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살며, 느끼며 - 미라클 작전의 숨은 손길들

2021-09-03 (금) 민병임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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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가니스탄 철수가 마무리되면서 미국은 20년 전쟁을 끝냈다. 탈레반의 정권 장악이후 서방국가의 대피 작전이 분초를 다투고 일어나는 현장에서 아프간 조력자 100%를 구출한 한국의 ‘미라클(miracle, 기적) 작전에 세계가 높은 평가를 내리고 있다.

25일 카불 국제공항을 출발한 공군 수송기는 파키스탄 이슬라마바드 국제공항에 내렸다가 26일 오후 한국으로 향해 약 11시간 만에 인천국제공항에 도착했다. 아프가니스탄 현지인과 그 가족 378명(73가구)이 타고 왔고 13명(3가구)은 이후 입국했다.

이들 391명은 지난 수년간 주 아프간 한국대사관, 한국국제협력단(KOICA), 바그람 한국병원, 바그람 한국직업훈련원, 차리카 한국지방재건팀 등에서 의사와 간호사, 정보기술 전문가, 통역, 강사 등으로 일한 전문인력과 그 가족이다.


탈레반은 아프간을 장악한 뒤 바그람 한국병원과 바그람 한국직업훈련원을 폭파해 버리고 이곳에서 일했던 아프간인들을 추격하기 시작했고 ‘제발 구해달라“는 외침에 대한민국이 바로 행동에 나선 것이다.

당시 카불 공항에는 해외로 대피하려는 수천 명의 아프간 현지인이 몰려들어 대혼란을 빚고 있었다. 정부는 외교차관회의에서 웬디 셔면 미 국무부 부장관의 아이디어로 이들을 버스 6대에 나눠 태우고 공항 주 출입구를 통해 무사히 공항에 진입할 수 있었다.

3대의 정부 수송기는 아프간에 인접한 파키스탄 이슬라마바드 공항에서 대기하고 있다가 버스가 카불 공항에 도착하는 시간에 맞추어 그곳으로 날아가 391명을 태웠다.
자국민과 함께 현지 조력자까지 구출한 나라는 미국, 영국 등 소수에 불과하다.

일본은 지난 25일 자국민과 현지인을 탈출시키고자 자위대 수송기를 파견했지만 작전 첫날 단 한 명도 대피시키지 못했다. 26일 자위대 수송기 3대, 정부 전용기 1대를 다시 파견하고 버스 10대를 준비하여 자국민과 현지인 500명을 대피시키고자 했지만 이날 오전 IS-K의 자살 테러로 작전은 실패했다.

한국에 아프간 조력자들이 막 도착한 26일 폭탄 테러가 일어났던 출입구는 한국 외교관이 ‘코리아’라고 한국어로 적힌 종이를 들고 피난민 수천 명이 몰린 이곳에서 아프간 협력자를 찾아다닌 곳이라 한다.

이 미라클 작전의 성공에는 숨겨진 수많은 손길들이 있었다. 미국과 한국의 외교관과 군인, 해외 한인들, 모두 한마음이 되었다. 외교관들은 현지인 조력자와 계속 전화하며 소통, 한명도 빠짐없이 탈출시키고자 설득하고 보살폈다. 이들은 일본 대사관 직원들처럼 먼저 빠져나가지 않았고 카불에 남았다.

또한 수송기 안에는 영유아가 100여명이라는 정보에 우유와 기저귀, 매트리스, 간식까지 넉넉히 준비한 손길이 있었다. 해외한인들의 공도 크다. 파키스탄 동포들은 코로나19로 문 닫았던 숙박시설을 다시 열어 군인들에게 숙식을 제공했다. 파키스탄 무관 허진녕 대령은 모친 임종 소식에도 이곳에 남아 긴박했던 작전을 막후 조율했다.

제 자리에서 자기의 할 바를 충실히 다하면 이렇게 놀라운 기적을 만들어낸다. 한국은 자신을 도와준 나라에 도의적 책임을 다하는 나라로 국격을 높혔다. 그런데 이 자랑스러운 뉴스가 이들의 초기정착 지원 관련 브리핑 중 발생한 ‘황제의전’으로 보도량이 급감해버렸다. 브리핑 하는 차관에게 무릎 끊고 우산을 씌워 준 사진 한 장이 실은 사진기자들이 주문한 모습이었다는 것은 묻힌 채로 말이다.

아무리 왜곡과 편견, 잘못된 보도가 있었건 없었건 미라클 작전을 뒤에서 도와준 수많은 손길들, 한 생명이라도 더 살리고자 손이 아프고 목이 쉬도록 전화를 하고 아프간 협력자들을 찾아다니며 이리 뛰고 저리 뛴 이들의 노력은 빛바래지 않는다. 총 든 탈레반 앞에서 자신의 목숨도 돌보지 않고 영화보다 더 영화같은 미라클 작전을 완수한 이들에게 박수를 보낸다.

<민병임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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