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깨우침 도달한 부처의 신비하고 오묘한 미소

2021-06-10 (목) 12:00:00
크게 작게

▶ 퓰리처상 수상자 강형원 기자의 한민족의 찬란한 문화유산

▶ (45) 미륵보살반가사유상

깨우침 도달한 부처의 신비하고 오묘한 미소

국보 제83호 금동미륵보살반가사유상의 온유하고 편안한 미소는, 당시 불안하고 어려운 시기의 신라인들에게는 마치 메시아와 같은 미래의 희망인 미래부처 미륵을 표현한 세계 최고의 걸작 불교예술품이다.
[Photo ⓒ 2020 Hyungwon Kang, 국립중앙박물관소장품 무단복제와 사용금지]

깨우침 도달한 부처의 신비하고 오묘한 미소

백제 석공들의 대표적인 작품들 중 절벽에서 중생을 구하러 걸어 나오는‘경행상 표현을 한 바위에 새겨놓은 국보 제84호 서산 마애여래삼존상 부처님의 모습에서 중앙의 여래(진리에 도달한 사람) 오른쪽으로 미륵보살 반가좌사유상이 조각되어 있다.
[Photo ⓒ 2020 Hyungwon Kang]

깨우침 도달한 부처의 신비하고 오묘한 미소

다각도에서 바라본 금동미륵보살반가사유상 오묘하고 신비한 자태.
[Photo ⓒ 2020 Hyungwon Kang 국립중앙박물관소장품 무단복제와 사용금지]

깨우침 도달한 부처의 신비하고 오묘한 미소

다각도에서 바라본 금동미륵보살반가사유상 오묘하고 신비한 자태.
[Photo ⓒ 2020 Hyungwon Kang 국립중앙박물관소장품 무단복제와 사용금지]

깨우침 도달한 부처의 신비하고 오묘한 미소

다각도에서 바라본 금동미륵보살반가사유상 오묘하고 신비한 자태.
[Photo ⓒ 2020 Hyungwon Kang 국립중앙박물관소장품 무단복제와 사용금지]

깨우침 도달한 부처의 신비하고 오묘한 미소

국보 제83호 금동 미륵보살 반가사유상의 뒷모습. 미륵 사상이 우리 땅에서 융성하던 7세기 신라를 중심으로 통일전쟁을 할 때, 나라를 위해서 기꺼이 목숨을 바쳤던 신라 화랑의 균형 잡힌 몸매의 젊은 신체를 표현했다고 추측된다.
[Photo ⓒ 2020 Hyungwon Kang 국립중앙박물관소장품 무단복제와 사용금지]

깨우침 도달한 부처의 신비하고 오묘한 미소

미륵보살 반가사유상 하반신 세부양식을 비교해 보면, 왼쪽부터: 일본 국보 제1호 목조미륵보살반가상, 국보 제83호 금동미륵보살반가사유상, 국보 제84호 백제 서산 마애여래삼존상 중 미륵보살 반가좌사유상과 경상북도 봉화북지리석조반가상. 신라시대 균형 잡힌 몸매의 미륵보살 반가사유상들은 오른쪽 무릎의 과장된 표현과 앞치마 2단 주름 형식 그리고 왼쪽 무릎의 옷주름은 없다. 그러나 백제 반가좌사유상에서는 신라의 비슷한 양식을 찾아보기 힘들다. [목조미륵보살반가상: 경북대학교 박천수교수 제공, 나머지 사진 ⓒ 2020, 2021 Hyungwon Kang 국립중앙박물관소장품 무단복제와 사용금지]

깨우침 도달한 부처의 신비하고 오묘한 미소

1962년 경상북도 봉화(奉化)에서 출토된 보물 제997호 봉화북지리석조반가상(奉化北枝里石造半跏像)과 비슷한 양식의 국보 제83호 금동미륵보살반가사유상이 신라에서 제작되었다고 경북대학교 박물관 박천수 관장은 주장한다. [Photo ⓒ 2021 Hyungwon Kang]

깨우침 도달한 부처의 신비하고 오묘한 미소

경상북도 영천역사박물관장 지봉스님이 경북대학교 박물관에서 160㎝ 높이의 하반신만 발굴된 보물 제997호 봉화북지리 석조반가상을 검토하고 있다. 1962년 오리지널 출토 지역에서 현재까지 발견되지 않은 나머지 상반신과 왼 발목을 찾는 일이 숙제로 남아 있다. [Photo ⓒ 2021 Hyungwon Kang]

깨우침 도달한 부처의 신비하고 오묘한 미소

[Photo ⓒ 2021 Hyungwon Kang]

깨우침 도달한 부처의 신비하고 오묘한 미소

1962년 경상북도 봉화(奉化)에서 출토된 보물 제997호 봉화북지리석조반가상 무릎 위에 올려놓은 왼손의 조각이 힘차고 세련된 솜씨로 표현되어 있다.
[Photo ⓒ 2021 Hyungwon Kang]

깨우침 도달한 부처의 신비하고 오묘한 미소

우리 역사에서는 지난 100년 동안 풀리지 않는 미스테리가 있다.

1920년대에 돌연이 나타난 불교예술품으로는 세계 최고의 걸작으로 평가되는 국보 제83호 금동미륵보살반가사유상(金銅彌勒菩薩半跏思惟像)이 어디서 제작되었고, 깨우침이 있어야만 가능해보일 온유하고 편안한 미소는 무엇을 의미하는지, 그동안 수많은 연구가들의 다양한 추측을 불러왔다.

고구려, 백제보다 더 늦게 불교를 받아들인 신라의 강력한 불심은 통일신라와 고려를 거쳐 오늘날 우리나라를 전 세계에서 으뜸가는 불교국으로 만들었다.


불교가 뿌리내린 신라는 국왕 부부가 승려로 출가하기도 했을 만큼 독실한 불교국이었다. 신라의 제24대 임금 진흥왕(재위 540-576)은 출가해서 법운이란 이름의 비구가 되었고, 부인도 여주라는 비구니가 되었다.

고려 때는 불교를 국교로, 요즘 같으면 불가능할 팔만대장경 같은 인류의 문화유산을 남겨놓았을 뿐만 아니라, 조선시대 500여 년간 억불정책(抑佛政策) 중에도 임진왜란 때는 왜군이 예상 못했던 익명의 수많은 의승병(義僧兵)들이 나라를 지켰다.

기독교에서 예수가 메시아(구세주)라면, 불교에서는 깨우치지 못한 중생을 구제할 메시아가 미래의 부처 미륵(미륵불/미륵보살)이다.

7세기에 신라가 한반도 통일을 실행할 무렵은 끊임없는 전쟁으로 앞날을 예측하기 어려운 난세로 인간이 종교에 많이 의지하던 때였다.

이생의 어려움을 불심에서 답을 찾고 의지할 때, 미륵사상이 우리 땅에서 빛을 보였는데, 젊고 자기 확신이 가득찬 엘리트로 구성된 화랑은 불안하고 어려운 시기의 신라인들에게는 메시아 같은 미래의 희망이었던 미래 부처 미륵을 형상화했다는 해석이 있다.

신라의 미륵사상이 지배할 때 제작되었다고 해서 미륵반가사유상(생각을 하는 부처/보살) 으로도 불리는 국보 제83호 금동미륵보살반가사유상의 모습은 부처가 깨우침을 성취했을 때, 그 해탈의 순간을 보여 주기라도 하는 듯 부드럽고 미묘한 미소를 보여주는데, 젊은 신체의 균형 잡힌 몸매의 93.5cm 크기 금동으로 만든 반가사유상은 전 세계 불교문화 예술품으로는 물론, 우리 역사상 가장 조형미가 뛰어난 걸작으로 평가된다.

일제강점기인 1920년대에 경주가 출토지라고 세상에 나타나서 전해오고 있지만 구체적인 제작 장소와 시기를 알 수는 없다. 다만, 7세기에 만들어졌다고 학자들이 보는데, 머리에는 우리 민족이 좋아하는 숫자인 ‘3’개의 봉우리 디자인으로 삼산관(三山冠)을 쓰고 있다.


5-6세기부터 대륙에서는 나무 밑에서 사유하는 석가모니 태자의 모습을 그대로 표현했다고 태자사유상 또는 그냥 태자상 아니면 사유상이라고 반가사유상을 만들어왔는데, 우리 불교예술에서는 미륵사상을 표현하는 불상을 만들었다.

백제 석공들의 대표적인 작품들 중에 절벽에서 중생을 구하러 걸어 나오는 ‘경행상’ 표현을 한 바위에 새겨놓은 부처님의 모습인 국보 제84호 서산 마애여래삼존상 중 중앙의 여래 (진리에 도달한 사람) 바로 오른쪽에 미륵보살 반가좌사유상이 있다.

국보 제83호 금동미륵보살반가사유상과 서산 반가좌사유상은 디자인적으로 매우 다르다. 신라시대 균형 잡힌 몸매의 미륵보살 반가사유상들은 오른쪽 무릎의 과장된 표현과 앞치마 2단 주름 형식 그리고 왼쪽 무릎의 옷주름은 없다. 그러나 백제 반가좌사유상에서는 신라의 비슷한 양식을 찾아보기 힘들다.

신라에서 금동미륵보살반가사유상을 만들었다고 결론을 내릴 수 있는 물증이 1962년 경상북도 봉화(奉化)에서 출토된 봉화북지리석조반가상(奉化北枝里石造半跏像)이라고 경북대학교 박물관 박천수 관장은 주장한다.

옛 신라 땅 경상북도 봉화에서 하반신만 발견된 석불미륵반가사유상의 하반신 세부 양식은 금동미륵보살반가사유상과 매우 유사하다. 1962년 오리지널 출토 지역에서 현재까지 발견되지 않은 나머지 상반신과 왼 발목을 찾는 일이 숙제로 남아있다.

온전하게 상체까지 있는 또 하나의 반가사유상은 일본에 있다. 일본 국보 제1호인 광륭사(廣隆寺) 목조미륵보살반가상(木造彌勒菩薩半跏像)은 우리 금동미륵보살반가사유상을 꼭 빼닮은 쌍둥이 같아 보여, 동 시기에 같은 작가나 함께 수련한 장인들이 만들었다고 해도 설득력이 있다.

경상북도와 강원도 지역에서만 자생하는 우리 궁궐과 대사찰 건축용으로 쓰여온 적송(赤松) 통나무 목재 소재로 제작된 일본 국보1호 목조미륵보살반가상은, 한조각 통나무로 깎아 만들어 여러 조각으로 깎아서 조립하는 일본식 목조 불상하고는 차별된다.

홍송, 황장목, 금강송, 춘양목 등 지역에 따라 여러 이름으로 알려진 적송 목재로 만들어진 목조미륵보살반가상은 623년 신라에서 보내와 그 당시 일본 거주 신라인이 책임지고 사찰에 모셨다는 일본서기 기록 역시 출처를 신라로 확인해 준다.

이라크와 아프카니스탄에서 천당에 들어가기 직전이라는 자기 믿음과 확신에 가득찬 자살폭발범(suicide bomber)들의 자폭하기 바로 전 모습이 이 세상에서 가장 평온하고 온화한 표정들이였다고 많은 목격자 들은 증언한다.

반가사유상에는 신라를 중심으로 통일 전쟁을 할 때 나라를 위해서 기꺼이 목숨을 바치던 신라 화랑들의 자기확신과 깨달음에서 나온 해탈의 순간처럼 부드럽고 오묘한 미소가 담긴 게 아닐까?

*퓰리처상 수상자 강형원 기자의 우리·문화·역사 Visual History & Culture of Korea 전체 프로젝트 모음은 다음의 링크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
www.kang.org/korea

카테고리 최신기사

많이 본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