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별세한 신호범 전 의원 ‘서울역 고아서 미국 정치인으로 신화’ 쓰다

2021-04-16 (금) 황양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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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미서 파란만장한 삶 살다 하늘나라로

▶ 한인 정치인 양성에도 힘 쏟아…‘자랑스런 한국인상’수상

별세한 신호범 전 의원 ‘서울역 고아서 미국 정치인으로 신화’ 쓰다

지난 2014년 워싱턴대학에서 열린 신호범 전 의원의 은퇴기념식에서 신 전 의원이 한인 참석자들과 함께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지난 12일 숙환으로 별세한 신호범 전 워싱턴주 상원의원은 그야말로 한국과 미국 양국서 파란만장한 삶을 살다 ‘하늘나라의 별’이 됐다.

어렸을 적 노숙생활, 미국으로의 입양, 박사학위, 교수, 정치인, 알츠하이머 등 그에게 따라다녔던 삶의 역정과 도전 등은 한 편의 드라마를 쓰고도 남는다.

4살 때 집을 나와 서울역 등에서 노숙생활을 했고, 이후 미군 부대에서 일을 하다 미국으로 입양돼 스무 살이 다 된 나이에 다시 공부를 시작해 박사 학위를 받은 뒤 대학교수로 지냈다.


여기서 그치지 않고 정치인으로 나선 뒤 18년간 정치를 하다 알츠하이머라는 병을 얻어 투병을 하다 삶을 마감한 것이다.

신 박사는 생전 “한글도 못 깨우쳤던 한을 풀어 한글과 영어를 공부해 선생님이 되는 것이 원래 꿈이었다”며 “처음에는 정치인이 될 생각은 없었다”고 말했다.

하지만 미군부대에 근무하면서 인종차별을 느꼈고, 언젠가는 정치인이 돼 차별을 없애야 겠다는생각으로 정치의 꿈을 키웠다고 한다.

1992년 당시 백인 인구가 절대다수였던 제21선거구에서 워싱턴주 하원에 출마해 당선되면서 정계에 입문했고 상원을 합쳐 내리 5선이 됐다.

특히 정계에 있는 동안 미국 정치 및 행정 문서에 아시안을 경멸하는 뉘앙스의 ‘오리엔탈(oriental)’대신 ‘아시안(Asian)’으로 쓰도록 법안을 제정했던 것은 그의 최고 치적 가운데 하나로 꼽힌다.

그가 발의한 이 법안으로 전국에서 ‘아시안’이 공식용어로 쓰이게 됐으며 ‘스패니시 아메리칸’이란 표현도 ‘히스패닉’으로 바뀌는 계기가 됐다.

또한 워싱턴주 정부가 미 전국에서는 처음으로 한인들이 미국 땅으로 최초 이민을 왔던 1월13일 기념해 매년 1월13일을 한인의 날로 제정하도록 하는데 남다른 공헌을 하기도 했다.


시애틀 한인회장과 평통 시애틀협의회장을 지내는 등 한인사회에서도 봉사를 했으며 특히 본인 출연금과 한인사회 후원금 등으로 한미 정치교육장학재단을 설립해 이사장을 맡았다.

또한 미주 한인 정치인 컨퍼런스 및 차세대 리더십 포럼을 열어 정치에 뜻을 둔 차세대와 정치 지망생들에게 장학금을 전달하기도 하는 등 후진 양성에 힘을 쏟았다.

워싱턴주 엘렌스버그에 있는 센트럴 워싱턴대 이사, 세계 입양인협회 고문, 러시아 극동기술대 명예교수, 중국 연변 과학기술대 명예교수 등을 맡기도 했으며 한국 경동대 명예 총장 직함을 갖기도 했다.

우석대와 건국대 등에서 명예 박사학위를 받았고, 1년에 수 차례 한국을 방문해 자신의 출생 및 성공 스토리 등을 주제로 강연을 하면서 인기 강사로도 이름을 날렸다.

지난 2003년에는 ‘미국 최고 해외이민자상’을 받았고, 한국인의 권익 신장에 앞장서 지난 2006년에는 한국에서 1회 ‘자랑스런 한국인상’을 받기도 했다.

신 전의원은 지난 2007년에는 UW 한국학센터에 50만 달러를 기부해 ‘폴 신 프로그램’을 만들기도 했다.

그러던 그에게 느닷없이 닥친 것은 알츠하이머였다. 이에 대한 치료 등을 위해 지난 2014년 과감하게 정계를 은퇴한 뒤 그동안 치료에 전념해온 것으로 전해졌다.

그런 가운데서도 자신의 사재를 기부해 2년 전 머킬티오 보이스 & 걸스클럽 건물을 완공해 기부한 것으로 알려졌다.

신 전 의원의 주요 저서로는 <공부 도둑놈 희망의 선생님>, <기적을 이룬 꿈>, <사랑하며 섬기며> 등이 있다.

<황양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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