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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망찬 2022년…“되세요!”

2021-12-28 (화) 윤여춘 전 시애틀 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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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체부가 배달해주는 크리스마스카드와 연하장이 언제부턴지 가뭄에 콩 나듯 드물다. 은퇴한지 10년이 훌쩍 넘었고, 카드를 손가락 하나 까딱해서 카톡으로 보내는 것이 새로운 트렌드가 됐으므로 당연하다. 요즘엔 크리스마스카드라는 게 아예 없다. 은퇴하기 훨씬 전부터 ‘즐거운 명절(Happy Holidays)’ 카드나 ‘절기 인사(Season‘s Greetings)’카드로 둔갑했다.

종이카드든 카톡카드든 보낸 사람들이 인쇄로 된 문구에 더해 육필로 쓴 덕담도 옛날과 사뭇 다르다. “즐거운 크리스마스 되세요” “건강한 연말연시 되세요” “계획한 일이 모두 이뤄지는 2022년 되세요”라는 식이다. 평소에도 “좋은 하루 되세요”라는 카톡 인사가 줄을 잇고, 일요일에는 “주님과 동행하는 하루 되세요”라는 등 교인들의 인사가 주류를 이룬다.

그게 뭐가 어떻다는 거냐고 따지는 독자들이 있겠지만 “좋은 하루 되세요” 식의 덕담은 어법에 맞지 않는다. 어떻게 사람에게 시간개념인 하루가 되라고 명령한단 말인가? 물론 그 말은 상대방이 하루를 즐겁게 보내기를 바란다는 뜻임을 누구나 안다. 하지만 ‘되다’라는 동사를 꼭 쓰고 싶으면 (오늘이 선생님에게) “좋은 하루가 되기를”(바랍니다)로 써야 맞다.


“2022년 새해에도 수고하세요”라고 쓴 카드도 봤다. 덕담과 거리가 먼 인사말이다. 수고(受苦)는 ‘고통 받다’라는 뜻으로 애쓰고 힘들게 일하는 사람을 위로하거나 격려할 때 쓴다. 대개 “수고하셨습니다”라는 과거형으로 쓰인다. 아랫사람이 윗사람에게는 물론 윗사람이 아랫사람에게 쓰는 것도 부적절하다. 남에게 “고생하라”는 인사말은 덕담 아닌 저주이다.

연말연시 덕담은 아니지만 “들어가세요”라는 인사말도 뚱딴지같다. 통화를 끝내면서 하는 작별 인사이다. 상대방이 어디서 전화 받는지도 모르면서 그에게 무작정 들어가라니 어디로 들어가란 말인가? 도대체 상대방에게 들어가라 말라할 권리가 있나? 물론 이 말은 통화를 마쳤으니 이제 전화기를 끄라는 말이다. “안녕히 계세요”라는 기존 인사말이 훨씬 좋다.

내친 김에 잔소리 좀 더하자. 요즘 신문기사에 실소케 하는 단어가 있다. ‘접수’다. 한인사회는 물론 본국에서도 기자들이 반대로 쓰기 일쑤다. “학생들이 입학원서를 00대학에 접수했다”거나 “시민단체가 모 국회의원의 고발장을 검찰에 접수했다”는 식이다. ‘접수시켰다’라는 억지 표현도 있다. 접수는 대학과 검찰이 한 것이고 학생들과 시민단체는 ‘제출’한 것이다.

‘기존’이라는 단어도 애매하게 쓰인다. 기존(旣存)은 ‘이미 존재한다’는 뜻이다. ‘기존 도로’는 현재 있는 도로다. 하지만 뉴스를 듣다보면 “타운 도로가 ‘기존에는’ 2차선이지만 4차선으로 확장된다”거나 “식당들이 ‘기존’과 달리 오후 9시에 문을 닫는다”는 식으로 보도한다. 이는 “2차선인 기존 타운 도로가…” “식당들이 기존 스케줄과 달리…”로 보도해야 맞는다.

또 있다. 요즘 업소들 광고에 넘쳐나는 ‘님’ ‘분’ 등 경칭접미사다. “모든 고객님 한분 한분…” ”환자분들께 최상의 진료 서비스를…” “선착순 손님분 100명에게…”라는 식이다. TV에서도 ‘시청자분,’ ‘팬분,’ ‘유족분’ 등이 남발된다. 표준어법에 맞지 않는다. 처음 보는 세일즈맨이 “아버님”이라 부르며 곰살궂게 대하는 것도 친근하지 않고 난처하게 느껴진다.

“좋은 하루 되세요”가 틀렸다는 말이 틀렸다고 반박하는 젊은이들이 많고, “이미 일반화된 덕담을 시시콜콜 따지느냐”고 핀잔하는 어른들도 있다. 하지만 뜻이 통한다고 틀린 어법을 방치하는 건 어차피 과속위반자는 있으니까 교통법규를 방치하자는 것과 매한가지다. 지금부터 하나하나 고쳐나가지 않으면 우리 후손들 세대엔 이런 엉터리 말이 표준어가 될 터이다.

나흘 지나면 해가 바뀐다. 묵은해에 코로나바이러스에 억눌려 하루도 편치 못했을 독자 여러분께 희망찬 2022년을 맞으시라고 덕담을 하려던 글이 푸념 글이 됐다. 하지만 새해에 덕담을 많이 듣기는 어차피 글렀다. 한국에선 대선 날짜가 다가오면서 두 후보 캠프 간에 저주와 욕설이 난무한다. 미국에선 재판에 몰린 트럼프가 다시 가짜뉴스를 쏟아내기 시작했다.

<윤여춘 전 시애틀 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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