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필그림의 도약

2020-12-28 (월) 김창만/ 목사·AG 뉴욕신학대학(원)학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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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은 영국인이지만 국교 신자와 필그림(Pilgrim)의 삶의 방식은 하늘과 땅만큼 상이(相異)했다. 버지니아로 들어간 국교 신자는 따뜻하고 비옥한 땅에서 노예와 하인을 부리며 호화롭게 살았다. 그들의 삶은 부요가 넘친 나머지 방만했고 무질서했다. 반면, 엄동설한의 땅 플리머스로 들어간 필그림은 시종일관 헝그리 정신으로 살았다. 철저한 개척정신, 청빈, 겸허, 감사는 필그림의 좌우명이었다. 필그림은 하나님의 섭리를 확인하면 주저하지 않고 새로운 도약을 감행하는 창조적 소수자로 살았다.” (스테펜 톰킨스의 ‘The Journey to the Mayflower’ 중에서)

17세기 초에 형성된 청교도가 영국과 네덜란드에서 방황하고 있을 때 탁월한 두 지도자가 나타났다. 존 로빈슨(John Robinson)과 윌리엄 브래드포드(William Bradford)이다. 두 지도자는 남다른 역사적 안목을 지녔다. 두 지도자는 일찍이 아메리카 신대륙이 청교도의 새 가나안이 될 것이라고 믿었다. 두 지도자는 예배 모임 때 마다 ”우리 모두 새로운 아메리카로 갑시다(Why not go to America)“라고 외치면서 도약을 고취시켰다. 이때 첫 번째 도약을 자원한 그룹이 필그림이다.

키에르케고르는 인간을 살아가는 삶의 방식을 4단계로 구분했다. 첫째, 심미적 단계. 둘째, 윤리적 단계. 셋째, 종교적 A단계. 넷째, 종교적 B단계이다. 키에르케고르는 인간에게 어떤 창의적 변형이 일어나려면 인생을 사는 방식이 하급 단계에서 상급 단계로의 도약이 이루어져야 된다고 확신했다.


도약은 풍차가 바람에 의해 돌아가듯이 그냥 저절로 되는 자연 현상이 아니다. 나대신 누가 만들어 주는 것은 더더욱 아니다. 여기에는 자신이 부딪친 실존적 한계와 삶의 모순을 과감하게 뛰어넘을 수 있는 ‘영적 사건’이 꼭 필요하다.

우상과 미신의 땅 갈대아 우르를 떠나 홀연히 가나안으로 들어 간 아브라함의 순종, 다메섹으로 향하던 사도 바울의 극적 회심, 어거스틴 밀라노 회심, 마틴 루터의 ‘탑 경험’, 25세 생일을 맞이한 키에르케고르가 운명 직전의 아버지와 극적으로 화해한 일들은 모두 종교 A에서 종교 B로 도약한 ‘영적 사건’의 한 예다. 키에르케고르는 말했다. “기적은 도약을 통해 나온다. 관성에만 매달리는 삶에는 출구가 없다.”

<김창만/ 목사·AG 뉴욕신학대학(원)학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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