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세상만사-한 해가 또 저물고

2020-12-29 (화) 최효섭/목사•아동문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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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연말이다. 세월이 점점 더 빨리 달아난다. 새해가 출발의 때라면 연말은 정리의 때이다.
걱정스러운 일들도 이젠 다 잊자. 기억하면 상처만 남을 걸 깨끗이 잊고 새 날을 맞자. 생각은 했지만 실천 못한 일들도 깨끗이 잊고 마음을 다시 가다듬자. 실수도 잘못도 있었다.

어쩌겠는가 지난 일인걸. 이제는 그만 다 잊자. 용서를 빌지 못한 일도 미안한 대로 잊는 게 낫겠다.
지키지 못한 약속도 주지 못한 사랑도 잊어버린 인사도 이제 다 잊고 새 날을 맞자. 후회는 짐이 된다지만 어쩌겠는가, 미안한 대로 새로운 각오로 다시 출발하는 수 밖에 없다.

남몰래 흘리던 눈물도, 혼자 내뿜던 한숨도, 긴 설명이 필요한 억울한 일도 이제 다 잊고 새날을 기다리자. 빌린 것 못 갚은 것이 있는가? 그건 갚아야 새로운 마음을 가질 수 있지. 어물쩍 넘어가면 내가 죄인이 되는 걸. 빚지고 살기는 절대로 편치 않다.


남에게 내 짐을 넘겼다면 그것도 편한 잠을 잘 수 없는 상황이다. “남자의 한 마디는 천금과 같다”는 동양인들의 속담이 있지만 어쩌 남자에 한해서랴. 여자의 한 마디도 천금과 같기는 마찬가지이다.

반성이란 절대로 부끄러운 것이 아니다. 오히려 용감한 것이다. 용기 있는 자만이 회개할 수 있다. 비겁한 자는 회개도 못한다. 고개를 숙이는 것은 겁쟁이의 행동이 아니라 용사의 행동이다. 교만한 자가 고개를 못숙인다.

설날 세배하는 풍습이 있었는데 그것은 복종의 뜻이 아니라 존경의 뜻이었다. 어른을 존경한 것이 동양인의 오랜 풍습이다.
독신주의자들은 결론은 시간의 낭비라고 주장하지만 결혼하라. 함께 더 효과적으로 인생을 꾸려간다고 생각을 바꾸어야 한다.

나는 피난 시절 달구지를 끌고 장작 장사를 해 보았는데 달구지는 혼자서는 정말 끌기 힘들다 어린 아이라도 뒤에서 밀어주어야 한다. 옛 영화에 이탈리아 영화로 ‘길(The Strada)’ 이 있었다. 남편은 달구지를 끌고 아내는 밀고 방방곡곡을 다니며 광대 노릇을 하는 명화였다. 끄는 역도 중요하지만 미는 역도 중요하다. 동반자는 아주 중요하다.

묵은 세월을 정리한다는 것은 단순히 버리는 것이 아니다. 새로운 결실을 위한 투자이다. 사람은 돈을 투자할 수도 있지만 자기의 생명을 투자하는 것이 최선의 투자이다. 짧은 세월을 한탄할 것이 아니라 고귀한 나의 인생을 투자하여 영원한 보화를 확보할 수도 있다.

강소천의 동시 ‘병아리’가 있다. “물 한 모금 머금고 하늘 쳐다보고. 또 한 모금 머금고 구름 쳐다보고” 병아리가 물을 마실 때 고개를 살짝 살짝 드는 모습을 물 마신 뒤에 한 번씩 하나님께 감사하는 것으로 기독교인인 시인이 해석한 것이다. 믿음을 가진 아동문학가 다운 관찰이다.

뉴 멕시코 대학의 래리 도우 박사는 시간에 쫓기는 사람을 ‘시간병(Time-sickness)이란 이름을 붙이고 시간병 환자의 치료법을 이렇게 설명하였다. “시간 계획 보다 인생 계획을 세워라. 시간에 얽매이지 말고 자유롭게 시간을 써라. 서두르지 말라. 과속은 만병의 근원이다.

”나는 이 연말에 이런 글을 드리고 싶다. “창문을 닦으셔요 창문을 닦으셔요 마음의 창문을 깨끗이 닦고 새해를 맞으셔요. 희망이란 안약으로 앞을 밝히 보셔요.”
당신이 불행에 빠지는 조건들이 있으니 조심하고 새해를 맞아야 한다. 작은 일에 너무 조심할 때 신경을 곤두세울 때, 무엇이나 남과 비교할 때, 주머니에 넣을 생각만 하고 내주지 않을 때 그대는 불행의 수렁에 빠져들고 있는 것이다.

부드러워야 한다. 여유가 있어야 한다. 넉넉하여야 한다. 그것이 사는 맛이고 사는 멋이다.

<최효섭/목사•아동문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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