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겨운 이웃
2021-09-02 (목) 07:14:21
윤영순 우드스톡, MD
오늘 아침도 그랬다. 신문을 가지러 현관문을 여는 순간, 발 아래 신문이 놓여 있었다. 차 안에서 툭 던지고 가는 배달원이 그럴 리는 없을 텐데, 이따금 친절을 베푸는 사람이 누구인지 짐작이 가지 않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마주치지 않으니 고마움을 표현할 기회가 없다.
이 곳은 이사하기 전에 잠시 거주하고 있는 넓은 단지의 작은 아파트이다. 야트막한 언덕 위 수 만평은 되어 보이는 대지 위에 많은 3층짜리 아파트가 옹기종기 단지마다 조화롭게 지어져 숲이 많고 경관이 빼어나다. 다양한 젊은 세대가 미국의 꿈(American dream)을 쫓아 정착지로 첫발을 내딛는 곳으로도 나름 유명하다. 그들 중에는 이곳에서 아이들을 낳고 키우며 미래를 준비하는 보금자리로 일자리와 교통의 편리함에서인지, 새소리처럼 조잘대며 노는 아이들 소리와 무거운 책가방을 둘러맨 사춘기 청소년들이 스쿨버스에서 오르내리는 모습을 종종 보게 된다. 무엇보다 주말이면 같은 동포끼리 삼삼오오 정담을 나누며 숯불 그릴(charcoal grill)위에 고기를 구워 먹는 장면은 한국의 어느 시골 마을 인심을 연상케 한다.
얼마 전 산책을 마치고 돌아오다 집 앞마당에서 이삿짐을 나르는 건장한 한국 장년 두 사람을 만났다. “어머, 반가워라. 한국 분들이시네. 어디서 오시는 거예요?” “뉴욕의 플러싱에서 오는 길입니다.” ‘플러싱은 내가 한때 살던 곳인데 이런 우연이 찾아오다니’라고 속으로 생각하면서, “우리 동인 것 같은데, 몇 층이세요?” 묻는데 알고 보니 바로 우리 옆집이다. 한국인이 살고 있는지 조차 알지 못하는 아파트 구조상 드물게 한국 사람들을 마주친다 해도 눈인사 정도로 그칠 뿐, 그 뒤로는 살고 있는지 조차 모르는 채 그들은 소리소문 없이 사라지곤 했다
희끗희끗한 머리의 한국 노인을 보고 그들 역시 놀라면서도 반가운 모양이다. 이곳에서 오래 사셨느냐, 이 동네가 어떠냐, 또 한인센터가 어디 있느냐는 등을 숨 가쁘게 묻는다. 처음 찾아오는 지역이니 궁금증이 오죽하랴 싶어 아는 대로 답해주는 나도 은근히 신이 난다. 그 동안 한번쯤은 한국인과 이웃하며 살아보는 것이 내 바람이기도 하였으니까.
이삿짐을 나르느라 바쁜 그들에게 아직은 통성명하면서 더 많은 대화를 나눌 수는 없었지만, 궁금증을 참지 못하는 한국 스타일이 몸에 밴 나로선 아들뻘 되는 그들에게 묻고 싶고 듣고 싶은 일들이 참 많다. 지금 한결 위세가 꺾여가던 코로나19가 다시금 되살아나는 듯 하지만 이 또한 사라지고 나면 그들을 초대해 가족과 떨어져 살며 고생하고 있는 장년의 고충을 달래주고 싶은 생각이 든다.
매일매일이 화살 같이 지나가는 사이사이로 이따금 좋은 소식이 찾아와 주는 조용한 이웃들, 이대로의 여유가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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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영순 우드스톡, M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