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삶과 생각 - 시화: 소동파의 적벽부

2021-09-01 (수) 신동인/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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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난한 시인의 집 벽에 그림 한 폭이 걸려있다. 오래전 지인으로부터 귀한 것이라 선물을 받은 것인데, 새 주인을 잘못 만나 진가를 모른 채 오랜 세월 무심하게 벽 한 면에서 쭈그리고 있다.

매일 아침 네 군데 정자까지 마련된 긴 해변 산책로를 걸으며, 가끔 정자에서 쉬면서 좋아하는 한시들을 되뇌어본다. 도연명의 귀거래사와 소동파의 적벽부는 제일 좋아하는 시라서 자주 등장한다. 두보와 이백의 시도 곁들이며.

어느 날, 미국 사람들은 이 시들을 어떻게 대하는지 궁금하여, 제목과 작가를 입력하여 조사를 해보았다. 몇 편의 좋아하는 시들을 찾아 내려 가다가, 소동파의 적벽부에 와서, 프린스턴 대학의 한 논문을 눌렀다.


그런데 이게 왠일인가. 집 벽에 걸려있는 그 그림에 담겨진 진귀한 내용의 설명이었다. 깨알만한 활자로 이십여 페이지, 이 그림을 자세히도 설명하고 있었다. 천년 전, 소동파의 적벽부를 그림으로 그린 것이다. 보이는 사물이나 정경을 그린 회화와는 구별되는 그 시대에는 훨씬 높은 품격으로 인정받던 시화란다.

집에 있는 것은 대만 국립 왕립 박물관에 있는 진품을 전문 화가가 그대로 그린 것으로, 사진으로 찍은 것처럼 정교하고, 재료에서 부터 색감까지 완벽하게 재생하여 놓은 것이다.

51cm x 137 cm의 그림에 액자까지 실물처럼 똑같이 만들어 가지고 온 것이란다.
십 수년을 누구의 무엇인지도 모르고, 그냥 멋있는 산수화구나 하며 방치해둔 것이 내가 제일 좋아하는 적벽부의 시화라니. 부끄럽고 미안하고 안쓰러웠다 .
그러면서, 기이한 것은 이 시화가 어째서 내 집 벽에 걸려있는지, 하고 많은 부잣집을 놓아두고.

곰곰이 생각하다, 이 그림이 내 집 벽에 걸려야 하는 이유를 알 것 같았다. 나는 사진을 찍어 시를 입히는 사진시를 쓴다. 작은 들풀에서 부터 하늘을 나는 새까지 자연의 아름다움을 담는다. 몇 시간 아님 며칠을 찍은 사진을 들여다 보면서, 사진 속에 들어가, 저들이 들려주는 이야기를 받아 적는다.

가난하다 마다하지 않고, 격려하고 위로하여 주기 위하여, 내 집에 와 후진 벽에 쭈그리고 있는 시화가 고맙고 감사하다. 비록 지금은 알아주지 않고 관심 밖에 있는 사진시를 적벽부를 그리듯 찍고 쓰라는 부탁이라도 하는 듯. 언젠가 누군가의 가슴에 감동과 감명으로 그리고 힘과 격려로 쓰여질. 하늘이 맺어준 연분에 천년을 기다려 만난 인연이란다.

<신동인/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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