지를 쓰지 않고 100% 식물성 식용유로만 감자를 튀기겠노라고 선언한다.

그러나 상황은 여기에서 간단히 종료되지 않는다. 비록 우지 자체는 쓰지 않지만 맛은 유지하고자 쇠고기맛 성분을 ‘자연 조미료’라는 명칭으로 첨가한 것이다.

결국 맥도널드는 쇠고기맛 탓에 2001년 또 고소를 당했다. 우지를 쓰지 않기 때문에 채식일 거라 믿고 먹어 왔던 소비자들을 기만한 셈이 되어 버렸기 때문이다. 가수분해 우유를 쓰는 탓에 프렌치프라이는 채식일 수가 없었으니, 맥도널드는 2002년 합의금을 지불해야만 했다. 오늘날 맥도널드는 홈페이지를 통해 자사의 프렌치프라이가 가공 시 쇠고기맛 성분을 쓴 기름에 튀겨진다고 분명히 밝히고 있다.

■더 맛있게! 표준 감자튀김법

마지막 논쟁 거리로 튀김법이 있다. 한 번만 튀길 것인가, 두 번 튀길 것인가? 많은 셰프와 요리 전문가들이 실험과 시행착오를 거친 끝에 요즘은 조엘 로뷔숑의 조리법이 적절한 타협점으로 인정을 받고 있다. 낮은 온도와 높은 온도로 두 번 나눠서 튀기는 전통 방식을 하나로 합친 것이다. 큰 냄비에 단면의 각 변 길이가 0.5㎝로 길게 썬 감자와 기름 1.5ℓ를 함께 담아 센불에 올린다. 5분쯤 뒤 기름이 끓기 시작하면 뒤적이지 않고 15분 튀긴다. 마지막으로 뒤적이며 노릇하고 바삭해질 때까지 15분 더 튀긴다. 건져 종이 행주에 올려 기름기를 걷어내는 동시에 소금을 넉넉히 뿌려 간하고 바로 먹는다.

<이용재 음식 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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