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인칼럼] 살며 감사하며
2021-07-01 (목)
임택규 목사 (산호세 동산교회 담임)
요 몇일간 예기치 않은 일들로 내 마음이 황망하며 불편했다. 부정적 생각이 들어오고 불평하고 비난하고자 하는 마음도 생겼다. 다행스럽게도 새벽기도를 통해 이를 진정시켰고 영혼과 심령이 다시금 평온한 상태로 돌아왔다. 이 세상에는 긍정적인 사람보다 부정적인 사람들이 훨씬 많다. 견디기 어렵고 힘든 사건, 사연을 두고서 긍정적인 사람들은 그 사연에 담긴 뜻을 찾아 희망적으로 반응하는 반면 부정적인 사람은 그 사건이 자신에게 절대 일어나서는 안될 일로 치부하며 절망적으로 반응한다. 부정적인 사람이 많은 이유는 우리들의 뇌에 긍정적인 회로보다 부정적 회로가 5배 가량 더 많기 때문이다. 이를 ‘두뇌의 편견’이라 부른다. 따라서 일반인들은 아주 자연스럽게 부정적인 면에 더 집중하게 된다. 될수 있는 작은 기회및 희망보다는 되지 않을 수 밖에 없는 현실에 치중하어 불평하고 절망하곤 한다.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의지와는 달리 다른 사람, 사소한 일, 거칠고 황량한 환경에 대해 비난하고 불평하고 자포자기한다. 헌데 이런 부정적인 면에 치우친 두뇌의 편견을 극복하게끔 해 주는 것이 있다. 그것이 감사이다. 우리가 감사할 때 우리 두뇌는 긍정적인 것을 더욱 생각하게 해 준다. 따라서 감사하면 처한 상황이나 입지에 상관없이 삶이 기쁘고 행복하고 생동력있게 된다.
감사는 이처럼 뇌에 영향을 끼치어 감사하면 평소보다 더 많은 삶의 에너지를 충당받는다. 감사는 삶의 열정과 행복, 평온함도 심어준다. 또 감사하면 더욱 사회성이 좋아진다. 감사는 개인적 문제들을 지닌 사람을 도우려하는 따스한 마음을 일으킨다. 즉 감사가 많을수록 섬김도 많아진다. 감사하면 수면에 도움이 된다. 우리 두뇌와 신체는 충분한 수면을 필요로 하는데 감사는 각종 우울증을 줄이고 불안감을 감소시켜 주어 수면을 향상시켜 준다. 또한 감사는 육신및 정신을 건강케 한다. 감사할 때 좋은 감정을 갖게 하는 도파민과 신경전달 물질인 세로토닌및 옥시토신이 증가하여 육신을 건강케 한다. 이 물질들은 "다시 그렇게 하라"라는 반응을 불러일으키어 감사를 반복케 해줌으로 정신건강에도 기여한다. 또 감사하면 물질주의에 빠지는 것을 방지할 수 있다. 몇몇 연구에 따르면 감사수준이 높은 사람들은 물질에 탐닉할 가능성이 그렇지 아니한 사람보다 훨씬 더 낮다. 그리고 감사하면 인격이 함양된다. 겸손해지고 사려깊어지며 긍휼의 마음이 생긴다. 무엇보다도 감사하면 믿음의 진보와 개선이 이루어진다. 감사는 주님의 뜻과 섭리와 은혜를 인정하여 이에 보답하는 행위이다. 해서 바울은 범사에 감사하라고 요청한다.
반면에 감사해야 하는데도 감사치 않는 것은 신을 믿건 그렇지 않건 간에 자신이외의 그 어떤 것에도 감사할 것이 없다는 말과 같다. 따라서 감사치 않는 자는 허무주의 수렁으로, 절망의 구렁텅이로, 자기 연민으로, 자신만의 고립된 세상 속으로 들어가며 우울과 마침내는 죽음으로 치달을 것이다.
성경은 여러 곳에서 감사를 명한다. 시100:3,4에, “ 그는 우리를 지으신 이요 우리는 그의 것이니 그의 백성이요 그의 기르시는 양이로다 감사함으로 그의 문에 들어가며 찬송함으로 그의 궁정에 들어가서 그에게 감사하며 그의 이름을 송축할지어다"했고 골3:16에서는 "그리스도의 말씀이 너희 속에 풍성히 거하여 모든 지혜로 피차 가르치며 권면하고 시와 찬송과 신령한 노래를 부르며 감사하는 마음으로 하나님을 찬양하고" 했다
이번 주일(7월4일)은 교회력으로 맥추감사주일이다. 맥추절은 유월절, 장막절과 함께 이스라엘의 3대 절기로 이날 백성들은 보리와 밀의 첫 수확물들을 주님께 바치며 진심으로 감사드렸다. 이 감사절기에 우리들은 지금 가지고 있는 것들, 누리고 있는 것들에 대해 감사해야 한다. 아니 모든 일에 감사해야 한다. 믿음의 눈으로 바라보면 지구에서의 생애동안 감사할 이유들과 조건들이 무궁무진함을 목도하고 느끼게 된다. 우리가 지금 감사하면 앞으로 감사하게 될 일을 더 많이 맞을 것이다. 감사는 인생과 삶, 영혼과 육체에 최고의 가치로서 우리들은 감사를 통해 천국같은 생을 살아가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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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택규 목사 (산호세 동산교회 담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