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나는 한국일보 기고(2월 2일자)에서 올리브오일의 '버진(Virgin)'이라는 명칭에 숨겨진 성적 대상화를 지적했다. 식재료 본연의 가치에 집중한 '퍼스트 내추럴, 낫 버진(First Natural, Not Virgin)' 캠페인도 제안했다. 이는 이름 하나를 바꾸자는 뜻이 아니라, 매일 접하는 식재료를 대하는 마음가짐을 바로잡으려는 시도였다. 그런데 서구 식문화의 언어적 한계를 지적하고 돌아보니, 우리 내부의 풍경도 다르지 않았다.
K푸드가 세계 미식 시장의 주류로 떠올랐지만, 정작 우리 식문화의 정수인 된장과 김치는 어떤 언어로 대접받고 있나. 안타깝게도 우리 스스로 이 귀한 발효 음식을 비하의 도구로 사용하는 현상이 여전하다. '된장'이나 '김치'라는 단어가 특정 대상을 조롱하는 접두사로 쓰이거나, 누군가를 공격하는 혐오의 프레임으로 소비되고 있다. 이는 특정 계층에 대한 비난을 넘어, 수천 년간 지켜온 소중한 식문화 자산에 우리 스스로 부정적인 낙인을 찍는 행위다.
식문화는 한번 잘못된 인식이 뿌리내리면 바로잡기가 대단히 어렵다. 전 세계가 한국의 장(醬) 문화를 하나의 고귀한 예술로 배우기 시작한 시점에, 종주국에서 이 단어들이 부정적인 맥락으로 소비되는 것은 큰 모순이다. 우리가 우리 음식을 귀하게 부르지 않는데, 과연 세계인이 그 가치를 온전히 존중할 수 있겠는가.
이러한 현상은 해외에서도 발견된다. 콩(Soy)이나 특정 라테 음료를 소비하는 태도를 남성성의 결여나 주관 없는 소비문화와 연결해 비아냥거리는 담론이 대표적이다.
하지만 식재료는 그 자체로 생명력을 가진 존재일 뿐이다. 이를 인간의 사회적 편견을 드러내는 도구로 쓰는 순간, 식재료의 본질적인 가치는 심각하게 훼손되고 만다.
관습적인 '버진'이라는 명칭을 비판했듯이, 우리 식재료에 덧씌워진 언어의 굴레 역시 엄중한 잣대로 걷어내야 한다. 이제는 '언어의 미식(Gourmet of Language)'을 고민할 때다. 좋은 식재료를 골라 정성껏 요리하듯, 그 이름에도 걸맞은 예의를 담아야 한다. 음식은 언제나 그 자체로 숭고하다. 다만 그를 대하는 우리의 언어가 그 품격을 결정할 뿐이다.
진정한 미식가라면 접시 위의 맛을 논하기 전에 그 맛을 지탱하는 언어의 무게부터 고민해야 한다. K푸드의 세계화는 수출액의 증가가 아니라, 우리 음식을 부르는 언어가 얼마나 우아해지는가에서 비로소 완성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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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세호 이딸리네아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