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발언대 - 차별

2021-09-01 (수) 한재홍/원로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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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일본에서 올림픽이 열렸고 지금은 패럴림픽이 열리고 있다. 피나는 연습과 경쟁을 뚫고 등수가 먹여진다. 한 때는 미국과 중국 간에 금메달을 가지고 서로 자기들이 일등을 했다고 말이 많았다.

미국은 메달수로 등수를 매겨야 한다고 했다. 그러나 중국은 금메달을 가지고 등수를 매겨야 한다고 했다. 그러나 결국은 졌다. 그것을 보면서 마음이 교차했다. 실로 금과 은 그리고 동은 간발의 차이다. 그것을 가지고 차별을 하고 상급도 달라진다고 한다.

그러나 나는 생각이 다르다. 세계에서 제일 잘하는 사람을 뽑는다. 그런데 메달의 색깔에 따라 너무 차이를 두고 대우가 달라짐을 보면서 그래도 스포츠 정신아래 치러지는 경기에서는 그런 차별을 많이 두지 않은 것이 바른 정신이라 생각한다.


특히 지금 치러지고 있는 패럴림픽은 장애인들이 겨누는 경기이다. 여기서 메달의 색깔을 가지고 지나친 차별이 없었으면 한다.

더욱이 우리 한국사회는 이것이 지나치다. 일등 아니면 2등은 얼굴도 내밀지 못하는 경우를 보면서 더더욱 그러하다. 차별을 누가 만드는가? 잘난 사람들이 만들고 가진 자들이 만든다.

그래서 경쟁은 좋지만 거기서 오는 후유증은 사회의 문제가 되고 사람이 자신을 잃고 사회를 거부하는 무서운 독소가 되는 것을 우리는 많이 보아왔다. 차별은 무서운 죄악이다.

차별의 세상보다는 격려와 희망을 보여주는 세상으로 바꾸어 갔으면 한다. 그래 운동정신으로 다져진 올림픽에서부터 차별화를 없애고 더욱이 진 자를 격려하는 문화가 형성되었으면 한다.

그래서 우리는 아프리카 한 동족에서 일어난 사건과 언어를 본받았으면 한다. “우분투” 라는 말은 당신이 행복해야 내가 행복하다는 의미이다. 독점적 시선이 문제가 아니라 끝까지 같이 하는 따스함과 격려가 더 아름답다는 것이다.

이는 자녀를 기르는데서 부터 사회 전반에 보여 져야 할 태도이다. 특별히 인간사회에서 지향해야 할 삶의 태도이기도 하다.
우리는 역사 속에서 그리고 우리 주위에서 많이 보아왔다. 학교에서 꼴등이 사회에서 일등을 하고 사회에 크게 이바지하는 인물들을 보면서 우리가 마땅히 가져야 자세를 배우기도 한다.

누구하나 심지어 부모마저도 관심밖에 있었던 다윗 왕을 보아도 우리는 차별이 얼마나 잘못된 개념인지 볼 수가 있다. 이제부터 우리 스스로가 차별을 만들지 말자. 기독교 사회에서부터 이런 자세가 바로잡아져야 한다.


오래전 일이다. 내가 뉴욕지역 교회협의 회장 때 일이다. 그때 할렐루야 대회에 어른 강사와 어린이 강사 그리고 중고등부 강사를 초빙하여 각기 다른 방에서 집회를 치렀다. 그리고 나면 수고했다고 강사비를 정해서 드린다.

그때 우리 임원들은 정했다. 강사 수고비를 어른이든 어리이든 중고등부든 수고비를 같이 했다. 우리 스스로가 강사를 차별하든가 아니면 어른이 아닌 다른 부서에 대한 마음자세를 바르게 세우기 위해서 마땅한 일이다.

세상은 경쟁의 사회이다. 마땅히 서열이 서게 된다. 그러나 그 서열을 너무 차이 나게 우리 스스로가 차별을 안 했으면 한다. 언제인가 우리가 만든 덫에 우리 스스로가 걸려 넘어지고 무서운 사회를 만들어 가게 된다. 먼저 우리 한국인들의 모범된 삶이나 사고가 세상을 이끌고 가는 모습을 보고 싶다.

<한재홍/원로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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