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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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주의 끝과 시간의 시작

2021-12-28 (화) 민경훈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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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살고 있는 우주가 언제나 이런 모습이었는지 아니면 과거 어느 시점에 탄생한 것인지를 놓고 20세기초까지만도 의견이 갈렸다. 그러나 이제는 탄생론이 절대 다수 물리학자들의 지지를 받고 있다.

그렇게 된 결정적 계기를 만든 사람은 에드윈 허블이다. 원래 천문학자가 꿈이었던 그는 법대에 가달라는 아버지의 간절한 소원을 뿌리치지 못하고 법대에 갔다. 그러나 아버지가 죽자 그는 천문학 박사 학위를 딴 후 1919년 당시 가장 큰 천체 망원경이 있던 LA 뒷산 마운트 윌슨 천문대에 취직한다.

거기서 그는 별의 적색편이(red shift) 현상을 발견한다. 이는 별빛의 파장이 늘어났다는 것을 의미하며(붉은 색은 가시광선 중 파장이 가장 길다) 도플러 효과에 따라 관찰자와 피관찰체인 별의 거리가 멀어지고 있음을 말해준다. 도플러 효과란 관찰자와 피관찰체와의 거리가 멀어지면 피관찰체에서 발생하는 파동의 간격이 길어지는 현상을 말한다.


거의 모든 별들이 지구에서 멀어지고 있다는 것은 우주 공간이 팽창하고 있다는 것 말고는 설명할 수 없다. 풍선에 점을 여러 개 찍고 바람을 불면 점 사이의 거리가 멀어지는 것과 같은 이치다. 우주가 팽창하고 있다면 과거에는 지금보다 작았을 것이고 시간을 거꾸로 되돌리면 어느 시점에서는 한 점이었을 수밖에 없다.

반신반의 하던 물리학자들도 1964년 ‘빅뱅’의 흔적인 ‘우주 마이크로웨이브 배경 복사’(cosmic microwave background radiation)가 확인되면서 ‘빅뱅 이론’을 수용하게 됐다. TV를 돌리다 보면 채널과 채널 사이에 흑백 화면과 함께 잡음이 들리는데 이것이 바로 CMB다. 1990년 천체 물리학자들은 당시로서는 최대 규모의 관측 위성을 띄우면서 ‘허블 망원경’이라는 이름을 붙였는데 우주의 기원을 밝혀내는데 그만큼 큰 기여를 한 사람이 없다는 점을 감안하면 적절한 선택이었다 본다.

지난 25일 크리스마스를 맞아 허블의 뒤를 이은 차세대 주자 ‘제임스 웹 우주 망원경’(JWST)이 남미 프랑스령 기아나에서 성공적으로 발사됐다. 이 망원경은 앞으로 6개월간 우주를 날아 지구와 태양의 중력이 균형을 이루는 라그랑주 2번 포인트에 도착한 후 향후 10년간 우주의 끝을 관측하게 된다.

JWST의 특징은 적외선 망원경이란 점이다. 먼 곳에서 날아온 가시광선은 먼지 같은 성간 물질에 가려 잘 보이지 않지만 적외선은 이를 뚫고 이동하기 때문에 문제가 없다. 이 망원경은 미미한 양의 적외선도 관측할 수 있도록 5개의 차단막을 쳐 태양광을 막아 절대 온도에 가까운 상태에서 운행한다. NASA의 총책임자로 아폴로 계획 등을 성공적으로 추진한 제임스 웹의 이름을 딴 JWST의 빛 채집 거울의 직경은 허블의 3배며 민감도는 7배에 달한다.

우주에서 가장 빠른 것은 빛이지만 빛의 속도는 일정하다. 이 때문에 우주 저 멀리에서 날아오는 빛은 오늘이 아니라 과거의 빛이다. 공간 여행이 시간 여행인 셈이며 우주의 끝을 보면 시간이 시작된 순간을 관측하는 것이다. 전문가들은 JWST가 137억년전 최초의 별이 탄생하는 장면을 잡아낼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지난 수십년간 과학자들의 노력으로 인류는 우주가 지금부터 138억년전에 생겼으며 처음 수분간 어떤 일이 벌어졌는지를 알아내는데 성공했다. ‘플랑크 시대’로 불리는 우주 탄생 후 10의 43승분의 1초 동안 우주의 크기는 1.6x10의 35승분의 1m, 온도는섭씨 10의 32승 도였을 것으로 추정된다. 10의 37승분의 1초 후에는 ‘인플레이션’이라 불리는 대팽창이 일어나며 우주의 크기는 10의 78승배로 커진다. 100만분의 1초 후에는 쿼크와 글루온의 결합으로 양성자와 중성자가 탄생하고 37만9,000년이 지난 후에는 수소 원자가 만들어진다. 이들 수소가 중력에 의해 모이고 핵융합을 일으켜 빛을 뿜기 시작한다. 이것이 별의 탄생이다.

수천억개에 달하는 은하 하나의 변두리에 있는 작은 별 태양 주위를 도는 작은 행성에 살고 있는 인간이 별을 관측해 우주 탄생의 과정을 여기까지 밝혀냈다는 것이 믿어지지 않는다. 모든 과학적 법칙과 진리의 특징은 잠정적이라는 점이다. 지금까지 수집한 모든 증거와 논리에 부합할 때만 인정되고 부합하지 않을 때는 폐기된다. 그 점에서 오류 증명이 불가능한 종교적 진리와 대비되지만 그러기에 더욱 값지다. 새로운 증거를 수용하고 보강하면서 한 발자국씩 전진하는 것이 과학이기 때문이다.

JWST를 띄우는데 30년의 세월과 100억 달러의 예산, 그리고 미국과 유럽, 캐나다 등 여러 나라 과학자 수천명의 협조가 필요했다. 5,000년전 중심축을 동지의 일출에 맞춘 아일랜드의 뉴그레인지 봉분 제작자부터 라그랑주 포인트에 JWST를 띄운 과학자들에 이르기까지 천체와 우주에 관한 인간의 관심은 식지 않고 있다. 인류의 새로운 눈JWST가 우주 탄생의 비밀을 한가닥 더 밝혀주기를 기대한다.

<민경훈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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