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세상만사 - 기다림

2021-01-19 (화) 최효섭/목사•아동문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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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다림에 한국적인 정서가 있다. 춘향전 심청전 같은 한국 고전은 모두 기다림을 테마로 하고 있다. 이별이 있었기에 기다린다는 비극적인 요소가 있는 동시에 기다림 뒤에는 만남이 있다는 즐거움도 품고 있다. 손님이 올 때 마중 나가는 습관도 있었다. 손님은 자기를 기다려 준 고마움을 느끼며 반갑게 만난다. 기다림 속에 정이 흐르는 것이 한국적인 정서이다.

감주도 막걸리도 기다려서 먹는 한국의 음료이다. 김치도 담가 놓고 기다려야 한다. 나의 고향은 황해도이다. 대원군은 황해도 사람을 석전경우(石田耕牛)라고 칭하였다. 돌밭을 가는 소란 뜻인데 조금 느리지만 소처럼 꾸준하다는 평이니 좋은 평이다.

소는 일을 위하여 주인의 명령을 기다리는 유일한 동물이라고 한다 기다림 속에는 인내가 내포되고 꾸준함이 있다. 남의 말을 들을 때 중간에 끼어드는 것은 대화의 실패이다. 잘 참고 기다리며 들어주는 것이 대화의 비결이다.


한국의 대표적인 음식은 단연 김치이다. 김치는 담가 놓고 오래 기다린다. 김치의 맛은 기다림의 맛이다. 한국 방문을 하였을 때 나를 만난 사람이 동동주라는 것을 사 주었는데 맛이 좋았다. 역시 오래동안 숙성시켜 기다린 맛이라고 한다.

한국말에 ‘뜸들인다’라는 말이 있다. 뜸을 들여야 깊은 맛이 생기는 것이다. 밥도 쌀이 익었다고 얼른 먹지 않는다. 뜸을 들여야 한다. 쌀밥을 맛있게 먹으려면 인내가 필요하다. 의심이 가고 화가 나도 기다려야 한다. 참고 기다리면 잘 풀리는 수가 많다. 조급증을 잘 넘기는 지혜가 있어야 한다. 기다리면 잘 해결이 될 때가 많다.

모든 일에는 결산의 때가 있다. 정리의 때이다. 나의 종말은 반드시 오며 머지 않았다. 사람들은 너무 바빠서 결산의 때가 가까움을 잊기 쉬우나 종말의 때는 매우 가깝다. 죽으면 그만이지 하고 쉽게 생각할 것이 아니라 열심히 살았으면 끝도 잘 맺어야 한다.

성경은“지금은 자다가 깰 때라고 말하고 어두움의 옷을 벗고 빛의 갑옷을 입자고 말한다.( 로마서 12:13) 빛의 갑옷이란 깨끗하고 든든한 전투복을 가리킨다. 그것이 청산의 때를 기다리는 준비이다.

나는 직책상 많은 장례식에 가 보기도 하고 내가 집례도 하였다. 상제도 조객도 모두 우울하고 슬프지만 그래도 고인이 착하고 훌륭한 생애를 보낸 경우는 조가가 승리의 개가처럼 우렁차게 들렸다. 보람있게 살았으면 정리의 날도 슬픈 것만은 아니다. 개선의 장한 날이다. 사람은 끝을 잘 맺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그대가 재산은 많이 후손에게 남기지 못하고 유명인사도 아니었고 사회적으로 높은 지위에 있지는 못하였어도 진실하게 살았고 최선을 다하였다면 그대는 성공적인 인생을 산 것이다.

무척 겸손한 사람으로 나는 유동식 교수를 추천한다. 그는 연령으로나 학벌로나 나의 대선배인데 동경대학교 박사 학위 논문이 완성되었을 때 제일 먼저 나에게 들고 와 읽어보아 달라고 부탁하였을 정도이다.


감격하여 읽었는데 동양 철학들을 신관이라는 주제로 연수한 것으로 물론 훌륭한 논문이었다. 아마도 비교 종교학에서 그이 만큼 높은 수준의 학자는 한국에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사람들이 실력을 말하는데 높은 덕이 있어야 학문도 빛을 발한다. 유 교수의 아호는 유유(悠悠 여기에 성을 붙이면 유 유유(柳 悠悠)가 된다. 충청도 시골에서 태어나 신학대학의 교수가 된 멋진 인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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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효섭/목사•아동문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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